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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석 시인 詩 애독자 '본지 5만명' 돌파

너무 많은 분들이 찾아와 시를 애독해 주셔 저 자신도 깜짝 놀라!

문일석 시인 | 기사입력 2009/11/25 [15:53]
시인(詩人)인 저는 간간이 시를 써왔습니다. 그간 1백 20여편의 시를 썼습니다. 제가 쓴 시 가운데 더러는 습작 수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 시상과 시어를 보고 독자들이 조금의 느낌이 있을지 몰라 인터넷 신문인 브레이크뉴스(http://www.breaknews.com)에 올려놓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간 제 시를 보러 찾아온 네티즌 여러분들이, 11월 25일 현재 5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제 시를 애독해 주셔서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브레이크뉴스 초기화면 상당 오른쪽에 있는 검색 옆의 '자세히'를 치고 들어가 검색어 난에서 '문일석 시인'이라고 입력하고, 검색 종류에서 '기자이름'을 입력 후 검색을 클릭하면, 제 시들이 줄줄이 튀어나옵니다. 제 시를 애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기회를 이용, 제가 스스로 썼던 시론(詩論) 한 편을 재 소개합니다.
 
스스로 쓴, 사랑 관련 실험적인 시론(詩論) 
 
과연, 시로 사랑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 가슴 속에 충만한 사랑을 지닌, 위대한 사랑의 존재인 독자들과 이 실험적인 시론(詩論)을 통해  잠시 함께 인연이 될 수 있어 영광이다. 심오한, 아주 뜨신, 사랑에 빠져 익사해도 행복할, 사랑의 등불을 들고, 이 험악한 세상을 시와 더불어서 알콩달콩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본 시인의 유치하기 그지없는, 최근에 쓴 시 몇 편을 소개하며, 각자 가슴에 있는 지고한 사랑에 시인의 서툰 애교를 더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인용하는 필자의 시는 주요 구절이 아닌 전문을 인용하기로 한다. 혹여, 시인인 필자가 시를 쓸 당시의 솔직한 감정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인간은 어차피 유한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지구가 존재하는 한, 사랑이란 무한한 감정은 태양처럼 영원하게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이 시론을 씀에 있어, 이 글을 앞세운다.
 
▲ 문일석  시인   ©브레이크뉴스
필자는 기자생활 35년째, 긴 세월을 기자-르포라이터로 살아온 사람이다. 기자정신은 날카로운 송곳이나 면도날처럼 사회에 메스를 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자정신의 최종 지향점은 결국 이 사회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맘 놓고 말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확대. 이것이 기자를 기자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든  50대 말에야 시인이 됐다. 늦깎이 시인인 셈이다. 시인은 기자와 비교할 때, 어떻게 다를까라고 고민해봤다. 시인도 기자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충만한 자유를 노래하고 자유의 영역을 확대 시키는 데 종사하는 예술가라고 생각 한다. 
 
사랑은 치유 불가능한 불치병
 
그러나 시인은 분명 기자와 다른 게 있다. 시인은 원천적으로 자연과 사람과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누구의 가슴에나 들어 있는, 사람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영적-정신적 존재물이다. 경험으로 말한다면, 사랑은 어떤 면에서 “치유가 불가능한 불치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은 스스로 찾아오기도 하고, 스스로 떠나가기도 한다. 사랑은 기쁨으로 오기도하고, 사랑은 때로 증오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인간 내면을 언제나 떠나지 않고, 가슴 속에서 빙빙 맴돈다.
 
