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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거지대장! 그래도 중되고싶냐?”

<삼중 스님 대증언>해인사로 입산, 승려가 된 사연

김성애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09/12/07 [09:36]
수면제 40알은 소년에게 치명적이었다. 응급조치로 위속에 있는 음식물을 토해냈다. 쓰러진 소년의 정신은 말짱했다. “두고 보시오! 내 꼭 성공할 거요! 이대로 죽지 않을 거요. 꼭 고시합격 하리라!” 막내 고모집의 문지방을 넘으면서 소년은 독을 품었다. “당신에게 꼭 복수할거요. 고맙소! 나를 이리 채찍질해 줘서 고맙소!” 계단을 내려오는 소년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결국에는 쓰러졌다. 그래도 핏줄인지라 고모는 종업원에게 소년을 뒤쫓게 했다. 계단에서 쓰러져있는 소년을 종업원은 다른 숙소로 옮겨 누웠다.
 
며칠 뒤 안정을 찾은 소년의 손에 고모는 기차표를 쥐어주었다. ‘난 너를 감당할 수 없구나. 서울에 있는 큰 고모네 집에 가 있어라. 너의 마음이 추슬러지면 그 때 이야기를 나누자.’ 작은 몸 하나 누울 때가 없던 소년은 하는 수 없이 서울로 올라왔다. 큰고모네 집은 가난했다. 막내고모에게서 도움을 받는 집인지라 소년을 대하는 큰고모는 쌀쌀 맞았다. ‘17년 만에 웬 놈의 애가 하나 나타나서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다!’면서 큰고모의 냉대는 차디찼다.
 
17년만에 웬 놈이 쑥대밭
 
▲ 청담 스님.
그래도 그 집 며느리인 형수는 소년을 따스하게 안았다.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살갑게 대했다. 형수는 되도록이면 큰고모의 눈을 피해서 밥상을 잘 차려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소년은 죽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했다. 그런 생각이 스칠 때마다 인왕산에 혼자서 올라갔다.  산에서 내려오는 소년의 마음을 형수는 어떻게 알았는지 애달파했다. ‘도련님, 죽으면 복수를 못하시잖아요. 그러니 마음을 다잡아먹고 성공하는 길만이 복수하는 길이예요!’ 이런 형수의 배려는 소년에게 용기를 심어주었다. 삼중스님은 회상한다. ‘지금이야 늙어서 눈은 보이지 않고 귀는 멀었지만, 그 어려운 어린 시절을 회상해하면 이 나이든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면서 웃는다.

서울의 큰고모네 집에 친할머니가 들이닥쳤다. 고모부의 횡포로 막내고모 집에서 쫓겨난 것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할머니는 울었다.

“너 애비가 일찍 가서 그리 가슴 아팠는데, 네가 17년 만에 와서는 이리 집안을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냐!” 할머니의 울음 속에 큰고모는 눈을 부라렸다.

“나보고 그 똑똑한 손자 놈이랑 같이 살라면서 보따리 사라한다~ 아이구~”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울었다.
“어린놈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리 할머니의 눈에 눈물을 빼게 하냐?” 큰고모는 큰소리로 옆에서 거들었다. 할머니와 고모의 원망을 계속되었다.

“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떠나겠습니다. 찾아오지 않을 곳을 제가 왔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했다.

“아이 아야~ 네가 갈 때가 어디있길래 떠난다고 하느냐?” 할머니는 딸에게 얻혀사는 팔자가 서러웠던지, 그래도 손자가 안쓰러웠던지 그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나 고모는 소년이 떠난다는 말에 안도심에 목소리를 줄였다.

큰고모는 소년에 대한 배려심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차비 한 푼을 주지 않았다. 차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년은 인천에 사는 둘째고모 집을 들렀다. 소년이 부산에서 벌린 촌극이 이미 전달되었던지 둘째 고모도 소년을 녹록하게 보지 않았다. 성품이 착한 둘째 고모부는 소년에게 차비를 하라면서 2천환을 쥐어주었다. ‘형하고 같이 여기서 공부해라.’는 걱정스런 말에 둘째고모는 고모부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둘째고모의 냉정한 손사래를 받으면서 소년은 바로 큰고모에게 인사를 하러 들렸다. 친척집 어느 곳에서나 소년의 발걸음을 반가워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잘해주면 엉겨 붙는다는 생각에 소년을 냉정하게 대했다. 큰고모는 소년 앞에서 ‘내가 돈이 있으면 차비라도 좀 보탤 텐데 돈이 없어서 못준다.’는 말로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

