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음에서 없음으로 간다
성주괴공 시각에서 보면 어차피 인간의 종착역은 공(空)이다. 인간의 마지막 도달점은 어디인가? 즉 죽는다면, 빔 즉 공(空)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있음에서 없음으로 가는 것이다. 권력이란 측면에서 보면, 권력의 가짐에서 무권력으로 가는 것이다. 있음에서 없음으로 간다는 말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사람이 있단다면, 끝내는 애인 사이도 없어지고, 친구 관계도 없어진다. 삶의 마침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없어짐에 도달한다. 그래서 공(空)이 있기에 성주(成住)가 빛난다.
괴(壞)의 과정을 거치면 마음고생이 뒤따를 것이다. 필자는 시 “큰 수레바퀴”에서 성주괴공이 무엇인지를 관조해봤다. 운명의 바퀴가 돌아가는 것을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수레바퀴가 365일 내내 돌아가고 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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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얼음 호랑이”라는 시 속에 성주괴공의 일목요연함을 담아 보았다. 얼음 조각을 하는 조각가는 물을 얼려서 얼음을 만들고, 그 얼음에 조각을 한다. 조각가는 동물 중의 왕적 존재인 호랑이를 조각했다. 그가 애써 만든 얼음 호랑이는 끝내 녹아서 물로 환원해 버린다. 이건 모든 인간의 운명과 동일과정일지 모른다.
“평생 조각을 해온/내가 알고 있는 조각가는/영하 20도의 얼음 방에서/ 꽁꽁 언 얼음으로 호랑이를 만들었다.//권력자들이 모인 호텔 행사장에 전시된/얼음 호랑이는/호랑이 모습을 빼 닮아 용맹스러웠고/힘 있는 사람들의/시선을 사로잡았다.//실내 기온이 더워지면서 얼음 호랑이가 녹아내려/웅장했던 호랑이는/끝내 물로 변하고 말았다.//조각가는/물에서 얼음이 왔고, 얼음이 물로 돌아간 순환을/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 그런 거지./허무하지.//허무라는 빛이 자신의 가슴에 이미 와 있음을/느끼고 있었으나/ 허무라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얼음도 물도 작가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이미 알고 있어서이다.('얼음 호랑이'의 전문)”
시에 성주괴공을 대입시켜 볼 수도 있다. 시로 공(空)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 속의 공은 텅 비어 있지 않다. 텅빔을 바라보는 아름다움도 내재되어 있다. 모든 인간은 소멸하고 만다. 그러나 시는 유감스럽게도 그 소멸을 바라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건방지다. 필자는 그래서 시를 쓴다. 이게 시의 위대함이라면 위대함이다. 시는 인간으로서 나의 산물 이면서도 나의 일부가 결코 아니다. 인간이 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필자는 “물에게 인생을 배운다”라는 시에서 물이 불어나고 물이 줄어드는 한강 하구의 변화를 노래했다.
“초저녁, 마포대교 밑에 앉아 있으면/물이 불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밤이 깊어져 물이 빠져 나가면/다리기둥에 물 빠진 흔적이 선연하다.//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밀물-썰물 때가 있게 마련이지.//물이 들 때처럼/일이 잘 풀릴 때가 있고/물이 빠져 나갈 때처럼/무슨 일을 해도, 손해가 눈에 보일 때가 있지.//한강물 거대한 하류에도 물이 불때와 줄때가 있듯/사랑하는 사이라도 좋을 때와 미울 때가 있겠지.//좋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며/차고 넘치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때/이를 행복해야 하노니//필요한 것을 손과 가슴이 가지고 있을 때/빈손의 세월이 올 수도 있음을/물을 보며 배우나니//여의도 국회의사당 옆, 강물은/매일같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나니//어차피 인생도 물처럼 들고 나는 것.//소리 없이 물이 줄고 불어나는 강가에 앉아/인생을 배운다./풍성한 한강물마저 항상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것을. ('물에게 인생을 배운다'의 전문)”
시로 그려본 봄 즉 성(成)
성(成)은 좋다. 4계절로 치면 성은 봄에 해당된다. 봄이 오면, 죽음처럼 잠들어 있던 산하가 움을 틔운다. 필자는 “봄을 향한 아우성”이란 시에서, 글로 봄적 존재인 성(成)을 그려 보았다.