사랑이란 무언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은, 그래서 손으로는 만져볼 수 없는, 무형의 감성일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창조 보상적 사랑도 있다. 이런 사랑은 조건이 없다. 남녀가 교유할 때 발생하는 정신적 에너지가 곧 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인간 내면에 깃들인 애타적(愛他的)인 보시적 감정도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란 남자로서 연정이 통하는 여인을 향한 구애적 요소도 있겠고, 여자로서 남자에게 전하는 귀한 선물로서의 징표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고마움, 감사로 오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인연이다. 첫 눈 마주침으로 사랑이 시작될 수도 있다. 사랑의 인연이 가져다준 환희 때문에 때론 내 인생에게 내가 고맙다는 말을 보낼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랑은 감사한 마음으로 보상되어 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에 있어서의 사랑표현은 무엇일까? 필자의 경우, 인간 내면에 항상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그저 그런 사람이다. 과연 시로서 사랑을 어느 정도나 표현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사랑이 시를 보며 그저그저 웃기만 하겠지!“ 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 시를 통해서 지향하는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사랑은 기쁨-희열-환희와 고마움-감사-은혜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랑을 하다보면,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그리고 너무 희열이어서 절망일 때가 있다. 그 사랑을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다. 사랑이 너무 환희로워서 오히려 적막할 때가 있다. 하지만, 시인은 사랑을  둔탁한 감정으로 어눌한 시어로 읊으려고 노력노력을 했다.
 
아주아주 지독한 사랑
 
사랑은 문풍지에 부는 겨울바람처럼 시인에게는 차갑게 찾아왔다. 알지도 못한, 생소한 사람이 차갑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가슴의 안방으로 들어와서는 급기야 장작불로 뜨겁게한 구들장의 아랫목처럼 펄펄 끓었다. 시인은 그런 사랑을 “지독한 사랑”이란 시로 표현했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꼼짝달싹 못하고/며칠을 드러누운 적이 있는데//친구야, 난 지금/지독한 사랑에 빠져/영혼이 사로잡힌 채/안전부절 상태라네//감기와 사랑은 닮았나 봐/뜨거움이/온 몸을 사로잡고 있어//눈을 감고 있어도//사랑하는 사람의/얼굴이 아른거려//친구, 자네에게/이 사실을 털어놓는 것은/나 혼자 이 감동을/주체할 수 없어서야.//꽃길을 걷다/예쁜 꽃잎의 미소에 반하듯//난 그 사람의 인품에 반해/그 이의 그 넓은 마음속에/뽕당 빠졌어.//무게와 크기를 알 수 없는/미소, 그 미소…/미소가 날 꼼짝 못하게 하고 있어.//자기만큼/아니 자기 보다 더/날 사랑하고 있다는/예쁜 말에 포로가 됐다네.//인생의 남아 있는 시간이/얼마일지는 알지 못하나/이런 사랑, 이런 지독한 사랑을/친구에게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친구, 자네에게/지금의 솔직한 내 심정을/말한다면//그의 가슴에 하늘의 별을 몽땅 따다/안겨주고 싶어//그리하여 그 별들이/혹연 그이 마음이 어두울 때/반짝 거리며/새벽이 올 때까지/그이 곁에만 있도록/해주고 싶어//하지만 사랑에 취한 나는/하늘을 다 가진 양 우쭐대지만//한줌 밖에 안되는/나의 능력에//어두운 허공 속에서/가슴만을 까맣게/태우고 있다네.//그래도 그이를 사랑할 수 있는/지금 이 시간이/내 생애 최고의 순간일거야.//친구야, 그래서/삶에 있어/사랑이 이처럼 귀한 것 같아. (필자의 시 '지독한 사랑'의 전문)”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을 떠나 보거나 떠나볼 것이다. 그런데 한번 떠나서 되돌아오지 못할 여행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 참으로 기막힌 가정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죽음으로의 여행은 한번 뿐이라는 사실이다. 죽었다가 되돌아와 영원히 사는 이는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이다.
 
어느 날 지리산 칠선계곡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동서울터미널에 갔었다. 사람들은 모두 분주했다. 대다수, 떠나가고 도착하는 이들이었다. 사람들로 붐비는 터미널, 그 터미널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기다림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환희로운 일인지,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눈치 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그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취재 수첩을 꺼내들고 그 감정을, 잊고 살았던, 흥분되는 삶의 순간을, 시로 써내려갔다.
 