소년은 마지막으로 친할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익선동 막내고모집을 다시 찾아갔다.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식모였다. 화들짝 놀래는 식모에게 소년은 자신의 방문 목적을 말했다. ‘여기 고모를 보러 온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할머니한테 인사드리려고 왔다.’는 말에도 식모는 막무가내였다. ‘그냥 가라! 할머니가 손자를 만나면 이 집에서 쫓겨난다.’면서 대문을 꽝 닫아버렸다. 이런 정황으로 소년은 막내고모집의 공기를 또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피 판돈으로 빵장사
 
소년은 대구에 가기로 결심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대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인심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구행 출발 기차는 새벽 6시에 있었다. 형수는 새벽밥을 챙겨주면서 점심 도시락까지 싸 주려했다. 그런 며느리를 보면서 큰고모는 호통 쳤다. ‘도시락은 무슨 도시락이냐? 대구에 가서 버릴 도시락이니 저기 옛날에 썼던 도시락에나 싸 주어라!’라는 말로 소년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아무리 초라한 조카라도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 주면 어디 덧나나! 더러운 도시락을 싸서 보내라는 말은 악다문 소년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소년을 형수는 효자동까지 바래다주었다. ‘도련님, 꼭 성공해서 돌아오셔야 됩니다. 이 아픔을 이기는 것은 성공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형수가 건네 준 따뜻한 도시락의 온기는 소년에게 삶을 강하게 만들었다.

대구역에 내려 보니 깜깜한 밤이었다. 대구에 처음으로 온 소년은 무척 불안했다. 대구에 도착하기만 하면 좋은 일이 기다릴 것 같다는 생각이 싹 가셨다. 대구역에서는 소년을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우선 가장 싼 하숙집을 구해야 했다. 한방을 같이 쓰는 조건으로 하루에 100환을 지불했다. 같은 방을 쓰는 형은 대구역전에서 군방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장사 밑천 3천환은 병원에서 피 300g를 팔아서 마련했다고 한다. 소년도 그 형이 소개한 병원을 찾았다. 자신도 피를 팔아서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로 결심했다. 의사에게 사정이야기를 했다.
“잘 먹지도 못한 몸에 300g이나 빼다간 까닭 잘못하면 죽는데!” 의사는 소년의 건강상태를 살펴 본 후 야속하게 피까지도 제약을 가했다.

“죽는다고요! 피를 빼서 죽으나, 빼지 않고 굶어 죽으나 매 마찬가지입니다. 피라도 빼서 차라리 먹다가 죽는 편이 낳지 않겠습니까?” 완강히 의지를 꺾지 않는 소년에게 의사는 손을 들었다.

“그럼 100g만 우선 뽑아보자. 그래도 많이 어지러울 텐데!” 돈에 조급한 소년의 몸짓에 의사는 소년의 손에 3천환을 건넸다. 애절한 소년을 위해 피값을 더 주었다. 소년은 ‘피도 섞이지 않는 남이 친척보다 나를 더 잘 대해 주는구나.’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영원한 복수의 길? 해답은?
 
소년은 공사장에서 나무를 줍고, 고물상에서 바퀴 2개를 사서 구루마를 제작했다. 대구역전에서 빵을 팔았다.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대구역의 터줏대감들은 소년에게 행패를 부렸다. 폭력배 서너 명이 구루마에 뺑 둘러서서는 빵을 주워 먹었다. ‘여기가 어딘데, 서울 다마내기(양파)가 와서 장사를 해!’ 말과 동시에 빵 손수레를 뒤집어엎었다. 매달리는 소년의 얼굴과 몸에는 폭력배들의 발길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뒤집어진 빵 손수레 옆에 쓰러진 소년은 아픔보다도 복수라는 상체기가 어른거렸다. ‘이 꼴을 보면 고모부가 얼마나 기뻐하겠느냐! 무슨 놈의 고시냐! 이런 상황에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어떤 형태이든 복수를 해야 한다. 영원히 복수하는 길은?’ 하는 소년의 머리에는 섬광 같은 빛이 번쩍였다.  

