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로 선택한 운명의 길
삼중스님의 어린 시절은 ‘복수’라는 상상할 수 없는 시꺼먼 돌덩어리가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다. 어린 소년에게 어떤 사연이 있기에 복수심으로 중이 되려 했던가! 그 복수심이란 곧 자신과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소년이 활활 지핀 복수심은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삼중스님은 복수, 증오, 애증으로 뭉개진 어린 시절의 아픔을 견뎠다. 죽음이 더 가까운 지금에서야 편안하게 복수라는 단어를 해석했다. ‘무슨 해괴망측한 복수라는 말을 그리 어린 마음에 담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결심한 복수심을 눈덩이처럼 굴렸다. 그 산더미만 해진 눈사태는 평안한 마음을 고이게 한 효심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복수’의 우물은 불행한 어린 시절에 있었다. 가까운 친척들의 냉대에서 어린 소년의 자존심은 무너뜨렸다. ‘고등고시에 꼭 합격해서 장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결심은 큰 성장의 비옥한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 가족사는 참으로 슬픕니다. 내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아버지는 22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가 어머니가 19살에 결혼했으니 딱 1년만인 20살로 접어 든 나이였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남아있는 긴 세상살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두 분 모두 그 시대의 최고 멋쟁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영화예술 계통에서 일하셨고, 어머니는 사격, 승마를 즐기는 미모의 신여성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는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독립자금을 관리하던 아버지는 일본 헌병대의 모진 고문에 지병을 얻어서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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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불행은 결국 내가 만든 셈이죠. 혹이었습니다. 차라리 어머니가 자식을 떼어놓는 비정함을 있었더라면 행복한 인생을 누렸을 것입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내 자신까지도 불행했습니다. 17살 사춘기 시절, 세상살이는 어머니의 잣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중이라는 길로 들어서려 했는지 일찍 감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달랐습니다. 너무 빨리 조숙한 셈이죠. 안일하고 평범한 잣대는 어딘지 부족하여 항상 어머니와는 다툼이 많았습니다. 하루속히 고등고시를 합격해서 인권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 근처에 있는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연스레 형무소에 있는 어린 죄수들을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런 인연도 내 인생에서는 특별했습니다.”
어린시절 형무소와의 인연
뭔가 달라도 달랐다. 삼중스님의 어린 시절 역시 형무소와의 끈을 달고 살았다. 그 실타래의 끈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참으로 유별나다. 어머니와 사소한 다툼이 잦았던 어느 날, 그날은 모자가 다른 날보다 크게 다퉜다. 그래서 소년은 어머니에게 ‘난 집을 나가겠다!’는 말을 불쑥 던졌다.
“어머니의 성격도 대단하신 분이셨어요. 당장에 ‘다 키워줬더니 나가겠다고! 지금 당장 나가라!’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그 길로 곧장 고모네로 갔습니다. 종로에 사는 막내고모는 떵떵거리고 잘 산다는 소리를 예전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그 당시 자가용까지 있는 가정이었으니 잘 사는 위세가 대단한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바로 위 고모 집에는 친할머니도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17년 만에 친 혈육이 나타났으니 아주 반겨주었습니다. 고모부는 초대 군정시절에 사법부장으로 지금의 법무부 장관직을 했던 분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가진 국제변호사라는 아주 대단한 실권자였습니다.”
고모부는 자신이 제일 똑똑함을 내세우는 독보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집에 업혀 사는 장모를 우습게 아는지라, 한 번도 안면도 없었던 조카인들 어떻게 대했겠는가? 초면에 조카의 기를 꺾으려는 태세였다.
“그래, 넌 뭐가 될 거냐?” 초면인 조카에게 고모부는 질문을 던졌다.
“고등고시를 20세 되기 전에 합격한 후, 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싶습니다. 돈이 없어서 불쌍하게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싶습니다.” 야무지게 소년은 꿈을 밝혔다.
“맹랑한 놈일세! 철없는 놈이 무슨 그런 허황된 말을 하느냐? 그런 말은 나이 먹었을 때나 하는 거야!” 이런 맹랑한 녀석은 처음 본다는 듯이 소년을 훑어보았다.
“..........” 벌게진 얼굴로 소년은 숨을 죽였다.
“이제부터는 내가 말한 대로 해라. 내일 아침에 당장 부산 사무실로 내려가!” 고모부는 어린 조카를 부하직원을 대하 듯 명령했다.
“아니! 여보! 내일이 조카 생일 이예요. 내일 아침 당장.......” 옆에 서서 희한한 대면식을 지켜보던 고모는 황급히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고모의 말을 댕강 잘렸다.
“어린놈의 생일을 뭐 하러 챙겨? 생일이고 고등고시이고,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가!” 처음으로 대면하는 조카를 주인 없는 개 몰 듯 내쫒았다.