“나는 동서울 터미널에서/지리산행 버스를 타기위해/어쩜, 내 생애의 무게보다 더 무거울/작은 배낭 하나 걸쳐 메고/친구를 기다린다.//차창 밖으로 보여 지는/풍경이/무상하듯이/삶의 일상이 그러하겠지.//기다림과 만남과 떠남이 있는 곳//친구를 기다리는 것이/조금도 지루하지 않다.//터미널에 온 모든 사람에겐/도착하는 시간이 있으니/떠나는 시간이 필히 있겠지.//무시로 출발하는 버스들은/만나보고 싶은 친구/사랑해주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는/나의 설렘마저 싣고 달리겠지.//친구야, 나를 기다리게 해준/네가 있어줘서/정말 고맙다.//삶에서 함께해줄/친구가 있다는 게/얼마나 복 받은 일인 줄 아니.//행복에 겨워/가고 오는 사람들이 붐비는/대합실 안에서/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구나.(필자의 시 '동서울 터미널'의 전문)
 
감동감동으로 늘 떨려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에는 한강 가 쪽으로 약수터가 하나 있다. 운동 삼아 그 약수터를 자주 찾는다. 필자는 그 약수터에서 '약수터의 기도'란 시를 완성했다. 거시적 시각으로 사랑을 말하면, 사랑하는 세상은 무한대요, 장엄하다. 감동감동으로 늘 떨린다. 보아도보아도 아름다움의 극치이다. 같이 있어도있어도 그리움의 천국이다.
 
나의 시는 나의 내부에 도사린 불치병인 사랑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드러내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시는 거대한 사랑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미세한 먼지에도 못 미치는, 글 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다 알지 못하고, 사랑에 눈이 멀어 있는 상태이다. 나의 시어는 마른 장작을 두들겨 패는 듯한 소리처럼 둔탁하다. 내 기도의 뒤에 흐르는, 홀로 지껄임의 작은 의미라도 전달해주고 싶다.
 
▲ 문일석 시인.   ©브레이크뉴스
“졸졸 물줄기가 끊이지 않은/수석동 약수터에/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이유는/목마른 이들이/물을 마실 수 있어서입니다.//기도하는 이는/약수터와 같은 사람입니다.//누군가의 목마름/갈증을 풀어주기 위해/남들이 잠든 시간에/잘되기를 빌어주는 사람입니다.//물이 쉼 없이 흐른다는 것은/사람이 사람을 위해/기도하는 것과 같나니/그 기도에/영혼이 편히 쉴 수 있을 것이요,/시름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사랑하는 사람에게/고백할 일이 생겨 약수터에 갔네요./그리고 빌면서 기도했네요.//내 기도의 힘이/이 세상을 뒤흔들지는 못하더라도/그대 따뜻한 마음/한켠, 어느 구석에 자라는/제비꽃 되어/한 잎 한 잎 맑게맑게/웃을 수만 있게 해달라고//기도하나니/청초했던 내 인생의 꽃잎이 모두  떨어져/내 영혼이 마른 줄기 되어 앙상해질 때까지/그대 사랑의/목을 축여 행복하다고//그대와 더불어 있어/이 세상이 살만하다고//이런 느낌을 고백할 자유라도/한강물처럼/푸짐하게 허락이나 해주소.//기도하나니/그대 곁에 있으면서/고운 입으로 가시처럼 말했던/구업(口業)을 엎드려 사죄합니다.//삶이란, 갈증 날 때의/작은 약수터 같은 것인데/한강물을 다 떠나줄 듯했던/허세 부림을 용서하여 주십시오.//한강변, 초라한 약수터에서/물 한 잔 마시며/살아 있다는 것이/이렇게 환희롭다는 것을/내가 알아차렸듯이//내가 사랑했던/내가 좋아했던 그대에게/이 전율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습니다.//약수터 샘물은/어제도 흘렀고, 오늘도 흐르고/내일도 흐를 것입니다.//고개 숙여 약수를 뜨듯/내가 사랑하는 그대에게/허리를 굽히고//그대와 함께/이 세상을 살고 있어/정말정말 행복하다고/말해주고 싶네요.(필자의 시 '약수터의 기도' 전문)”
 
사랑은 과연 어떤 영양소를 먹고 생존할까? 아니면 어떤 음료수를 먹어야 시원해할까? 사랑할 때 칭찬은 보약일 수 있다. 스스로 만족해하는 것도 고급 비타민일 수 있다. 영혼이 갈급할 때 나에게 나타난 사랑은 위대했다. 필자는 “1박2일 여행을 함께 떠나고픈 여인”이란 시에 그런 내용을 담아봤다.
 
