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가끔씩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한강 가에서 일출을 본다. 구름이 없는 맑은 날이면, 말 그대로 찬란한 아침 햇빛을 볼 수 있다. 남양주시 예봉산 너머로 눈부시게 떠오르는 일출을 보곤 한다. 태양이 얼굴을 내미는 그 시간이 되면 황홀한 밝음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청명한 날에 태양이 하늘에 떠 있으면, 하루 종일 밝음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다.
달빛마저 없는 어두운 한 밤중, 이때 어둠을 향해 손을 내밀면 손 안에 어둠이 가득해진다. 까만 색깔이 아주 까맣게 손가락 끝에 대롱대롱 걸려 있는 것 같다.
삶의 진한 속사정을 털어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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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왜 어두운/밤에만 뜨나요?//훤한 대낮에 뜨지는 못하지만/어두운 밤이면 떠서/밤을 사랑하는 사람의/친구가 되어주잖아요.//무한대 하늘에/보이지 않은 별들도 많겠지요./그 중에서도/반짝이는 별이 있기에//행복한 사람을 생각한다면//한번 쯤 어둠과 함께해온/속 좁은 사람도/기억이나 해주소.//보잘 것 없는 날 위해/그 멀리 우주에서/찾아온 별처럼.(필자의 시 '별 그리고 나'의 전문)”
이 시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호소문일지 모른다. 무슨 일을 하며 살든지 세상을 산다는 것, 그 자체가 힘들 일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 살기가 힘들더라도, 그 세상 속에서, 희망이라는 끈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희망이라는 것 마저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면 어두움의 노예가 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시 “등대불“에서 희망으로서의 '그이'를 만나 삶의 진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고기를 잡으러 바닷가에 나간/어부가 한 밤중에 풍랑을 만났습니다./파도와 싸우기도 힘이 드는데/칠흑의 어두움이 더 무서웠습니다.//기진맥진해진 어부는/배와 함께 바다 속으로 침몰될 위기와/싸우고 또 싸웠습니다.//더 큰 고통은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분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돌아갈 항구의 방향을 모르는/까만 절망/죽음의 목전/그때 등대불이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등대불은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어부처럼 삶의 절망 한 가운데/세상의 풍랑과 싸우고 있을 때/등대불 같은 한 사람을 만났네요.//그 사람 곁에만 있어도/그이의 반짝거리는 눈빛만 봐도/금방 절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믿음이 드네요.//어부가 망망대해에서 희망을 발견했듯/등대불처럼 홀연히 나타난/그이는 나의 희망입니다.//그 희망에게 잘 보이기 위해/필사적으로/어둠-절망-죽음과 싸울 것입니다.//피투성이채로/그이를 향해 무릎을 꿇고/나약한 모습으로/평생을 살더라도/생명이 있어 행복할 것입니다.//그이는 나에게 있어/등대불과 같은 존재이니까요.(필자의 시 '등대불'의 전문)”
생은 필히 대칭적인 것
생은 필히 대칭적인 것이라고 전제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기쁨이 있다, 삶은 대칭적이기 때문에 기쁨의 자리에 슬픔이 자리해서 앉아 있을 수 있다. 삶의 길목에서 스스로 생각해도 기쁜 일이라고 생각되어지는 일과 마주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도무지 상상 못할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그땐 얼마나 기쁘겠는가? 삶은 기뻐할 수 있어 아름다운 것이다. 필자는 시 “편한 사람에게 바치는 시”에서 슬픔 뒤에 도도하게 숨어 있을 기쁨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기쁘다는 것은 어찌됐든 좋은 일이다.