‘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영원히 복수하는 길은 바로 그 길뿐이다.’ 뜻밖에도 소년은 복수에 대한 멋진 답안을 찾아냈다. 바로 이 적절한 시기에 멋진 복수의 길로 들어 선 소년은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되자. 스님이라면 세상에 발도 안 디디지 않고 사는 사람이니, 복수하는 길은 스님이 되는 길 뿐이다. 나는 가장 착한 스님으로 살고, 저 나쁜 고모부는 가장 악한 사람으로 살면 그게 복수인 것이다.’ 그때부터 소년은 새 길을 가기 위해 일어섰다. 어떻게 해서든지 스님이 되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며칠 전 대구역전에서 우연하게 만난 처녀 중이 불현 듯 스쳤다. 처녀 중을 만나보니 스님이 되는 길은 아주 간단했다. 자기를 따라서 동화사에 가면 중이 될 수 있다면서 먼저 앞장섰다. 동화사로 올라가는 길에 처녀 중은 스님들마다 인사를 나누면서 무척 친해 보였다. 그 중 한 스님에게 소년의 꿈을 밝혔다. 그랬더니 ‘동화사에는 행자를 두지 않으니 해인사로 가라.’는 조언에 따라 처녀 중과는 그 길로 헤어졌다. 혼자서 대구에서 해인사까지 걸어 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그래서 소년은 꾀를 냈다. 대구역에서 같은 처지였던 가출소년을 찾아갔다. 중학교 2학년을 다녀서 그런지 가출 소년은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너 공부하고 싶지? 절에 가면 평생 동안 공부를 시켜준다. 나랑 해인사에 같이 가자.’는 사탕발림은 두 살 어린 소년에게 통했다.

그래서 두 소년은 대구역을 기점으로 낮 12시에 해인사로 출발했다. 무조건 기차선로를 따라 걸었다. 소년의 주머니에는 금 닷 돈이 깊숙이 감춰져 있었다. ‘이 금 닷 돈이면 길거리에서 죽더라도 내 시신을 치워주는 사람에게 보답해 줄 돈이다!’라는 마음으로 그것만은 꼭꼭 숨겨 두었다. 고령을 조금 못 미쳐 성서라는 고장에 도착했다. 12시부터 출발한 두 소년은 하루 종일 허기진 채 고령재 20리 길을 올라갔다. 깜깜한 그믐밤은 엄청 무서웠다. 추석이 지난 추위여서 그런지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저려왔다.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어가던 아저씨는 ‘학생들 이리 추운 날씨에 이 고개를 넘어가나? 이 고령재는 호랑이가 나오는 무서운 고개니 얼른 내려가라. 내일 날 밝을 때나 넘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추워서 쓰러진다!’라는 충고를 했다. 그래서 고령재를 천천히 내려오는데 성서경찰서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저 멀리까지 보였다. 용기가 없어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소년들의 은인이 나타났다. 숙직을 하던 경찰은 경찰서 담벼락만 오락가락하는 소년들을 안으로 잡아끌었다. 정말 후하게 잘 대해주었다.

한참을 먹을 소년들이 하루 온종일 걸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는가? 콩나물죽을 가져다주었다. 소년들의 먹는 품세를 보아가면서 한 그릇, 두 그릇을 옆집에서 얻어다 주었다. 따뜻한 숙소에서 잠도 재워주었다. 날이 밝자 소년들을 경찰차로 고령까지 태워다 주었다. 소년들은 고마운 경찰아저씨에게 여러 번 인사로 답례를 했다. 고령제를 넘자 해인사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밤 9시경쯤 해인사 입구에 도착했다. 해인사의 정경은 단풍의 절정을 이루었다. 늦가을 수학여행 철이었던지 관광버스들이 해인사 입구를 꽉 매우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해인사의 단풍철은 전국 각처의 사람들을 불러 들였다. 삼중스님이 해인사 생활을 할 때 실제로 일어났던 양치기 소동을 회상했다. 장난기가 발동한 한 스님이 비상종을 때렸다. 해인사의 비상종은 산불이 났을 때만치는 종이었다. 놀란 사람들은 우왕좌왕 비상종 근처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산불이 어디에서 났는지 몰라 허둥거렸다. 장난을 친 스님의 일성에 모두들 입을 벌렸다. ‘저 산 봐라! 빨갛게 활활 타고 있는 산을 보아라!’면서 풍비한 단풍철을 만끽한 소동을 일으켰다.
 