“보이지 않은 곳으로부터/봄바람이 몰아쳐와/나무와 풀들의 가슴에 봄기운이 당겨져/파릇파릇 대지를 색칠하는데//저 넓은 산야가/일시에 움직이고 있다면/그 어딘가에, 거대한 힘은/분명, 존재하는 거지.//한 해 한 번씩은 봄이 어김없이/온 산하를 녹색으로 물들이듯이//그대, 가슴 안에 회색빛인양/나른해진 삶의 색깔을/녹색으로 바꿔 보는 게 어때.//그리하여 갈대 서걱이는 죽음을 넘어/푸른 잎 넘실대는 초원이/가슴에 들어앉게 한다면//삭막해진 마음의 빈틈에 끼어 있을/미움도, 원망도 지워내고//소리없이 다가온 봄기운이/쑥들을 쑥쑥 자라게 하고/온 겨울 삭막하게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던/나뭇가지마다/고운 잎을 내밀게 하는, 이때//그대, 웅크리고 있던/폐쇄된 마음의 빗장을 밀쳐낸다면//깨물면 아플지 모를 어린애 손가락처럼/이쁘게 흙을 밀치고 올라온 새싹들을/바라보고 있노라면//들판에 펼쳐지는/어머마어마한 봄의 향연을/눈에 보이는 그대로/그대 가슴에 하나하나씩/주렁주렁 걸어주고 싶구려.//봄이 스스로 걸어나와/천하를 바꿔놓았듯이//그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가지고/사랑으로, 사랑으로 걸어나와/봄을 향해/삶을, 진한 녹색으로 화답하소서.('봄을 향한 아우성'의 전문)”
봄기운은 쑥을 쑥쑥 자라게 한다. 봄은 4계절에서 첫 계절이다. 처음에 온다. 자연은 돌고 돈다는, 순환시각에서 보면, 봄은 겨울 뒤에 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루에도 성주괴공은 반드시 있다. 빛과 어둠이 존재한다. 밝음을 성주라한다면 석양과 밤은 괴공이다. 생각의 무성함 뒤에 오는 공허도 괴공이다. 괴공은 상처이다.
공으로 가야할 인간이란 존재, 그러나 인간에게 이어 괴공이 있기에 성주라는 존재가 부각된다. 필자는 “상처”라는 시에서 나의 내면서 들어있는 성주괴공을 읊조렸다.
“만나도만나도 그리움이란 항아리를 채울 수 없어/매일 만났던 정들었던 사람이/어느 날부터 만나지 못하는 아니, 만날 수 없는/죽음이란,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났다.//삶과 죽음은 늘 맞붙어 사는 이웃 같은 것//장례식 날/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장지엘 따라 가지 않았다./길바닥에 앉아 헤어짐에서 오는 슬픔을 눈물로만 닦아냈다.//어딘가에 살아 있으나 만날 수 없는 사이라고/내가 날 속이기로 했다./그러나 내가 날 속인다고 속여지지 않았다.//생각이 날 때면 너무 그리워/강변에 선 서리 맞은 코스모스 대들이 바람에 부딪치며/까시락까시락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내 가슴을 후볐다.//죽음이 가져다준 이별이 덧난 상처 되어/쓰리고, 꼭꼭 찔리는 아픔으로 변해/보고픔이 더해갔다.//죽음이 나와 친구하는 날/사랑이 남긴 길고 긴 고통이 끝날까. ('상처'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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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저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무지를 원천적으로 해소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저 세상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저 세상은 가보지 못하는 미지의 세상이다. 공(空)처럼 존재하는 세상이 저 세상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역순은 공괴주성(空壞住成)이다. 어쩜, 성주괴공은 공괴주성과 맞물려 있는지 모른다. 필자는 시 “희망”에서 죽음 이후의 희망을 보았다.