쫒겨내려간 부산 술집
며칠 만 있으면 추석이었다. 기온은 뚝 떨어져서 거리에는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년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보니 더욱 추웠다. 고모부가 법이자 독재자인 집안에서의 기세등등한 고모부의 행태가 소년에게는 우습게 느껴졌다. 부산에 내려가 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아니 장관소리까지 들었던 사람의 사업거리는 웃기는 개판이었다. 그 당시 이대에서 10년간이나 교수직을 한 분의 속물은 구정물이었다. 미군을 상대로 하는 큰 바를 운영했다. 술집의 지배인은 소년을 보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산엔 다른 사무실도 있는데 하필이면 이런 술집에 조카를 보냈는지 이상하게 여겼다. 아무튼 지배인은 사장(고모부)의 지시대로 소년에게 일을 거들게 했다.
“미군들을 상대하는 술집이니 오죽했겠어요. 술장사와 밤장사도 하는 곳이었죠. 정말 그 술집을 보니 고모부에게 ‘놈’이라는 욕 짓거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나야 그 당시 공부를 못해서 몇 초도 아까워하는 시절이었어요. 하루 저녁을 또래들 틈에 껴서 자야 하는데 그들까지도 나를 경계했습니다. 사장의 조카가 자기들을 염탐하러 왔다는 생각에서 오히려 나를 골탕 먹었습니다. 여자를 밤에 불러 들였습니다. 나쁜 짓에 동참시키려 했습니다. 휘말리지 않으려는 나를 더욱 경계하더군요.”
하루 저녁을 지켜보던 지배인은 걱정스런 마음에 소년에게 충고를 했다. ‘너도 이곳에 있으면 금방 물이 든다. 고모부가 재벌인데 참 이상하다. 네가 아무리 타락하지 않으려 발버둥 쳐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김 박사님(사장)이 무슨 뜻으로 여기를 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너의 뜻대로 하는 것이 옳을 것 같구나.’ 소년은 술집에서 나왔다. 신문배달 일을 찾았다. 신문을 배달하는데도 쉽지가 않았다. 보증인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소년은 술집 지배인에게 보증인을 부탁드렸다. 지배인은 소년의 고모부가 허락을 하는 조건으로 보증을 서주겠다고 했다. 드디어 며칠 뒤 고모부가 부산 술집에 나타났다.
“난 여기서 일을 못하겠습니다.” 소년은 도전적으로 고모부 앞에서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해야지. 어디 건방지게 하느니 못하느니 입을 놀려!” 고모부는 소년에게 이유도 묻지 않은 채 묵살했다.
“내 인생은 내가 삽니다. 충고 같은 것 필요 없습니다.” 대센 소년의 기도 만만하지 않았다.
“지배인님, 여기 보증인 난에 도장 좀 찍어주십시오.” 소년은 지배인에게 신문배달 보증서를 내밀었다. 고모부는 소년의 손에서 보증서를 획 낚아챘다.
“찍어 주지 마! 천하를 쓰고 도리질 칠 놈이야! 너가 그렇게 자신만만한 놈이 말하고는 다르네! 웬 보증인이 필요해! 너 인생 너 마음대로 살어!” 고모부는 보증서를 소년의 얼굴로 던졌다.
소년은 주머니에 있는 몇 푼으로 신문배달소에서 신문을 샀다. 보증인이 없는 현실은 신문배달 일을 정규직으로 할 수 없었다. 있는 돈으로 신문 20부를 싸서 거리로 뛰어다녔다. 그것도 며칠을 견디지 못했다. 그만 소년은 거리에서 쓰러졌다. ‘이 한 몸뚱이 들어가서 잘 곳이 없네. 엄마 집을 나왔으니 다시 들어 갈 수도 없고, 이러다간 정말로 거리에서 내가 죽겠구나.’ 소년은 어쩔 수 없이 그 대단한 고모 집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었다. 역시나! 고모집의 냉대는 찬바람이 휭휭 거셌다. 소년을 짐승 취급하였다.
‘그래 죽자! 돈 한 푼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이 신세, 죽어버리자!’ 소년의 인생관이 180도 달라졌다. 여러 군데 약국을 돌면서 수면제를 40알을 사 모았다. 소년은 약을 사면서 독하게 ‘죽어야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부산에는 잘사는 고모네 별장이 언덕배기에 있었다. 그 별장은 40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별장에서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40알은 쇼가 아니었다. 소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치사량이었다.
소년은 약을 입에 딱 털어 넣자마자 머리에는 영사기가 돌아갔다. ‘억울하다. 공부를 좀 덜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들을 했더라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 나이까지 극장 한 번을 가지 못했는데, 영화라도 보고 죽자!’ 소년은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서 극장을 갔다. 극장에서는 최은희 영화배우가 주연인 ‘형제’를 상영하고 있었다. 극장에 잠시 앉아있는 잠깐 사이 긴장이 풀렸던지 약기운은 몰려왔다. 소년은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는 영사기는 계속해서 돌렸다. ‘이 꼴이 대체 뭐냐! 내 자존심에 영화관에서 죽어 행려병자로 취급받아서야 되겠냐! 죽더라도 깨끗이 고모네 별장에서 죽자!’ 약기운으로 얼큰해진 소년은 극장을 겨우 기어 나왔다. 극장 앞 큰 대로를 앞뒤 제지 않고 뛰었다. 차가 오는지 신경 쓸 정신은 이미 잃었다. 죽지 말라는 신호였던지 그 시간 차들은 다니지 않았다. 고모네 별장의 40 계단을 올라가는데 소년은 숨이 끊어질 듯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별장 문 앞에서 문이 열리면서 소년은 그대로 쓰러졌다. ‘이 꼬락서니로 문에서 죽으면 안 되지!’라는 오기는 소년을 방으로 기어가게 했다.
