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하한정국 속에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박희태·정몽준·이재오 이들 모두 지난 상반기 동안 정치적 돌파구 마련에 부심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원외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정 최고위원은 당내세력 강화는 요원한 상태.
이 전 최고위원은 정계복귀 발판이 마련되지 않아, 발이 묶여 있다. 사실 이들 모두 여권 내 2인자 그룹에 속한다. 다만 제대로 된 2인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 있기도 하지만 1.5인자나 다름없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뛰어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도 이들의 한계다. 하지만 이들 모두 8월 하한정국 속에서 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는 데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10월 재보선과 8월 중순 개각이 그 기회가 될 것이라는 데에 이견이 별로 없다.
박희태, 10월 재보선 ‘올인’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로서는 원내 진입이 최대 숙원이다. 지난 4월 재보선 당시 출마를 고민했으나, 뜻을 접어야 했다. 청와대 등 친이 주류측의 만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당시 실세그룹 ‘6인회 멤버’였던 박 대표가 당내 실세로 자리잡지 못한 배경이 원외라는 꼬리표 때문이라는 진단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박 대표가 원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0월 재보선 경남 양산 출마를 사실상 확정한 상태다. 경남 양산에 ‘올인’ 하고 있는 박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 등 친박진영과 코드를 맞추는 등 사전 정지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경남 양산은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다. 즉 박 전 대표의 지원사격은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그간 친박진영과 유대를 강화해 왔다. 친박 의원들의 복당과 당협위원장 교체 과정에서 편을 들어왔다. 최근에는 친박연대 통합 가능성까지 내비치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남 양산에서 지난 18대 총선에서 친박주자로 나섰던 유재명 전 한국해양연구원이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점은 박 대표로선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유 전 연구원은 지난 총선에서 상당한 득표수를 기록했다.
게다가 경남 양산의 지역구였던 김양수 전 국회의장 비서실장도 과거 설욕을 씻기 위해 가세하는 등 박 대표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박 대표가 대표직을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박 대표의 출마보다는 대표직 조기 사퇴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당내 역학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를 놓고 친이·친박 간의 입장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왔다. 친이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개편 및 개각 등 대대적인 쇄신을 단행하는 만큼 보조를 맞춰 당도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쇄신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왔다.
반면, 친박진영은 조기 전당대회를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정계복귀 발판이라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 온건적 성향의 친이계도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복귀로 당내 화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며 거부감을 나타내면서 조기 전당대회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형국이다.
그러나 박 대표가 어떠한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조기 전당대회 논란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친이 주류측에서는 박 대표가 대표직을 등에 업고 출마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 대표의 출마는 ‘정권 심판론’과 함께 ‘언론관계법’의 국민적 심판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표직을 가지고 출마해 만일 낙선할 경우 이는 여당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논리로 대표 조기 사퇴론을 주장하고 있다.
친박계는 박 대표가 대표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출마해야 하며, 출마 시 적극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친박측은 9월 조기 전당대회는 물론 박근혜 전 대표의 잠재적 라이벌인 정몽준 최고위원의 대표직 승계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한 중진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박 대표가 대표직을 가지고 나가야 박 전 대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 아니냐”면서 “당 대표가 출마하는데 박 전 대표가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대표직 조기 사퇴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경남 양산이 박 전 대표의 영향력 아래 있는 만큼 박 대표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지난 총선 때 친박 무소속 후보로 나와 30%가 넘는 득표율을 보인 유재명 전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이 경남 양산에서 출마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져, 박 대표의 운신폭을 좁게 하고 있다.
이처럼 10월 재보선 선거전에서 친박 지원이 절실한 만큼 박 대표로선 선택을 하기가 난감한 입장이어서 절충점을 택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몽준, 당내 뿌리 내리기 잰걸음
정몽준 최고위원의 딜레마는 당내 뿌리 내리기다. 정 최고위원은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대표 차점자로 최고위원에 올랐지만 친이·친박 틈바구니 속에서 독자적 세력 확보에 한계를 보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정 최고위원은 친이·친박 양측을 비판하면서 제 목소리 내기에 나서기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최근에는 서울시당위원장 경선에서 친이 주류측과 관계를 맺었지만 권영세 의원이 당선되면서 정 최고위원은 상처만 받았다.
하지만 정 최고위원도 돌파구를 마련할 기회가 찾아왔다. 박 대표가 오는 10월 재보선 출마에 앞서 당 대표직은 내놓을 경우, 차점자인 정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받을 수 있게 된 것.