“태어남이 처음의 자연스러움이라면/죽음은 마지막으로 장엄한 자연스러움이다.//벽제 서울시립장제장을 취재하다가/화구를 볼 수 있었다./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고열로 타고 있는/모습을 직접 보았다.//화장터 굴뚝에선/희부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육신이 그렇게 하늘로 증발하고 있었다.//죽음은 길고 긴 이별이라는데 충격을 받아/며칠간 열병을 앓았다.//아끼던 몸뚱이가 무(無)로 변하는 현장에서/삶의 끝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허무감을 느꼈고/어찌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고 싶었다.//누구나 죽으면 한조각 구름으로 변해/육신은 일순간에 해체되고 만다.//사람의 몸이 타면서 남긴 퀴퀴한 냄새/나도 모르게/존재라는 유약함에 눈물을 흘렸다.//영원으로 여행을 떠나는/영가를 위한 위령의식이/삶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워 부르르 떨었다.//죽음이 차디찬 얼음인양 냉혹하다는/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하나만으로도/살아 있음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짜릿짜릿한 행복이라는 것을//고인을 떠나보내는 조화 속의/한 송이 꽃은/생명이 곧 희망이라는 듯/붉게붉게 웃어보였다.('희망'의 전문)”
존재로서의 꽃나무에게 꽃은 최절정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꽃에게는 낙하의 계절이 필히 오고야만다. 꽃은 낙화의 시점이 오면,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리곤 썩어진다. 끝내는 쓰레기가 된다. 괴(壞)는 사랑에 있어 이별에 해당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게 괴(壞)이다. 다시는 만날 수 없거나 철저히 무너져 내리는 절망을 의미한다. 필자는 시 “운명”에서, 가을 들국화의 낙화를 보면서 자연의 윤회과정을 볼수 있었다.
“쪽빛 하늘을 친구삼아/낮으막한 산비탈을/온통, 해롱해롱 꽃피운, 가을 들국화//꽃들이 모두 지고나면/드넓은 산야는/바스락바스락, 잎들마저도 말라 비틀어져/초라해진다.//제발, 화려했던 꽃을 향해/누추함을 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세상의 주역처럼 살던 사람이/할일을 잃고 풀이 죽어 걸음을 걸어도/축져진 어깨에선 가련함이 묻어난다.//시들어 볼품없이 앙상한 꽃이라 해도/환희로웠던 한 때를/되새김질 할 수 있는 특권은 있다.//내 친구야/몰아쳐온 겨울 같은 인생 찬바람에/사는 게 삐걱대더라도//앙상해진 들국화 꽃대들끼리/몸과 몸으로 부딪쳐 사각소리를 내듯//악을 을 쓰면서도 기뻤던 시절의 영화만은/잊지를 말게나.//빛남과 사그라듬은/자연의 운명이니까.('운명'의 전문)”
사랑하는 사람은 필히 헤어져
괴(壞)와 공(空)은 늘 허무를 동반한다. 무너져 없어지는 것을 시의 입장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허허롭고 늘 허무한 것을 어쩌랴. 허공(虛空)이란 진정 비어 있는 것인가? 비어 있기에 꽉 차 있음을 기대하는 게 아닐까? 그 텅빔, 공(空)이 있기에 성주(成住)가 돋보이고, 그로부터 성주(成住)의 빛남이 있는 게 아닐까? 필자는 석양노을에서 거대한 아쉬움을 보았다. 필자는 높이 떠 비상 중인 비행기 속에서 노을을 봤다. 시 “노을”에 그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마닐라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는/아시아나 비행기 안에서, 높은 하늘 위에서/태양이 어둠 속으로 숨는/큰 이별 같은 노을을 봤다.//지평선인지 수평선인지/하늘 방향으로/길고긴 옥양목에 물든 붉은 빛이/빨래인양 걸려 있었다.//높은 상공에서 본 노을은/땅에서 본 노을과 달랐다.//말할 수 없이 충만한/사랑의 추억을 남기고 떠난/고운 님 같은 노을//비행기 안에서/광명을 감춰 주는 어둠이라는 큰 존재가/석양노을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사랑하던 사람끼리 서로 이별하고 나면/아름다운 추억이/한 가지라도 남게 마련인데//태어나 처음 본, 그 노을이/눈이 부시도록 영혼이 떨리도록/아름다운 이유는/빛과의 이별이 가져다준/ 거대한 아쉬움 때문 일거야.('노을'의 전문)”
죽음은 아픈 고통이고, 처참한 일이다. 다시는 못 볼 이별이니까. 하지만, 영혼의 세계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면,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을 상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그런 좌절은 사치일지 모른다. 필자는 시 “대화”에서 산자와 죽은 자 간의 대화를 그려봤다.
