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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생은 매월당 김시습이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일대기 그린 소설 ‘매화와 달’ 출간

브레이크뉴스 | 기사입력 2009/07/02 [17:08]
물론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뭔가 새로운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 시대를 살면서 조선 봉건사회에서 방외인으로서 모든 부분에 선각자였던 매월당 선생을 기리며, 그의 사상을 이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마음에 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미 오래 전에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해버렸다.
그분보다 101년 후에 태어난 조선의 최고 석학 중에 한 분인 이율곡이
‘前身定是金時習’(내 전생은 김시습이었다)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거기에 더하여 매월당 김시습을 가리켜 ‘절의를 표방하고 윤기(倫紀 : 윤리와 기강)를 붙들었으니, 그 뜻을 궁구해보면 가히 일월(日月)과 그 빛을 다툴 것이며… 백대의 스승이라 하여도 또한 근사할 것이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 최고의 석학인 이율곡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까. 매월당이 단순히 조선 최고의 천재라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매월당 김시습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최고의 천재성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현실에 항거하면서 새로운 이상사회를 구현하는 데 쏟은 데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섯 살 때 세종임금이 엄정한 시험을 거쳐 그의 천재성을 확인하고 출세를 보장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미래를 보장받았던 그가 계유정난을 빌미로 돌연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버린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김시습의 좌절된 출세욕에 대한 항거 정도로만 묘사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사정을 살피면 오히려 김시습에게는 출세의 길이 더욱 확고했다. 바로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정권을 잡은 세조의 행태에 기인한다.
 
▲ 매월당 김시습의 일대기 그린 소설 '매화와 달'   ©브레이크뉴스
그는 난에 대한 명분에 주력해야했고 자신의 아버지인 세종이 약조한 부분을 확고히 이행하면서 정당성 확보에 주력해야했다. 그러니 세조로서는 김시습을 남보다 더욱 우대해야 할 입장에 처해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매월당은 현실 참여와 엄정한 관찰자의 갈림길에서 미련 없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자연과의 일체를 이루어간다. 이전투구의 현장에 참여해서는 자신이 지향하는 사회 건설에 한계를 절감하고 엄정한 관찰자의 길을 선택함으로서 역사에서 자신의 역할에 주력한다.
 
발각되면 똑같은 상황에 처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도, 대역죄인으로 몰려 사지가 찢어지는 극형을 당한,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는 사육신의 수급을 새남터에서 훔쳐내어 노량진에 장사 지내주고 유유히 방랑의 길을 떠난다.

관서, 관동, 호남 지방을 샅샅이 훑으면서 이 산하를 사랑하고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유교의 이론과 불교의 깨달음 또 도교의 무위자연 사상을 하나로 묶어 치자의 길을 제시한다. 이른바 유불선 삼교의 일치를 주창한다. 그를 통해 군주와 백성은 하나임을 설파하며 가혹하게 군주를 비판한다.

또한 자신이 거하는 곳마다 손수 농사를 지어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노동의 중요성을 설파했고, 자연과 일체감을 이루는 길의 한 방편인 다도(茶道)를 창시하여 일본에도 전했으며, 문학의 영역에 소설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함과 아울러 주옥같은 시들을 엮어내며 자연과 하나 되고......
 
그의 행적은 실로 ‘이렇다’라고 어느 한편으로 규정내릴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분야에 걸쳐 선각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그의 업적 중에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일은 실용으로 대변되는 기(氣)론을 설파한 부분이다.

당시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사회에서 기를 중시 여기는 매월당의 이론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기 이론은 남효온의 귀신론으로 그리고 서화담과 이율곡 등에 의해 주기론으로 발전하여 조선 후반기에 이르러 실학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자리를 잡게 된다.    

매월당,
그의 심오한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하기에는 한계를 절감한다. 하지만 그러한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재평가 내지는 연구에 박차를 가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다.
이율곡 역시 그러한 점을 간과하지 않았고 자신의 전생이 김시습이었음을 당당하게 토로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 결과로 이율곡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매월당이 남긴 시 한 수를 감상해보도록 하자.

석서(碩鼠)
 
큰 쥐여 사나운 큰 쥐여
우리네 낟알을 먹지 말아라
세 해를 너를 고이 길렀건만
이내 사정을 어이 몰라주느뇨
두어라 너희 나라 버리고 가련다.
저 낙원으로 나는 떠나가련다.
큰 쥐여 사나운 큰 쥐여
네 이빨은 칼날과도 같구나
우리네 지은 농사 모조리 해치더니
이내 수레마저 쓸고 헐 줄이야
무삼 일로 떠나지도 못하게 하느뇨
가려도 가려도 갈동 말동 하여라
큰 쥐여 사나운 큰 쥐여
네 소리 왜 그리도 찍찍거리나
간교한 언사 인간을 해치나니
듣기만 해도 마음 끔찍하여라
어쩌면 사나운 고양이를 데려다가
씨도 없이 모조리 잡아버리나
큰 쥐는 한 번에 새끼를 친다더니
젖 먹여 길러온 집안을 퍼뜨렸네.
내 본래 인자한 호인이 아니니
법관의 준엄한 심판에 넘기리라
깊은 구렁에 모조리 처넣어
네놈들의 종적을 없애련다.
(소설 ‘매화와 달’ 뒤 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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