“주섬주섬 간편한 옷가지를 준비해/1박2일 여행을 떠난다면/함께 떠나고픈 여인이 있다.//별일이 아닌데도/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입에 침이 마르도록/칭찬해주는/여인과 동행하고 싶다.//소주를 마시면서도/비싼 와인이나 양주보다/당신과 술잔을 부딪치며 마실 수 있어/행복하다고 말해주는//나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귀한 여인과 더불어 떠나고 싶다.//석양노을이 붉게붉게/원색으로 물든/하늘을 보며//나를 사랑하기 때문에/키스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며/와락 껴안아/포옹해주는 따뜻한 여인과/손을 꼬옥 잡고서/여행을 떠나고 싶다.//이름 모를 풀 밑에 가냘프게 핀/제비꽃을 보면서도/세상을 사는 것이/이렇게 아름답다고/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아는 여인과//목숨이라도 걸고/후회하지 않는, 후회할 수 없는/멋드러진 여행을 떠나고 싶다.(필자의 시 '1박2일 여행을 함께 떠나고픈 여인'의 전문)”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 문일석  시인.   ©브레이크뉴스
사랑엔 기쁨-희열 -환희가 뒤따른다. 그 사랑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오는지 알 길이 없으나 사랑은 희열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랑은 기쁨으로 오기도 한다. 사랑은 환희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마음대로 안되는 게 사랑이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때를 경험했다. 그런 사랑은 자신만의 비밀공간에 꼭 감춰둘 필요가 있는, 큰 비밀일 때가 있다. 시인은 그런 감정도 시에 담아봤다.
 
“온갖 일이 많은/이 세상을 살면서/감춰두고 싶은/큰 비밀 하나 있으면 좋지//책상 서랍 후미진 곳에/나 혼자만 겨우 찾을 수 있도록/감춰둬도 좋고//책갈피 속에/꼼쳐둬도 좋고//나프탈린 냄새가 나는/옷장 속 상의 속주머니에/깊이깊이 넣어줘도 좋고//비밀번호가 있어야/열어볼 수 있는/이메일 함에 저장해둬도 좋지//사랑의 언어가 담긴/옛날식 편지지의/연애편지//시간이 갈수록/글씨는 낡아 가는데/그 속에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깃들어 있으면 좋지//죽기 전 언젠가/이 진주 같은 비밀을/가장 날 믿고/제일 좋아하는 친구에게/말할 수 있다면//그리움으로 늘 존재하는/날 사랑해준 사람의/훈훈한 정감이/은밀하게 남아 있다면/이 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아무에게도/보여주고 싶지 않은/내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둘/큰 비밀 하나 있으면/정말 좋지.//세상 살맛나지.(필자의 시 '큰 비밀'의 전문)”
 
어느 늦가을 날 밤에 택시를 탔다. 그는 경상도 문경에 살고 있는 부친 집에서 감을 따서 택시에 싣고 온다고 했다. 대봉 홍시였다. 몇 박스를 샀다. 익을대로 익은 홍시는 아주 달콤했다. 쪽쪽 빨아 먹었다. 씨가 나왔다. 그저 뱉어 버리고, 단맛에 취했다. 삶이 그렇게 달콤했으면 했다. 사모하는 여성과의 사랑이 그렇게 달콤했으면 했다. 필자의 시 “홍시처럼”은 이때 쓰여졌다.
 