청담스님과의 행자 면담
 
그날따라 해인사를 밝히는 달은 아주 밝았다. 절 입구에는 민가가 없던 터라 잘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절 입구에 주차되어 있는 관광버스의 기사에게 소년은 부탁을 드렸다. 그래서 소년들은 하루 밤을 버스 안에서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해인사로 올라가는 길에 한 스님에게 자신의 꿈을 털어 놓았다.

▲ 청담 스님 추모 행사.
“제가 중이 되려는데 어떻게 하면 중이 될 수 있나요?” 해인사 스님에게 소년이 물었다.
“네가? 다행히 주지스님이 지금 절에 있으니, 주지스님의 승낙이 떨어져야만 행자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 청담스님과 면담을 잘해 봐라.” 그 시절 해인사의 주지는 유명한 청담 스님이었다. 주지 겸 총무원장을 지내신 청담스님은 그 시절 최고의 수행자로서 유명한 분이었다. 또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해인사의 자태는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어린 소년의 눈에는 웅장한 해인사의 사찰에 기가 죽었다. 소년은 긴장을 했다. 절에 딱 들어서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주지스님 앞에서 중이 되고자 한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을 것 같았다. 절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느 하늘아래 갈 곳이 없던 소년은 앞날이 깜깜했다. 만약 중이 되지 못한다면 그대로 죽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생명을 맞바꾸는 면담이니 만큼 더욱 긴장감이 돌았다. 소년은 길 안쪽에 있는 잔디에 벌렁 누웠다. 잠시 눈을 붙였다. 두 살 어린 소년에게 비장하게 말했다. ‘너 여기 있어라. 두 놈이 같이 가면 장난치러 왔다는 생각이 주지스님이 혹여 들지도 모르니, 나 혼자 담판하고 오마.’

그 시절에는 주지스님은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소탈했다. 옆에서 시중드는 스님들은 없는 시절이었다. 소년은 주지스님을 만나자마자 90도 각도로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학생은 뭐 하러 여기 왔나? 왜지?” 주지스님은 자신을 향한 소년의 눈을 쳐다보았다.
“저는 중이 되고자 주지스님을 찾아 왔습니다.” 소년은 비장한 마음으로 ‘중’이라는 의미심장한 어휘를 강조했다.

“어디서 왔느냐?”

“대구에서 200리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소년의 행색은 200리 먼 길을 걸어서 온 모양새가 그대로 내비치었다.

“...... 그럼 무슨 목적으로 중이 되려하는지 설명해 보아라.” 주지스님은 소년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영원한 인생을 찾는 스님
 
“..........” 소년은 답변을 아꼈다. 한마디로 자신의 생명이 엇갈린다는 생각에 긴장했다. “너는 학생복을 입고 학교에 다닐 때 중이 되려고 학교를 다닌 게 아니잖니? 꿈이 있어잖아. 그렇지? 왜 갑자기 꿈을 바꾸었는지 이유를 대봐라.” 스님은 소년에 맞는 빠듯한 질문으로 소년의 정곡을 찔렀다. “.........” 소년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주지스님과의 면접에서 떨어지면 갈 길이 막막했다.

“내가 입은 이 누더기 옷이 보이지. 중이 되면 거지처럼 이런 누더기 옷을 평생 입고 다녀야 해! 부처님은 거지 대장이야. 장가도 못가고 술도 못 마시고 먹는 것도 하루 두 끼 밖에 먹지를 못해! 그래도 중이 되고 싶으냐?”

청담스님의 누더기 장삼에 대한 실화는 유명했다. 한 50년 동안이나 누덕누덕 기운 천 조각에는 더 이상 기울 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장삼이었다.

“저는 영원한 인생을 찾아서 200리 길을 걸어서 해인사로 왔습니다.” 소년은 조용히 말했다. 운명이 걸린 한판에서 소년은 ‘영원한 인생’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뭐~ 영원한 인생을 찾으러 중이 된다고……. 아야~ 이놈 됐구나! 참 좋다! 영원한 인생이라…….” 주지스님은 소년의 일성에 감복했다. 연신 ‘영원한 인생’을 되뇌면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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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윤주 2013/10/01 [17:36] 수정 | 삭제
  • 청단스님이 돌아가선던날 편히 극락세게 가세여.저는 때가되면 갈게요.그때서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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