“삶을 살다가/우연하게 만난 사람이/잠시 같이 있어도/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몇 시간 함께 있어도/인생이 다 저물도록/잊고 싶지 않은/아쉬운 사람이 있다.//삶을 살다가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감동에 젖게 한/그 사람을 생각한다.//사람에게서/만족감을 얻는다는 것은/보통일이 아니다.//오늘 이후, 우연하게, 또/편해지는 사람을 만난다면/고백할 일이 하나 있다.//삐거덕 거리는/시골자갈길 달구지처럼/살아온 내 인생이지만//덜거덩 거리는, 먼지 휘날리는, 말도 많은/나의 인생이 있기에/그대를 만날 수 있었다고.//그래서 무한한 아름다움에/빠져들 수 있었다고.//그대와 더불어 무척이나/행복에 젖어, 눈물 글썽이는/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필자의 시 '편한 사람에게 바치는 시'의 전문)”
일본을 방문했을 때 수십 킬로미터를 직선으로 달리는 신간선 고속열차를 타봤다. 기차는 그야말로 굽지 않은 레일 위를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갔다. 그 길을 반대로 되돌아 타 보기도했다. 반대로 달려도 역시 곧은길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그런 곧은길만이 있는 게 아니다. 구불구불 굽은 길도 있다. 인생이란 길은 한번 지나가면 결코 다시금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다. 그런 외길에서 모든 사람은 비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필자는 시 “큰 비밀”에서 그런 비밀을 요리해봤다.
“온갖 일이 많은/이 세상을 살면서/감춰두고 싶은/큰 비밀 하나 있으면 좋지//책상 서랍 후미진 곳에/나 혼자만 겨우 찾을 수 있도록/감춰둬도 좋고//책갈피 속에/꼼쳐둬도 좋고//나프탈린 냄새가 나는/옷장 속 상의 속주머니에/깊이깊이 넣어줘도 좋고//비밀번호가 있어야/열어볼 수 있는/이메일 함에 저장해둬도 좋지//사랑의 언어가 담긴/옛날식 편지지의/연애편지//시간이 갈수록/글씨는 낡아 가는데/그 속에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깃들어 있으면 좋지//죽기 전 언젠가/이 진주 같은 비밀을/가장 날 믿고/제일 좋아하는 친구에게/말할 수 있다면//그리움으로 늘 존재하는/날 사랑해준 사람의/훈훈한 정감이/은밀하게 남아 있다면/이 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아무에게도/보여주고 싶지 않은/내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둘/큰 비밀 하나 있으면/정말 좋지./세상 살맛나지.(필자의 시 '큰 비밀'의 전문 )”
가까이 오는 깨달음의 보따리
빛과 어둠, 일출과 일몰, 희열과 슬픔, 그 사이에는 기다림의 공간이 있다. 너무 슬픈 땐 무작정 길을 걸어가 보는 것이다. 너무 기쁠 땐, 아름다운 꽃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오는 그 무엇과 상봉해보는 것이다. 너무 슬퍼 길을 무작정 걷노라면 그 의미가 담긴 깨달음의 보따리가 가까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쁜 일이 있어 쳐다보기도 아까운 꽃을 하염없이 쳐다보노라면 낙화라는 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실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시 “약수터의 기도”에서 사라하는 사람과 헤어져야하는, 그래서 사랑하고 있을 때, 그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인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전율해 보았다.
“졸졸 물줄기가 끊이지 않은/수석동 약수터에/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이유는/목마른 이들이/물을 마실 수 있어서입니다.//기도하는 이는/약수터와 같은 사람입니다.//누군가의 목마름/갈증을 풀어주기 위해/남들이 잠든 시간에/잘되기를 빌어주는 사람입니다.//물이 쉼 없이 흐른다는 것은/사람이 사람을 위해/기도하는 것과 같나니/그 기도에/영혼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요,/시름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사랑하는 사람에게/고백할 일이 생겨 약수터에 갔네요./그리고 빌면서 기도했네요.//내 기도의 힘이/이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하더라도/그대 따뜻한 마음/한켠, 어느 구석에 자라는/제비꽃 되어/한 잎 한 잎 맑게맑게/웃을 수만 있게 해달라고//기도하나니/청초했던 내 인생의 꽃잎이 모두 떨어져/내 영혼이 마른 줄기 되어 앙상해질 때까지/그대 사랑의/목을 축여 행복하다고//그대와 더불어 있어/이 세상이 살만하다고//이런 느낌을 고백할 자유라도/한강물처럼/푸짐하게 허락이나 해주소.