‘겁주려고 쇼하네. 이놈이!’
소년은 방에 누워서 마지막 남은 필름을 영사기에 넣었다. ‘억울하다. 유서라도 쓰자.’ 몇 번이나 나동그라지면서 벽에 있는 달력을 잡아당겼다. 유서를 달력의 뒷면에 적었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에 글씨 크기는 주먹만 해졌다. ‘죽음은 고통의 종점에 이르는 것이고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나는 이 세상이 더러워서 죽는다. 그러나 고모와 고모부를 원망하지 않는다.’ 죽는 순간에 이른 소년은 어느 누구에게 아픈 마음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소년은 잠들었다. 아득한 잠결에 목이 간지러웠다. 입속에는 큰 기계가 박혀있는 듯 했다. 그런데 고래고래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귓전에서 멍멍하게 크게 작게 들렸다.
“내 재산이 탐이 나서 쇼를 하느냐! 이놈이 나를 겁주려고 이런 쇼를 하네!” 소년의 고모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소년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 그 고함소리로 소년은 ‘아직 내가 죽지는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 놈을 집밖으로 끌어내 버려! 왜 여기서 이런 쇼를 하게 내버려 뒀어! 누가 알면 뭐라 하겠어. 괜한 놈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무슨 망신이야! 얼른 처리해!” 고모부는 고모와 주변 식구들에게 호통을 쳤다.
“쾍~~엑, 쾍~~ 윽~~” 소년은 입속의 기계의 압력 덕분에 위에 있는 음식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에잇 더러운 놈! 이 놈 고상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 더러운 짓을 다 벌리고 있네. 에잇!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 뉘 집이라고 약 먹고 쇼를 해!” 고모부는 부들부들 떨리는지 냉수를 가져오라 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사이 소년의 몸은 점점 깨어나고 있었다.
“....... 보~시~오. 나는 지~금 죽~을려고 그러는 거~요. 쇼~하는 게 아니요. 당신이 죽음을 놓~고 그리 말할 수 있~소.” 소년의 말은 어눌했지만 자존심만을 되돌아왔다. 이 지경에서도 고모부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을 썼다.
“아니~ 이놈이! 어디라고 감히 당신이라 그래! 이런 막말을 써! 이 자식아!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빨리 끌어내!” 불호령과 동시에 고모부는 몽둥이를 찾으러 집안을 뒤졌다.
“나를 이리 대하는데 어느 누가 당신을 고모부라고 하겠소! 당신을 당신이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됐소!” 소년의 당당한 말에 고모부의 옆을 지키던 고모의 얼굴 표정은 변했다. 고모 입장에서도 어린 조카의 행동이 부당하게 보였을 것이다.
“이런 막 된 놈이 어디에서 나타나서 이리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어서 내 집에서 나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어디라고!” 고모부의 고함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이 집의 소유권자는 당신이 아니고 이 옆에 있는 사람이요!” 소년은 고모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어린 나이에도 이대로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이런 피도 안 마른 녀~석~, 너~” 하면서 몽둥이를 쥔 손을 위로 올리면서 소년에게 내리치려 했다.
“몽둥이가 내 몸에 대기만 하면 당신을 형사고발 할거요! 당신은 징계권이 없소. 이 집의 등기권자가 말해야만 권한이 있소! 소유주가 당신이 아니지 않소!” 소년의 법해석으로 고모부는 몽둥이를 든 채 부들부들 떨었다. 사실상 별장의 소유권은 고모에게 있었다.
“이 놈의 새끼! 어디라고 입을 놀려! 너 죽고 싶지!”
“이야기 하시오. 내가 퇴거해야 됩니까?” 소년은 고모에게도 고모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쳐다볼 뿐 고모의 의사를 당당히 물었다.
“............” 고모는 입을 다물었다.
“말을 못하는 것을 보니 저 양반의 소리를 인정하는 것이오. 그럼 내가 퇴거하겠소!” 소년은 일어나려 다리에 힘을 주었다. 방바닥의 흔들림은 지진이 난 듯 소년에게 다가왔다. 소년은 그 옛날에 세상을 떠나서 얼굴도 기억이 없는 아버지가 이날따라 생각났다. 고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아버지에게 돌리고 있었다. 고모네 별장에서 내려오는 40 계단은 죽음의 길이었다. 드디어 소년은 뻗었다. sungae.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