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자연지상주의자의 변모…큰시의 울림”

<새벽을 깨우리로다> 목천 정병렬시인 평설(2)

이운룡 / 시인 ․ 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2009/07/18 [00:09]
    내 요즈음
    

    멍하니 바라보는 저 산은

    정녕 큰 악기일레라

    하늘의 악보를 보고

    침묵을 연주하느라

    검푸른 산줄기마다 꿈틀꿈틀

    푸나무조차 푸르락 불그락 떨더니

    급기야 산 어디선가

    침묵이 익어서 터지는 강물

    그 맑고 그윽한 목소리 흘러라

    투명한 영혼 같은 것이 흥얼흥얼

    비탈진 육신을 흘러내리는 저 강물

    무딘 내 몸 속까지 감돌아 흘러라

    무심천, 무심천 하면서 

                                             「산이 소리를 내다」 전문 


 

▲ 산은 ‘큰 악기’이고, 산은 ‘하늘의 악보를 보고/침묵을 연주’한다.

 
 
서정적 자아는 일종의 교감작용을 통하여 마음의 눈으로 산을 바라보고, 마음의 귀로 말없는 산의 소리를 듣는다. 
 
산은 ‘큰 악기’이고, 산은 ‘하늘의 악보를 보고/침묵을 연주’한다. 그래서 침묵의 연주를 듣는‘산줄기마다 꿈틀꿈틀/푸나무조차 푸르락 불그락’ 떤다.
 
급기야는 ‘산 어디선가/침묵이 익어서 터지는 강물’소리가 흐른다. 침묵의 강물소리는‘흥얼흥얼/무딘 내 몸 속까지 감돌아’흐른다.
 
무어라 말하면서 흐를까? ‘무심천, 무심천 하면서’ 흐른다. ‘무심’이란 특별히 이렇다 하게 생각함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니 물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음은 곧 자아를 잃어버린 자연동화 그 정일, 또는 자기일탈의 불교적 선정(禪定)에 든 경지가 아니겠는가. 그처럼 그는 자연에 동화하려는 자연지상주의자(自然至上主義者)의 꿈을 시로서 실현하고자 한다.   

산의 말없음을 말로 듣고, 하늘의 악보를 보면서 침묵을 연주한다는 그의 상상력, 또한 침묵이 익어 터져서 흐르는 강물소리를 듣는 정관의 자세, 침묵의 강물소리가 몸속까지 감돌아 흐르면서 무심천의 도(道)와 깨달음을 일깨워주는 종교적 선정 등 일련의 그의 정황 인식과 감수성은 자연에 귀의함으로써 자연과 한 몸이 되어 정신의 귀와 눈을 어떻게 열어놓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표현미는 원숙한 경지에 도달한 실천적 예이기도 하다.

철학적 견지에서 말하면 그의 사물에 대한 관조적 태도와 언어의 내포적(內包的) 형상 능력이 달관(達觀)이나 오성(悟性)의 경지에 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산을 안다는 말은 침묵의 소리를 듣는다는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마음의 눈과 귀가 있어야 그와 같은 통찰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목천은 그래서 침묵의 수도승 아니면 선정에 든 도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다.

시는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은 삶의 세계이다. 삶은 인간의 절대적인 존재 양식(樣式)이다. 그런데 이제 목천은 그 같은 연역 추리의 존재 양식에 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기보다는 그 자신을 온전히 자연에게 내맡긴 완전주의자의 방임, 자유의 화신을 닮고자 하는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제 자연에 동화된 일체(一體)로서 자연의 신비에 눈과 귀를 짜 맞춘 자연지상주의자의 변모를 보여줌으로써 더욱 큰 시의 울림을 퍼뜨릴 것이라 예상된다.

 그의 또 다른 시 「명상』에서도 정관 , 교감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서정의 틀을 어떻게 짜놓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풀밭에 질펀히 누워서

    바람이 전하는 당신의 말씀을 듣다가

    하늘에다 곱게 받아씁니다 


    나풀나풀

    풀잎 되어 쓰다보니

    하늘은 자꾸만 깊어져서

    저리 파아란 하늘 책 

    

    그 하늘 책에 머리를 묻고

    나는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나비 한 마리 고이 내려앉습니다 


    풀 끝에 활짝

    내 속 주름살 펴내는 나비

    한 송이 하늘 꽃이 피어납니다

    날개 접었다가 폈다가 

                                                            「명상」 전문



절대자와 마주앉아 있는 각자(覺者) 혹은 깨어난 명상의 시인이 아니면 ‘당신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당신의 말씀을 ‘하늘에다 곱게 받아’쓸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쓴다.
 
마침내 ‘풀잎 되어 쓰다보니/하늘은 자꾸만 깊어져서/저리 파아란 하늘 책’ 한 권이 된다. 그러는 동안 ‘깜박 잠이 들고/나비 한 마리 고이 내려앉는’ 것을 의식한다. ‘내 속 주름살 펴는 나비’인 것이다.
 
그러더니 ‘한 송이 하늘 꽃이 피어’난다. ‘날개 접었다가 폈다가’ 하는 순간에 하늘 꽃이 피어난 것이다. 이것이 이 시에 담긴 내용이다. 생동하는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서정적 자아가 잠든 사이 그 곁에 내려앉은 ‘나비’는 무엇이란 말인가? 정적인 수면 상태를 젖히고 동적인 나비의 내려앉음은 그 암시성과 함축성이 매우 크다. 그것은 끝 연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비’가 ‘한 송이 하늘 꽃이 피어’난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비’는 ‘하늘 꽃’이 상징하는 천사의 이미지일 것이고 하늘의 말씀이며 진리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당신’으로 지목된 절대자와 ‘나비’의 출현으로 하여금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 곧 수평의 축과 수직의 축이 만난 꼭짓점에 서정적 자아가 오롯이 자리 잡고 누워 있음을 암시 받게 된다.
 
 ‘나비’는 ‘말씀’을 전하는 하늘의 전령일 것이고, ‘말씀’은 하늘의 복음이며 진리일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성결한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 폈다가’ 하는 모양 역시 상징성이 짙다. 인간 존재의 생과 사의 문제, 선과 악의 역사적 부침을 함축한 관념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날개를 접는 나비의 행위는 죽음과 죄악이라는 하강의 이미지를, 날개를 펴는 행위는 신생(新生)과 진선(眞善)이라는 상승의 이미지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명상을 통하여 이러한 천상계와 지상세계와의 소통의 길을 터놓고 동시에 구원의 패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목천의 시는 자연과 소통하되 절대 신神과도 내통하는 정관의 시 세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교적 신성에 이르는 성취감을 자연의 오묘한 내면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