//기도하나니/그대 곁에 있으면서/고운 입으로 가시처럼 말했던/구업(口業)을 엎드려 사죄합니다.//삶이란, 갈증 날 때의/작은 약수터 같은 것인데/한강물을 다 떠나줄 듯했던/허세 부림을 용서하여 주십시오.//한강변, 초라한 약수터에서/물 한 잔 마시며/살아 있다는 것이/이렇게 환희롭다는 것을/내가 알아차렸듯이//내가 사랑했던/내가 좋아했던 그대에게/이 전율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습니다.//약수터 샘물은/어제도 흘렀고, 오늘도 흐르고/내일도 흐를 것입니다.//고개 숙여 약수를 뜨듯/내가 사랑하는 그대에게/허리를 굽히고/그대와 함께/이 세상을 살고 있어/정말정말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네요.(필자의 시 '약수터의 기도' 전문)”
도로에 차 한 대가 지나가면, 뒤따라서, 그 도로와 그 인근에까지,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걷다가 발 뿌리로 박힌 돌을 걷어차 본 적이 있다. 박힌 돌이 발끝에 차이듯이 어찌할 수 없이 슬픈 현실과 맞닥뜨릴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그 슬픔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미 인생이란 창고에 준비되어 있다가 스스로 걸어 나오는 기이한 물건과 같은 게 아닐까라고 생각해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분명 희열이었지만, 그 사랑하는 사람과 운명적으로 헤어져야한다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찬란한 일출이 있는데 이윽고 그 자체가 슬픈 일몰도 준비되어 있는데 이를 어쩌랴.
낮 새는 낮을 기다리나니…
눈으로 어두움을 소화하지 못하는 새들은 어두운 밤이면 어둠 속을 날지 않는다. 밝음을 소화하지 못하는 새들 역시 훤한 낮이면 밝음 속으로 날갯짓을 하지 않고 휴식을 한다. 낮에 활동하는 낮 새는 낮을 기다린다. 그리고 밤 새는 밤을 기다린다. 낮 새는 웅크리고 앉아서 밝음이 오기를 기다린다. 빛을 기다린다. 빛을 사모하는 것이다. 빛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필자는 시 “하늘보다 강물보다 꽃보다”에서 희망으로서의 그대, 빛으로서의 그대가 “내 영혼 속에 언제나 꽃잎처럼 피어 있기를…”이라고 읊조렸다.
“머리 위엔 파란 하늘/길섶에는 넓은 강물//곁에만 있어줘도 좋은/그대와 함께 거닐던 꽃길//하늘보다/강물보다/꽃보다./그대의 눈빛이 더 좋았소.//창공엔 뭉게구름이 가득/잔잔한 바람에도 이는 물결/풀벌레 소리에도 미소 짓는 꽃잎//그대 목소리만 생각해도//구름만큼 바람만큼 꽃잎만큼/내 영혼이/떨고 있어요.//별들이 총총 떠 있는/무한대 하늘아래//그대와 함께 산다는 것보다//의미 있는 일을/영원히 찾지 못할거요.//들판의 야생화/흐드러지게 피어 있듯//그대 생각/내 영혼 속에/언제나 꽃잎처럼 피어 있을거요.( 필자의 시 '하늘보다 강물보다 꽃보다'의 전문)”
시인의 예언자적 기능
삶에는 분명하게 빛과 어둠이 공존하고 있다, 그 누구든, 밝음의 시기가 있는가하면 어둠의 시기가 있다. 시인은 예언자는 아니지만 때론 예언자적 기능이 있음을 스스로 나타내 보일 때가 있다. 모든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고 있기에, 원도 한도 많을 것이다. 그러기에 영존을 꿈꾸고, 시대를 초월한, 힘 있는 영적-초월적, 큰 능력자를 기다린다.
종교의 구도자들이 줄기차게 거론해온 미륵이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부처님 이후 이 세상에 오신다는 미륵이란 존재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살아온 민중이 인민이 기다리던 미륵. 도탄에 빠진 삶을 구원해줄 구원자로서의 미륵. 필자는 시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磨崖佛)“에서 서민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1천년이 넘도록 기다리던 미륵과 마주쳤다. 이 시를 말미에 소개하며, 역사의 어둠으로서가 아닌 역사의 밝은 미래로서, 민중의 가슴 속에서 늘 살아서 꿈틀댔던 미륵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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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시 분과). 본지 발행인기도 하다. moonilsuk@korea.com
*필자/문일석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