정 최고위원이 당 대표직을 물려받게 되면 자신의 약점이 독자 세력화를 꾀할 수 있다. 또 내년 초 전당대회가 개최된다면 당내 최대 주주인 이재오 전 의원, 박근혜 전 대표와 제대로 맞붙을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할 기회가 주어진 다는 점에서 정 최고위원은 호기를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박 대표가 아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고, 친박진영 쪽에서는 박 대표가 대표직을 걸고 출마하기를 원하고 있어 현재로선 정 최고위원의 바람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년 초 전당대회가 개최된다면 당내 최대 주주인 이재오 전 의원, 박근혜 전 대표와 제대로 맞붙어 자웅을 겨뤄볼 수 있는 기회다. 어느 경우나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다. 다만 정 최고위원측 한 관계자는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돌아가는 사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며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기보다 이끌려 가야 하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때 서울시당위원장 경선을 놓고 ‘이재오·정몽준 밀약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정 최고위원의 측근인 전여옥 의원이 친박계와 중립의 지지를 얻은 권영세 의원에게 패함으로써 이들의 전략적 제휴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9월 조기 전당대회는 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으며, 박 대표 사퇴 여부가 남은 변수다.
하지만 당내 친이계 일부는 정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맡을 경우 ‘부자 정당’ 소리를 듣게 될 것을 우려해 안상수 원내대표 대행 체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정 최고위원이 그간 의원 및 당직자들과 두루 만나 식사를 하고, 당 내외 행사는 가급적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스킨십을 넓혀왔지만, 아직 재벌 이미지를 불식하고 대권주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같은 벽을 깨지 못해 각종 여론조사 지지율이 10% 미만에 머무르는 것도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정 최고위원측은 대표직을 승계하면 리더십을 발휘해 당내 우군을 확보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대표직을 승계하기 위해서는 박 대표의 결심을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 이후 당내 주도권 확보를 둘러싼 친이·친박 간의 복잡한 함수를 풀어야 한다.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주도적으로 판을 이끌어 나가고, ‘여권 유력 대권주자’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기 위해 세를 확보하고 그에 걸맞은 정치력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이재오, 전당대회서 입각으로 u턴?
권력의 2인자로 불렸던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정계복귀가 하한 정국을 거치면서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최고위원이 정계복귀 발판으로 꼽혔던 9월 전당대회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다른 활로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조기 전당대회론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지만 한나라당 당헌·당규 개정특위가 공식 출범, 개정작업에 착수함에 따라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이 전 최고위원의 정치복귀 시나리오가 무산된 만큼 이 전 최고위원의 입각설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것.
이 전 최고위원은 입각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치상황 변화에 따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친이측에선 자원외교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이상득 의원의 공백을 메울 인사가 이 전 의원이란 공감대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역할이 주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정치권에선 내년 초에나 있을 당권 도전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입각하는 쪽이 친박계의 반발을 피하면서 차츰 정치 복귀로 옮기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책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은 지난 6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전 최고위원이)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이명박 정부 탄생의 일등공신인데 정치 일선에 나서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라며 “대통령이 (입각시키겠다고)판단하시면 그 부분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안상수 원내대표는 지난 5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2기를 맞아 대폭 개각으로 인적쇄신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적어도 한나라당 의원 3∼4명을 입각시켜 정무적 판단을 보완하고, 민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정치인 입각 군불을 때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이 전 최고위원의 입각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집권 2년차에 강력한 국정드라이브를 걸기 위해서는 충성도가 높고 정무감각과 추진력을 갖춘 측근 의원들을 행정부 요직에 포진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
이번에도 한나라당 정치인의 입각이 실패할 경우 당·청 간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만큼 사전에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전 최고위원의 입각에 대한 당내 분위기는 우호적이다. 그가 내각에서 국정운영을 힘있게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깔려 있다. 동시에 아무래도 내각에 들어가게 되면 친박계와 부딪힐 일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이 전 최고위원이 당권에 여전히 관심이 많아 입각이 성사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희태 대표가 오는 10월 경남 양산 재선거 출마를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는 상황도 이 전 최고위원의 눈길을 여의도 쪽에 머물게 하는 요인이다. 실제 정몽준 최고위원이 대표직을 승계하고 이로 인해 비게 되는 최고위원 한 자리를 이 전 최고위원이 맡는 방안이 친이계 일각에서 나온다.
한편에선 입각하더라도 그의 ‘강성’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 중진 의원은 “김영삼 정부 시절 최형우 내무장관처럼 사사건건 총리와 부딪치고 그럴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당내에서 그에게 바라는 게 있긴 하지만 인사란 결국 대통령과 당사자 둘의 문제”라며 “입각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