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유명한 표충사는 신참내기 삼중의 첫 수행지였다. 대쪽같은 주지가 있는 표충사는 무척이나 엄격한 사찰이었다. 주지인 자운스님은 유명한 대율사로서 돈과 여자를 멀리했다. 워낙 유명한 주지스님에게는 여러 상좌들이 있었다. 그 상좌들 가운데는 최근까지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냈던 스님이 표충사에서 수행하던 시절이었다. 신참내기 삼중은 기센 자존심은 엄청났다. 거의 통제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심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밀양의 자유당 국회위원이 잠시 표충사에서 수양하던 때였다. 그 의원이 머무른 방이 공교롭게도 삼중의 옆방이었다. 그러니 자연스런 눈인사로 대화가 진전되었다. 의원과 신참 스님은 주로 법에 관한 대화를 했다. 대화보다는 토론이 더 어울렸다. 기센 의견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신참내기 삼중의 단단한 논리에 자존심이 구겨진 의원은 신분을 이용하여 노골적으로 밀어붙였다. 그 기에 꺾일 신참은 아니었다. 결국 의원은 화를 벌꺽 내면서 스님을 크게 나무랐다. 그 시절 특히나 국회의원의 권세는 대단했었다. 무례한 의원의 언사에 삼중스님은 분한 마음을 해소할 방안을 꾀했다.
국회의원을 이길려는 놈!
저녁 공양이 지나서 신참 삼중의 염불은 새벽녘까지 진행되었다. 옆방에서 자는 사람은 당연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이 지났지만 신참 삼중의 방에서 두드리는 목탁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며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운 의원은 주지스님에게 고해 받쳤다. 아침 공양 후에는 언제나 스님들은 큰방에서 회의를 진행했다.
“저 조그만 놈이 국회의원을 잠을 못 자게 하니, 저 놈을 내보내야 한다. 저런 놈을 우리 절에 두었다간 큰일을 낼 놈이야!”
자리에 앉자마자 주지는 삼중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의견을 물었다. 쫒아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사찰의 의결권은 계를 받은 스님들이 행사할 수 있다. 아무리 주지스님이라 하더라도 혼자만의 뜻대로 스님을 쫒아낼 수는 없었다.
“...........” 삼중은 숨을 죽였다. 그런데 속에서는 불이 활활 타올랐다.
“아니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놈이 지가 뭐 좀 안다고 국회의원을 이기겠다고 기를 써! 저런 싹수가 없는 놈은 처음부터 절에 발을 내디디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예이!”
주지스님의 타박은 계속되었다. 주변 스님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저 주지가 개새끼네! 아니 같은 한솥밥을 먹는 식구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뭐~ 저런 놈이 있냐?”
새까맣게 어린 신참은 주지에게 맞짱을 떴다.
“뭐? 저놈 봐라! 뭐 저 어린놈이 손가락질까지! 에잇 저놈을 내 가만두나 봐라!”
“그래! 너 같이 더러운 놈한테 계율을 배울 게 없지! 여기서 배울게 뭐가 있냐?”
삼중은 앞뒤 가리지 않고 뛰쳐나왔다. 주지스님의 고함은 경내를 울려 퍼졌다. 이왕 벌어진 일이니 더 이상 표충사에서는 머무를 수 없었다. 주지인 대율사에게 대들었던 젊은 삼중은 걸망을 짊어 맸다. 그런데 걸망을 맨 어깨를 잡는 이가 있었다. 그는 주지스님의 맏 상좌였다. 그는 이후 동국대학교 총장을 지낸 사람이었다. 얼마나 성실했다면 총장까지 했을까?
조계사 총림에서의 쿠데타
“삼중, 자네 말이 맞네. 우리 스님이 잘못했네. 아무리 국회의원일지라도 표충사의 스님까지 쫒아낼 수는 없는 것이지. 나를 봐서라도 참고 떠나지 말게나.”
“난 스님한테 계율을 공부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계율을 지키기는 커녕 세속에 휘둘려 사는데 배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삼중은 상좌를 뿌리치고 표충사를 떠났다. 그 때부터 종단에서는 삼중스님을 곱지 않은 눈으로 봤다. 종단의 기본 질서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들어섰다. 그 길로 삼중은 총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총림은 서울 조계사내에 위치했다. 전국에서 뽑힌 내로라하는 학인(불교 공부하는 사람)들 50명이 공부하는 불교대학이었다. 조계사에 큰 재가 들어오면 조계사에서는 과일과 다과들이 넘쳐났다. 그러나 주지스님은 학인들에게는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았다. 그런 음식들이 참 귀한 시절이었다.
