저희 회사는 작은 언론사입니다. (주) 펜 그리고 자유(1997년 4월 23일 창립)에서 발행하는, 전국-주간신문인 '주간현대'와 '사건의 내막'이 있고, (주) 브레이크뉴스에서 발행하는 인터넷신문 브레이크뉴스가 있습니다. 작은 언론사이지만 언론사가 몇 개 있어 편의상 언론 소그룹 '펜 그룹'이라고 호칭하겠습니다. 펜 그룹에서 발행하는 주간현대는 올 5월18일로 창간 12주년을 맞습니다. ' '주간현대'의 발행역사는 곧 펜 그룹의 역사여서, 4-5월은 회사 창사 12주년이 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12간지로 말하면 한 띠가 지나고 또 다른 띠를 향해서 출발하는 해 입니다. 그간 펜 그룹은 '주간현대'를 모체로 주간신문과 인터넷 신문을 발행해왔습니다. 타블로이드 일간신문인 '펜 그리고 자유'를 1년 반 가량 발행했으나 자진 폐간,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화질 높이기 기여하는 언론
지금은 신문의 위기의 시대입니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매체들도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문산업 웹사이트를 조사하는 페이퍼 커트사는 “2008년 이후 120개의 신문이 폐간됐다”고 전하면서 “이 때 67개 신문사에서 2만1000명의 직원을 감원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일본 역시 문을 닫는 매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사들 역시 경영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국입니다. 주간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신문의 위상을 재확인해봅니다. '펜 그룹' 창사 12년을 맞으면서 주간 신문과 인터넷 신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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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로(言路)가 열려 있어야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신문은 언로의 한 중심에 서 있고, 새 문화를 만들어 내거나, 기존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토양역할을 합니다. 펜 그룹에서 발행하는 두 개의 주간신문이나 인터넷 신문은 공히 문화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맞는 신문의 역할을 찾으면서, 백범 김구 선생(1876년-1949년)이 말한 문화 상등국론을 떠올립니다. 김구 선생은 '내가 원하는 나라'에서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부자 나라 보다 "문화의 힘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문화의 힘이란 “높은 문화의 힘”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우리 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성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의 세계대전을 치른 일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라고 설(說)했습니다.
김구 선생은 우리 나라가 “새 문화의 근원국-목표국” “최고 문화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언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문화 강대국론” 보다는 “문화 상등국론”을 피력하신 것입니다. 그런 문화를 만들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세계무대의 주연배우”로 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펜 그룹'에서 발행하는 여러 매체는 김구선생이 예단했던 '대한민국 문화상등극' 만들기에 일조하는 매체임을 밝힙니다.
백령도땅 1만1천평 매입 '작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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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1980년대 후반에 미국에 5년간을 체류하며 기자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 미 전역을 취재, 한인 이민사(책이름=미국귀신 한국귀신)를 쓴 바 있습니다. 1903년 제물포에서 하와이 목구리아로 이민을 떠난 이후 미국에 모범적으로 정착한 한인들의 웅장한 이민사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그 취재를 위해 하와이로 여러 번 취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이때 하와이에는 이국적인 문화가 넘실거렸습니다. 특히 외국 관광객들에게 토착 문화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이나 새 유형의 춤으로 진행되는 폴리네시안 공연이 관광객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그 문화공간 만들기의 꿈을 백령도에서 실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백령도의 첫 방문은 국가정보원이 주최하는 연수에 참가할 때였습니다. 국가정보원이 필자와 백령도의 인연을 만들어 준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국가정보원 연수원 옛 부지 옆의 땅을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정보원 백령도 연수원은 이제 다른 곳으로 이전 했습니다.
백령도는 중국의 산동반도와 아주 가깝습니다. 비오는 날 개 짓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합니다. 인구 13억에 넘는 중국의 경제력이 신장하면 중국 관광객들이 백령도를 찾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백령도에서 북한 장산곶까지의 거리는 겨우 17km 정도여서 북한이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간 남한 국민들은 동해 북한쪽에 있는 해금강이 끼인 금강산을 관광해왔습니다. 남북 상호주의에 의해, 북한 인민들이 남한의 관광지를 방문하려했을 때 최적지가 백령도 두무진의 5km에 달하는 해안절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령도에서 가까운 장산곶에서 가까운데 위치하는 해주는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때 제2의 공업단지 개발지로 남북이 합의한 지역입니다. 금강산을 세 차례 정도 관광했지만, 백령도 두무진이 금강산의 절경과 견줄만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천하 해안절경이 있는 백령도, 그 곳에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공연장 등 문화공간을 만들려는 꿈을 꾸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백령도는 인천광역시에 편입된 지역입니다. 백령도 발전을 위한 인천광역시의 행정적인 지원과 관심도 기대합니다.
필자는 백령도 문화 공간 만들기를 위한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그간 15회 정도 백령도를 찾아갔습니다. 방문기간, 주요 관광지에서 트레킹도 했습니다. 히말라야 인근 등 세계에 이름난 트레킹 코스와 견줄만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매체발간 12주년을 맞아 다시금 다짐합니다. 언론 소그룹 '펜 그룹'에서 발행하는 '주간현대' '사건의 내막' '브레이크뉴스'는 언론이나 문화 사업 등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영토를 넓히는데 기여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moonilsuk@kore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