“그대는 한번이라도/문경의 대봉 홍시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그 맛에 취해, 행복하다고 감격해 본적이 있는가.//그대에게 멋들어지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한번 뿐인 생을 사는데/다시는 못 올 오늘을 사는데/그대와 헤어지면 영영 만날 수 없는데//생을 살면서 아옹다옹 다투는 일이 있을지라도/제 맘대로, 제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을 지라도/우울하고 불안한 일이 친구처럼 벗하더라도//단맛이 오를 대로 오른, 서리 맞은 감/어린애 주먹만한 감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음 이 맛이야, 소릴 외치며/온 혀가 흠뻑 젖도록 먹어보고/쪼개서, 씹으며, 맛나게 먹어보는 거야/감 씨가 나오면 툭 뱉어버리는 거야.//내 친구야/홍시를 쪽쪽 빨아 먹듯/인생을 그렇게 살아보는 거야.//아주아주 달콤하게 살아보는 거야.(필자의 시 '홍시'의 전문)”
 
까치가 시인에게 준 선물
 
덕수궁 돌담은 아주 긴 돌담이다. 긴 돌담에는 돌들이 무수히 박혀 있다. 그 돌들은 아름답기도 하다. 필자는 걷기취미가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시내 곳곳을 거닐고 있다. 길을 걷다가,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잡는다면, 여인이 내 손을 잡아 준다면, 그 여인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계속해서 상상이 이어졌다. 필자의 시 “덕수궁 돌담길”은 까치가 나에게 물어다 준 선물이었다.
 
“덕수궁 돌담길 벽은 온통/돌들로 켜켜이 쌓여 있다.//수많은 사람 가운데 당신을 만났다는 것은/덕수궁 돌담에 끼인 많고 많은 돌들 가운데/한 돌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당신과 나의 만남은 곧 짜릿한 환희로움이 아닌가.//돌담길을 걷노라면 이 기쁨이/세포 하나하나에게까지 전달되어 가슴 설레임의 연속이다.//그대와 함께 돌담길을 걸으며/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침묵의 시간이 길더라도/이미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고귀한 인연을 어찌할 것인가.//돌담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변하지 않은 돌들로 쌓아서가 아니라/그 속에 그대 예쁨의 생각이 담겨져 있어서이다.//100년을 넘긴 오래된 나뭇가지에 앉아/까악까악 대는 까치소리에서도/그대 만남의 희열이 묻어나와/그대 곁에서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눈부심에/평소엔 보이지 않은 내 영혼마저 아리다.(필자의 시 '덕수궁 돌담길'의 전문)”
 
사랑을 하는데 있어 애인과 사랑하면 더 좋은 것일까? 사람이 사랑을 하면 다 애인 사이가 되는 게 아닐까? 필자의 짧은 시 “애인“은 그런 감정을 그려본 것이다.
 
“누구에게나/사랑하는 이가 있는 거지.//가슴에 그리움이 가득 차 있는 한/나눠줄 사랑이 영혼 깊이 고여 있는 한//보고 싶은 마음을 채워줄/애인은/누구에게나 있는 거지//벅찬 가슴 텅 비도록/모든 걸 쏟아주고, 위해주고 싶은//눈 감으면 그 사람 얼굴/아른아른/그리움 솔솔 피어오르는//봄 아지랑이 같은/한 사람쯤은/꼭 가지고 있는 거지.(필자의 시 '애인'의 전문)”
 
허유 교수가 흘리던 사랑의 눈물
 
▲ 문일석  시인.   ©브레이크뉴스
충무로에서 해바라기의 화가 허유교수와 소주를 들이켰다. 그는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는 군에 복무할 때 사고를 당해 한쪽 팔을 잘 못 쓴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서로는 소주를 계속 들이켰다. 이때, 허유 교수는 자신을 사랑하다 떠나간 여인이 몹시 그리워질 때 마다 자신도 모른 사이에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친다고 했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흘렸다. 사랑하다가 헤어진 사람이 어디 허유교수 뿐이겠는가? 필자인들 논외인가? 아니다. 이 술 자리가 손수건이란 시를 만드는 대화의 자리가 됐다. 그날 허 교수가 꺼내든 눈물에 젖은 손수건에는 한때 사랑했던 희열과 사랑하다 떠나간, 사랑하던 이와 헤어진, 사랑의 아픔이 올올이 박혀 있었다. 필자의 시 “손수건“에도 훌쩍 거리는 사랑의 눈물이 배어 있다.
 
