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단 풍 1 >
이 가을의 방화放火
돌대가리들도 불탄다
아궁이 속으로 몰려든 내장엔
이미 불붙은 불개미들
누가 제 속불을 끄랴
내닫느니 가을 내장산이었네
| ▲ 운명적으로 쇠잔해지는 멍에 같은 조락의 가을은 벅찬 결실과 함께 마지막 불사르는 단풍이 서글픈 듯 그리도 아름답다. | | 단풍이 없는 가을은 가을이 아니리. 열을 올리던 태양도 허덕이다가 지쳐서 그만 돌아서는 가을 길, 푸르름도 덩달아 기진했을까 노오랗게 숨을 몰아쉬며 감귤을 익히고, 마지막 불씨를 짓느라 붉게 물드는 것들, 탱탱한 능금이 익고 석류가 터지더니 급기야 불을 지른 가을! 가을의 방화다.
금년 한해도 삶의 농사 끝 추수의 절정을 축제로 불 사루는 것들. 쓰고 달고 더러는 벅차고 더러는 아쉬운 것들 주섬주섬 주워 담고 어디론가 가야하는 것들. 그런데, 그냥은 함께 갈 수 없어 잘뚝 잘라내어 마지막 한바탕 작별의 의식과도같이 제 몸에 불을 지른 것, 가을이 탄다.
타는 가을이 봄꽃을 피우듯 저리 아름다운 것은 엄연한 결별을 마다 않고 홀가분히 온몸을 던졌기 때문일까. 소갈머리 내장이 얼마나 뜨겁게 타서야 저렇게 불타는 단풍인가. 어느 인검불이 뜨겁다한들 가을 내장만큼 뜨거울까. 온 산하가 불붙기 시작한 가을의 내장, 저 용광로 같은 내장산 불을 어떻게 끄랴.
몇 년 전 단풍이 한창인 시월 끝자락에 단풍을 구경하러 전주에서 정읍을 거쳐 내장산 도로로 들어섰으나, 차가 막혀 절반도 못가서 차에서 내려 10여 킬로를 걸어야만했다. 주줄이 걷는 인파와 차들로 정읍시내에서 내장산까지 꽉 메워지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불렀기에 이리도 안달인가. 아마도 삶의 어혈을 푸느라 나선 게 분명했다. 자기 내장에 불을 지르고 불을 끄러 나선 사람들. 내장 아궁이속으로 불쏘시개같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몸부림이 장사진을 이룬 가을 길을 나 역시 구불구불 끈질기게도 걷고 걸어서 드디어 거대한 산 내장 속에 다다랐다.
불속에서 우리는 함께 탔다. 타는 것이 곧 불을 끄는 거였다. 불곰 뜨거운 불개미가슴들, 서로 눈을 맞추며 마치 한 몸처럼 탄성을 지르며 한갓 산짐승으로 마냥 뒹굴고 뒹굴었었다. 타야만 하는 불과 꺼야만 하는 불 사이 단풍이 있었다. 그건 새로워지려는 생명의 과정이듯 실화(失火)가 아닌, 자연이 숨을 내뱉는 가을 대지의 신성한 방화였다.
단풍이 들고 낙엽이 져서야 나목에 새봄이 오는 생명의 엄연한 질서, 그래서 운명적으로 쇠잔해지는 멍에 같은 조락의 가을은 벅찬 결실과 함께 마지막 불사르는 단풍이 서글픈 듯 그리도 아름답다.
그러니, 가을에는 너도나도 단풍처럼 타야한다. 타지 않으려 해도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는 순리로, 인생의 가을을 맞이할수록 내장은 더욱 뜨겁게 타면서 몸은 쇠잔해지고 머리는 허옇게 단풍들지 않던가.
가을의 방화로 타고나면 어딘가로 가야할 건널목 가을 길! 친구여, 우리 함께 단풍 속에 뛰어들어 여한 없는 불꽃으로 마냥 뒹굴어보지 않겠는가. 가세나. 가을을 보내고 남겨야할 유일한 희망하나 신나는 회춘을 위하여 절정으로 불타는 저 단풍 숲으로!
"나무토막이 불길을 내뿜으며 소리쳤네. 이 불꽃이 내 꽃이자 죽음이야! " -타고르 시 건널목
* 참고 (목천이 짚어본 2009 예측 단풍 절정기임) 가야산 10.31, 계룡산 10.29, 금강산 10.20, 내장산 11. 2, 두륜산 11. 8, 무등산 11.5, 북한산 10.29, 설악산 10.20, 속리산 10.26, 오대산 10.25, 월악산 10.26, 지리산 10.25, 치악산 10.25, 팔공산 10.31, 한라산 11.5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 표현 신인작품상 수상 詩集 등불 하나가 지나가네 물 길어 가는 새떼들
|
|
|
|
|
|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