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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피해자와 용의자 ‘일대일 대면’도 증거 인정

“범죄 발생 직후엔 목격자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가능”

신종철 기자 | 기사입력 2009/06/20 [18:18]
 [법률전문 인터넷신문=로이슈] 범죄발생 직후 경찰이 한명의 용의자를 피해자와 마주하게 한 ‘일대일 대면’ 방식으로 범인인지 여부를 확인한 경우도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범인식별절차에서 피해자나 목격자에게 용의자 한 명만을 대면하거나 한 장의 사진만을 보여준 뒤 범인으로 지목한 경우 법원은 대부분 이를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a(29)씨는 2007년 11월4일 새벽 4시30분께 부산 남구 대연동사무소 앞 노상에서 b(24,여)씨가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뒤따라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이때 b씨가 놀라 비명을 지르자 a씨는 b씨를 땅바닥에 넘어뜨려 반항을 억압한 다음 주먹으로 때린 뒤 달아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범행 직후 b씨는 곧바로 범인을 뒤쫓아 가다가 때마침 순찰 중이던 경찰관들을 보고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함께 범인을 추적하다가 a씨가 골목으로 사라져 놓쳤다.
 
당시 b씨는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모자를 쓰고 검은색 패딩 점퍼를 입었으며 키는 중간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관들은 범행 장소 근처에 젊은 남자가 사는 집을 수색하다 a씨의 집을 탐문하게 됐다.
그런데 a씨는 모자가 달린 상의와 청바지를 입고 양말도 신은 채 이불을 덮고 잠을 자는 척하고 있었고, 방안에는 패딩 점퍼와 모자가 있었다.
 
이에 경찰관들은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b씨를 데려와 a씨와 대면을 시킨 다음 범인이 맞는지 물어봐 “맞다”는 대답을 듣자 곧바로 체포했다.
 
◆ 1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사회봉사명령 200시간
이로 인해 a씨는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부산지법 동부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종호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
 
그러자 a씨는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을 뿐인데 경찰이 b씨와 함께 범인을 뒤쫓다가 놓친 후 이웃 주민으로부터 이 집에 젊은 남자가 산다는 진술만 듣고 집으로 찾아와 범인으로 잘못 지목함으로써 피해자도 범인으로 진술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항소심은 무죄…피고인만 단독으로 피해자와 대면시켜
이에 대해 항소심인 부산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우성만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a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실제 범인이라면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골목길에서 그것도 가로등이 커져 밝은 곳에서 이웃 주민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범행을 감행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경찰관들이 피고인의 집 출입문에서 초인종을 누른 후 아버지가 나가 경찰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출입문을 열어줘 피고인의 방에 들어오기까지 5~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으므로, 피고인이 범행을 은폐할 생각이었다면 그 사이에 옷과 양말을 모두 벗고 자리에 누워 있을 여유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경찰관들은 범인의 인상착의 등에 관한 피해자의 진술을 기록한 다음 용의자를 포함해 그와 인상착의 등이 비슷한 여러 사람들을 동시에 피해자와 대면시켜 범인을 지목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용의자인 피고인만을 단독으로 대면시켜 범인 여부를 확인한 것이어서 피해자의 기억력의 한계 및 부정확성과 피고인이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무의식적인 암시를 줄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이 종전에 피해자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든가 피해자의 진술 외에도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다른 정황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보기도 어려워 피해자의 진술을 선뜻 믿기 어려워, 피고인이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한 것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대법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지난 11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용의자 한 사람을 단독으로 목격자와 대질시키거나 용의자의 사진 한 장만을 목격자에게 제시해서는 안 되지만, 범죄 발생 직후 목격자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상황에서 현장이나 그 부근에서 범인식별 절차를 실시하는 경우에는 목격자에 의한 생생하고 정확한 식별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범죄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즉각적인 대면의 필요성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용의자와 목격자의 일대일 대면도 허용된다”고 판시했다.
 
또 “원심이 피해자의 진술은 용의자인 피고인 한 사람만을 단독으로 대면시켜 범인 여부를 확인하게 한 후 진술한 것이라는 이유로 진술내용을 선뜻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데에는 목격자에 의한 범인식별 절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종철 기자  sky@lawiss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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