“다시는 못 볼 사람을 사모하여 흘린 눈물을 닦던/구겨지고 또 구겨진 올올 사이로/그리움의 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보고 싶어 잠 못 이루다/커피 잔에 마지막 남은 한 방울마저 입술에 적시며/밑바닥에 말라붙은 그리움까지 훔쳐내는/애틋한 사연을 주섬주섬 안고 있다.//젖은 천 조각이 무슨 죄인가//떠나보낸 사람 생각에/가을 갈대 잎처럼 소리 없는 바람에도 흔들리며/마른 눈물을 흘리지나 말지.//잊지 못하게 하는 절절함을/시도 때도 없이 흘려보내는 그 무엇,/정들었음이 죄라면 죄지.//그래도 산자의 그리움 때문에/눈물에 젖은 손수건을/세월의 깊이만큼 힘줄 굵어진 손에 쥔채/훌쩍거리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필자의 시 '손수건'의 전문)
 
필자에겐 고약한 습관 하나가 있다. 신발에 관한 것이다. 한번 신발을 사 신으면 펑크가 날 때까지 신고 다닌다는 것이다. 내 신발은 적어도 나에게만은 무척 정이 들었다. 낡은 신발이라도 새 신발과 결코 바꾸고 싶지 않다. 편해서 그렇다.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내 감정을 필자의 시 “정들면 좋지”가 대변해 줄 것이다.
 
“정이 들었다는 것은/어려움을 오래오래 함께 했다는 것//나는 신발을 사면/다 떨어지도록 신고 다닌다.//펑크 난 신발/비가 오면 빗물이 추적추적 발바닥을 적셔도/정든 신발이라 버리지 못하고/비갠 날 마른 신발을 신을 생각에 그냥 참고 다닌다.//투덕투덕 여기저기를 쏘다녀/바닥이 거의 마모되었어도/정이 들었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했다는 것//발바닥 땀에 배어 꼬린 내가 풍기지만/정이 들었다는 것은/힘들 때 아주 가까운 이웃이 되어주었다는 것//처음 만난 사람에게 마음 빼앗겨/만나면서부터 짝사랑으로 감춰뒀는데/어느 새 정이 쌓여 새록새록 사랑만 자라간다.//그 사랑, 나와 신발 사이처럼/편한 사이로 발전하면 좋지/그렇게, 정이 들어간다면 정말 좋지.(필자의 시 '정들면 좋지'의 전문)”
 
죽음이 가다준 슬픈 이별
 
사랑에도 끝은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사랑이 중요하지 죽으면, 죽어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뜨거웠던 사랑도 차츰 식는다.  죽음은 몹시 아픈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무서운 것이다. 시 “아픔”엔 죽음이 가다준 슬픈 이별, 그런 두려움이 들어 있다. 그러면서 사모의 시를 쓸 수밖에 없는 시인의 나약함도 함께 하고 있다.
 
“한강물은 위 둑과 아래 둑 사이에/물이 고이고 고여, 흐르고 또 흐른다./지구의 그 어떤 강물도, 둑 안에 고이고 흐른다.//사람에게 있어 태어남과 죽음이란 여백에도/무수한 것들이 그려지고, 또 그려지고, 기억된다.//봄 아지랑이처럼/아련하게 피어오르는 그대와의 사랑.//잊으려 해도, 옷가지에 달라붙은 도둑놈가시 되어/보이지 않은 영혼마저도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는//내 삶의 아주 중요한 공간에/그대와 공유한 사랑이 채워져 있었네.//죽음은 누구에게도 극복될 수 없는 아픔./어느 날 죽음이 슬며시 나타나 그 사랑을 삼켜버렸네.//그런 아픔의 순간에라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였기에/그대 영혼 속에 잠시라도 있을 수 있었고,/그대와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때그때 기뻐할 수 있었으며/그대의 미소에 순간순간 감전되어 행복했었네.//그대를 사랑하였기에/그 사랑의 순간만은 그대를 영원히 앗아간/죽음도 두렵지 않았네.//나에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사랑이란 파편조각을 남기고 떠난 그대여//난 그대를 위해 지금도, 사랑의 끝을 슬퍼함이 아닌/들판 한 가운데서 소낙비를 만난 농부 되어/온몸 흠뻑, 사랑에 젖어, 사랑의 시를 쓰고 있네.(필자의 시 '아픔'의 전문)”
 
