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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서 장학사업 펼쳐온 용산의 구세주?

삼중 스님이 밝힌 장경도 회장의 선행이야기

김성애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09/12/14 [07:31]
삼중스님에게서 아름다운 수필 소재를 선물로 받았다. 아름다운 선물로 원고 마감에 짓눌린 어깨가 가벼워졌다. ‘살맛나는 세상’을 담는 열정은 많으나 언제나 궁핍한 필체에 아쉬움으로 살맛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도 노력하려는 내 모양새가 바로 살맛나는 세상일게다.
 
따스한 연말의 훈훈한 온정
 
삼중스님이 준 선물보따리에는 산타할아버지처럼 연말을 따스하게 했다. imf 힘든 시절, 삼중스님은 부산에서 서울행 기차를 타기 위해 영업용 택시를 탔다. 스님을 알아보는 기사는 인사를 먼저 건넸다. 기사는 한 60세쯤 되어 보였다. 그러니 삼중스님도 편안한 인사말을 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견디시나요?”

“저야 뭐~ 죽이라도 먹고 견디고 있죠. 그런데 자식 놈 때문에 걱정이 큽니다. 스님!”
“아니~ 우리 나이에 자식 걱정까지 해야 합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좀 사치스럽죠!”

삼중스님은 그날따라 초라해 보이는 기사에게 힘이라도 줄 요량으로 잘 쓰지 않는 ‘사치’라는 단어를 썼다.

“그렇죠. 다들 밥 먹을 형편이 안 되는 실정이니. 이리 힘든 상황이라도 자식 놈의 대학 입학금을 못 맞혀주니 그게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시겠죠. 휴학계라도 내서 아드님이 돈 좀 보탠 뒤에라도 다시 다닐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 서울대라면 몰라도.........”
 
무슨 바람 꼬리에 참견까지
 
▲-장경도-강현숙 회장 부부의 도움으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취업, 결혼식을 한 장종호 부부.     ©브레이크뉴스
삼중스님은 그날따라 꼬리표를 달았다. 왜 뜻도 없이 ‘서울대’라는 명칭을 달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살아오면서 지방대와 서울대를 차별은 물론 구별하지도 않았는데, 그날따라 무슨 바람에 날렸는지 꼬리를 달면서 참견까지 했다.

“스님, 그게 바로 제 문제입니다. 내 새끼가 서울대에 합격했습니다.”

삼중스님은 어쩐지 쑥스러워졌다. 아마도 민망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기사를 무시하려 한 말은 아니더라도 달리 듣자면 오해할 여지가 많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사의 아들이 서울대라는 꼬리에 그만 당첨된 것이었다.

“(허참, 오늘따라 내가 왜 이러는지) 그러면, 걱정은 많이 되시겠네요. 그래도 서울대도 학과 나름이지 않겠습니까? (허참, 웬 학과까지 들 먹이냐!)”

삼중스님의 목소리는 줄어들면서 옆 가지치기를 쳤다.

“네~ 공대가 되다보니......... 스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그래야겠네요.”

삼중스님은 힘겨운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이 그대로 읽혀졌다. 자신이 두서없이 단 꼬리말들이 마음을 어수선하게 했다. 자식의 학비걱정에 애타는 부정에 어깨라도 다독여 주어야 할 판인데, 무심히 툭툭 던진 말이 뭔가 찝찝했다. 다른 집들은 서울대에 재수해서도 들어가지 못하는 판인데……. 저 아버지는 자신의 무능함에 애끓는 심정이야 오죽이나 클까?
 
한사코 거절하는 마음씀에 반해
 
“........  저~ 그렇다면 아드님의 전화번호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 애가 전화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형편에 하숙을 시키지도 못하고 자취방에서 여러 놈들과 함께 있습니다.”

“요새 애들은 삐삐라도 있지 않나요?”

“삐삐가 있었는데 고장이 났어요. 수해 봉사를 하다가 물에 빠져서 못쓰게 되었다나 봐요.”
삼중스님은 ‘수해 봉사’라는 말에 젊은이가 마음에 들었다. 아주 듣기 좋았다. 
“그럼 기사님의 집 전화번호라도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니 왜, 바쁘신 스님이 저희 집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십니까? 스님이 하시는 일도 태산같이 많으실 텐데. 이런 일로 신경 쓰지 마십시오.”