“개똥밭에 뒹굴지라도/저승보다 이승이 낫다.//영험하다는 계룡산 계곡은 무속인들의 기도처/하던 사업이 망해 자살한 이의 구령을 위해/밤새 굿판이 벌어졌다.//깊은 밤, 징 장구 꽹과리 태평소 소리에/무녀의 굿은 절정에 이르고/영매의 입에서 사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굿판에 동참했던 이들은/살아 있을 때의 구구절절한 애달픔이 담긴/영가의 목소리에 통곡했다.//죽음 너머의 세계를 이어주는 영가와/가족-친구-친지 간의 대화는 신비로웠고/무녀는 초월세계를 알려 주었다.//살아 있을 때 서로 간의 한마디 대화가/감격스러워 그렇게 호곡할 수는 없었겠지.//생전에 한잔 술 주고받으며 나누었던/친구 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그렇게 기쁠 수도 없었겠지.//산자끼리의 말 주고받음이/그토록 중요한 줄 알았다면/서로가 말할 때 너무 기뻐서 날뛰었을지도 모르지.//영매에 빙의된 한 많은 영가는 잠시 후 떠났고/다시한번 울음판이 이어져/죽은 자의 고통 보다는 산자의 고통이/상 위에 진열된 시루떡 검붉은 팥에 달라붙은/계곡의 짙은 어둠보다 진했다.//죽은 자든 산 자든/서로 말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은/죽음만큼 아픈 고통이다.('대화'의 전문)”
살아있는 자의 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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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이 아무리 묘지를 잘 가꾸어도/묘지 속 선조들은 결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한번 둥그렇게 만든 묘지는 세월에 삭아 흙이 흘러내리고/잡풀이 무성해지더라도 둥그렇게 그 자리만은 지킨다.//망우리 공동묘지 길/친구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세상을 살고 있을 때 정치인으로 떵떵거리던 사람/돈 자랑하며, 위세 등등하게 부자로 살던 사람/아름다운 시와 치열하게 소설을 썼던 유명 작가들/묘지는 묘 주인을 칭송하는 비문으로 빛났다.//씨팔씨팔하며 세상을 힘겹게 살았던/묘비 없는 묘지도 많을 것이다.//몇 번이고 그 길을 거닐어도/묘에서 벌떡 일어나 산 사람을 반기는 이적은 없다./다만,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산 사람들이/묘지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죽은 사람들의 묘지는 아무 말이 없을 것이고/산자들은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대로/무어라고 무어라고 외칠 것이다.//무작정 침묵과 남이 하지 않은 그 무언가의 행동은/산 자와 죽은 자를 감별해 주는 도구다.//산자여, 살아 있음의 특권을 누려라. ('산자의 특권'의 전문)” moonilsuk@korea.com
**문일석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시 분과)이며, 본지 발행인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