사랑이 떠난 후 남긴 상처
 
농부들은 고무나무에 상처를 주어 고무액을 뺀다. 그리하면 고무나무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는다. 진액을 뺀 나무의 자기 점검이다. 사랑을 하다가 사랑이 스스로 떠나든, 타의로 떠나든, 자의반 타의반 떠나든, 사랑이 사람에게서 떠나, 사랑이 떠난 그 이후엔 크든 작든 꼭 상처가 남는다. 시 '상처'를 읽으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아리다.
 
“만나도 만나도 그리움이란 항아리를 채울 수 없어/매일 만났던 정들었던 사람이/어느 날부터 만나지 못하는 아니, 만날 수 없는/죽음이란,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났다.//삶과 죽음은 늘 맞붙어 사는 이웃 같은 것//장례식 날/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장지엘 따라 가지 않았다.//길바닥에 앉아 헤어짐에서 오는 슬픔을 눈물로만 닦아냈다.//어딘가에 살아 있으나 만날 수 없는 사이라고/내가 날 속이기로 했다./그러나 내가 날 속인다고 속여지지 않았다.//생각이 날 때면 너무 그리워/강변에 선 서리 맞은 코스모스 대들이 바람에 부딪치며/까시락 까시락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내 가슴을 후볐다.//죽음이 가져다준 이별이 덧난 상처 되어/쓰리고, 꼭꼭 찔리는 아픔으로 변해/보고픔이 더해갔다.//죽음이 나와 친구하는 날/사랑이 남긴 길고 긴 고통이 끝날까.(필자의 시 '상처'의 전문)”
 
사랑이 떠나려 할 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떤 말을 꼭해줘야 할까? 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어찌해야 할까? 사랑하던 이가 적으로 변해 활시위를 당길 때 방패를 들어야 할까, 아니면 그 활에 맞아 죽어야 할까? 지금 순간, 사랑 이후는 그저 침묵이다. 걷기 취미가 있는 필자는 마을 뒷산의 공동묘지에도 자주 간다. 묘지에 난 잔디가 아름답다. 아무리 내가 그 묘지를 방문해도 묘지의 주인들은 그저 침묵으로 대한다. 필자의 시 “침묵”은 이때 탄생했다.
 
“공동묘지는 이 세상을 살다가/귀중한 모든 것을/죽음이라는 한 순간에 다 버리고 떠난/옛사람들로 가득하다.//묘지에 묻힌 고인들에게 물어봐//세상 살면서 한번쯤 사랑의 열병을 앓은 적이 있는지/숨이 턱턱 막힐 듯 보고 싶었던 사람을/한 사람쯤 가져 보았는지/함께 있다가 금방 헤어지고 나서도/그리움에 목말라한 적이 있는지//살아 있다는 것은/살아서 숨 쉰다는 것은/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살아 있는 사람만의 특권//냉엄한 침묵이 흐르는/공동묘지 사이사이를 걸으면서/그들의 존재 속에 영원히 고여 있을/사랑을 건져 올려본다.//키 만한 아카시아 나무가 봉분 가운데 자라고/잡초가 우거져 있는/아무도 돌보지 않은 묘지라 할지라도//그 사람 살아 있을 때/죽음도 두렵지 않은 사랑의 사연/한줌 흙 속에 토해냈을 거야.( 필자의 시 '침묵' 의 전문)”
 