기사는 전화번호를 절대 가르쳐주지 않을 태세였다. 삼중스님은 기사의 마음 씀에 폭 빠졌다. 좋은 마음씨에 감동이 되었다.

“내가 뭣 좀 도우려는 게 아니니, 이런 인연으로 기사님의 전화번호라도 알고 싶어서 그럽니다. 알려주십시오.”

몇 차례를 물어서 겨우 기사의 전화번호를 얻었다. 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스님이 건네는 택시비를 한사코 받지 않겠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스님과 기사는 택시비를 서로 앞으로 뒤로 밀었다. 마지막에는 화를 내는 스님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기사는 택시비를 받았다.
 
계산 두들긴 속사정엔 ‘장경도’
 
삼중스님은 나름대로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기사의 전화번호를 물어 보았던 것이다. 서울행 기차를 타고 용산에 있는 지인을 만나려 가는 길목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용산에서 터를 잡아 사업을 하는 20년 지기 장경도 회장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했다. 이러저러해서 이런 일로 마음에 걸리니 후원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장 회장은 용산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구세주’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불우청소년들에 대한 장학금 지원이라면 앞장섰다. 장 회장은 삼중스님의 한마디에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는 대답을 쉽게 했다. 삼중스님은 흥분했다. 이리 한마디로 시원스레 한 젊은이의 앞날을 도울 수 있다는 마음에 펄쩍펄쩍 뛸 듯이 기뻤다.

삼중스님 자신이 매달리는 사형수의 일은 7~8년 걸려서 겨우 하나 해결하는 데는 오해도 산더미이고 말도 고개 너머까지 뻗어 있는데, 이렇게 한걸음에 해결되는 손쉬움이란 오직 장 회장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었다. 장 회장이 정말 좋았다. 군더더기 하나 붙이지 않고 “졸업 때까지 제가 돌보죠. 스님 고맙습니다. 제게 좋은 일을 하도록 알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게 웬 뒤바뀐 말이던가? 세상에 이런 멋진 일도 있었다.
 
디케이지 창립식 ‘행복해서 감사’
 
장경도 회장이 이끄는 ‘디케이지 (www.edkg.co.kr)’의 창립 19년 행사에 삼중스님은 초대받았다. 아름다운 인연을 만났다. 장 회장의 도움으로 서울대학 공대를 다니던 장종호 학생을 소개했다. 그를 소개하는 장 회장은 특별한 인연의 끈을 설명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희귀한 아산(牙山) 장씨의 연결 끈은 돈독했다. 중국 장개석 총통의 본인 牙山 장 씨는 국내에서는 희귀한 성씨였다. 장 회장은 기독교인인데도 삼중스님이 맺어 준 인연을 불교식으로 풀이하면서 그 학생을 좋아했다.

장 회장은 삼중스님께 창립 30주년 행사장에서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했다. “스님, 저는 참 행복합니다. 스님이 행복을 안겨다 주셨습니다. 공부 잘하고 착한 학생을 소개해줘 그 은혜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사람을 소개해 주어서 칭찬 듣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런데 삼중스님은 장 회장에게 진심어린 칭찬을 들었다. 학생은 대학을 졸업하여 외국무역회사에 다니고 있다. 친부모 못지않게 장 회장 내외를 따른다. 장 회장도 그를 살뜰히 챙긴다. 군 입대, 군 제대, 대학 졸업식, 취업, 첫 월급, 결혼하려는 배우자, 결혼식, 그리고 딸아이가 올 12월에 태어났다는 경사스런 모든 일들을 함께 했다.

“하하~ 며칠 전 손녀딸이 태어났다고 해서 옷하고 미역을 택배로 보내려고 포장하고 있습니다. 하하~~”  장 회장의 선행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은 지면으로 부족했다. 자수성가한 그는 한 푼이라도 아껴가서 20년 동안 불우청소년을 도왔다. 400명이 넘는 청소년들은 훌륭하게 성장하여 연말 모임에 모여든다. 그의 호탕한 웃음에 마음이 커진다.
sungae.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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