내사랑은 봄의 대지 위에서 절정
 
필자는 시골출신이다.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 풍수리가 고향이다. 고향마을은 낮으막한 야산을 등에 대고 있다. 그리고 넓은 들판을 앞으로 하고 있다. 봄이 되면 들판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런 봄과 시골 풍경이 그리워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에서 주말을 보낸다. 2009년 3월 21일, 수석동 한강 수변 가는 봄기운이 완연 했다. 내 사랑은 봄의 대지 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대지의 봄은 사람이 가슴 속에 가진 그리움을 자극하면서로 사랑으로 사랑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보이지 않은 곳으로부터/봄바람이 몰아쳐와/나무와 풀들의 가슴에 봄기운이 당겨져/파릇파릇 대지를 색칠하는데//저 넓은 산야가/일시에 움직이고 있다면/그 어딘가에, 거대한 힘은/ 분명, 존재하는 거지.//한 해 한 번씩은 봄이 어김없이/온 산하를 녹색으로 물들이듯이//그대, 가슴 안에 회색빛인양/나른해진 삶의 색깔을/녹색으로 바꿔 보는 게 어때.//그리하여 갈대 서걱이는 죽음을 넘어/푸른 잎 넘실대는 초원이/가슴에 들어앉게 한다면//삭막해진 마음의 빈틈에 끼어 있을/미움도, 원망도 지워내고//소리없이 다가온 봄기운이/쑥들을 쑥쑥 자라게 하고/온 겨울 삭막하게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던/나뭇가지마다/고운 잎을 내밀게 하는, 이때//그대, 웅크리고 있던/폐쇄된 마음의 빗장을 밀쳐낸다면//깨물면 아플지 모를 어린애 손가락처럼/이쁘게 흙을 밀치고 올라온 새싹들을/바라보고 있노라면//들판에 펼쳐지는/어머마어마한 봄의 향연을/눈에 보이는 그대로//그대 가슴에 하나하나씩/주렁주렁 걸어주고 싶구려.//봄이 스스로 걸어나와/천하를 바꿔놓았듯이//그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가지고/사랑으로, 사랑으로 걸어나와/봄을 향해//삶을, 진한 녹색으로 화답하소서.(필자의 시 '봄을 향한 아우성'의 전문)
 
사랑을 노래하는 내 시어는 “봄이 스스로 걸어나와/천하를 바꿔놓았듯이//그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가지고/사랑으로, 사랑으로 걸어나와/봄을 향해//삶을, 진한 녹색으로 화답하소서”에서, 장엄함의 극을 이룬다. 사랑은 때로 열병 같은 것이다. 스스로 통제하려해도 누룩을 넣은 술 단지처럼 부글부글 끓어  몸 전체를 통째로 뒤흔들어놓는다.
 
봄이 걸어 나오듯이 장엄한…
 
이 실험적 시론(詩論)의 결론에 첨언하자면, 시인이 시를 통해 사랑을 얼마나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인의 가슴에 내재되어 있는 사랑은 어쩜 나를 비웃을 것이다. 내 스스로의 사랑마저도 나를 비웃음칠 일이다. 보이지 않으면서도 광대한, 대지에서 봄이 걸어 나오듯이 장엄한, 그런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시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이쯤해서 자족해야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내 시가 사랑표현에 근접하지 못한다 해도 참기름 한 방울처럼 고소했으면 하는 것이다. 깨를 갓 볶에서 갓 짜온 참기름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듯, 고소한 사랑에 취해봤으면 영영 좋겠다. 필자의 시 “참기름”을 이 글의 말미에 정렬한다.
 
“깨를 볶아/금방 짜온 참기름에선/고소한 냄새가 납니다.//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참기름처럼/고소한 인간냄새가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자유로운 내 영혼이/그대 생각에 쥐여 짜졌기 때문이겠지요.//갓 짜온 참기름 한 숟가락/비빔밥에 넣어/휘적휘적 비비면서//인간으로 태어나, 나도 몰래 마음 이끌린/그 사람 생각을 하면/아릿아릿 잊지 못할//그 향기 고소해서 미치겠네요.(필자의 시 '참기름'의 전문)”
 
*문일석 시인은 본지 발행인이며,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원이다. moonilsu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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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양산인 2009/11/25 [21:18] 수정 | 삭제
  • 좋은 글 읽으면서 아주 행복했습니다.
    시인은 창주주와 같습니다. 그 언어가 그 생각이 그래서 일ㄴ으며 행복한 것이지요.
  • 남양 2009/11/25 [21:16] 수정 | 삭제
  • 읽으면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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