학인들은 먹고 싶은 마음에 소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법당에 차려진 음식을 훔치는 계획이었다. 주지스님의 처벌이 아무리 무섭더라도 감행했다. 큰 재를 치르기 위해 준비된 음식들을 장정 50명이 순식간에 해치웠다. 시간에 맞추어 재를 드리려 법당에 들어선 주지스님과 스님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야단법석이었다.
“우리 학인들이 음식들을 몽땅 먹어치웠다. 주모자는 나다”
학인들을 대표한 젊은 삼중은 앞장섰다.
“이 도둑놈! 아니 이게 어떤 음식인데 니들이 훔쳐 먹느냐? 네가 주모자냐?!”
얼굴이 사색이 된 주지스님은 노발대발했다.
“부처님 말씀에 중생공양이 제불공양이라 하셨는데 우리들이 실천을 좀 했습니다.”
주지스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삼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아니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네! 웬 개소리야?”
“음식들이 살아있는 부처들께 공양으로 바쳐졌는데 그게 무슨 큰 잘못입니까? 음식을 중이 먹었으니 부처님께 제대로 공양한 것과 같지 않습니까?”
“저 놈의 입! 닥쳐! 이 도둑놈아!”
“산부처가 좀 먹었는데 왜 그리 노하십니까?”
주지스님은 정신이 빗나간 어리 놈과 말씨름할 여유가 없었다. 다시 음식을 차려야 했다. 다음 재부터는 학인들에게 음식이 푸짐히 배달되었다. 두 번 다시 음식소동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내린 극단의 조치였다.
삼중에게 겨눈 총뿌리
젊은 삼중의 기행은 연이어졌다. 발동된 끼에 주지스님은 혀를 찼다. 자신의 끼를 감싸안아주는 주지스님을 찾아 낙산사에 정착했다. 낙산사에는 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즐비했다. 젊은 삼중의 천부적인 소질은 관광객들의 안내였다. 안내자로 적격이었다. 낙산사의 주지 노스님은 삼중의 부지런하고 활달한 습성을 높이 샀다. 노 스님은 젊은 삼중을 아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젊었더라면 삼중을 대학에 보내주고 싶다는 마음까지 비쳤다.
낙산사는 동해의 작전지역인 관계로 군단장이 관할했다. 또 유지로 행세했다. 낙산사 법당 안에서는 차들을 통제했다. 하루는 진입 통제판을 밀치고 법당 안까지 군단장의 지프차가 들어왔다.
“이리~와~”
젊은 삼중은 지프차에서 여유를 부리면서 내리는 군단장에게 반말부터 시작했다.
“저 자식이 미쳤냐? 누구보고 너 그러느냐? 나한테 그랬어?”
군단장은 누더기 장삼을 걸친 중을 보았다.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래~ 이 자식아! 여기가 어딘데 차를 몰고 와!”
군단장은 아직까지 미덥지 않다는듯 갑자기 눈을 치켜떴다. 젊은 중놈이 삿대질과 욕설까지 퍼붓고 있었다.
“야! 뭐 저런 중놈이 있어? 이 자식이~ 미쳤나? 너 내가 군단장인데 모르냐? 내가 이 절의 작전책임자란 말이야!”
뭐에 홀린 듯 한 군단장은 자신의 신분을 일깨워주었다.
“그럼 더욱이 안 되지! 진입통제로 지정된 곳에서 작전책임자란 놈이 그러면 되겠냐?”
군단장은 허리에 찬 권총집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권총을 삼중에게 겨눴다. 권총을 잡은 손은 마구 떨렸다. 하지만 쏘지는 못했다.
천방지축 젊은 삼중은 낙산사에 이승만 대통령과 외교사절단의 방문을 전해 들었다. 설악산의 여정에서 낙산사를 거쳐 가는 일정이었다. 물론 젊은 삼중이 안내자였다. 하루 전날, 청와대의 경호실장은 주지스님과 다른 스님들에게 부탁 겸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의 도착시간 1시간 전부터 낙산사의 문 앞에서 대기했다가 인사를 올려주십시오.”
“문 앞에서는 안되지요. 법단 경내에 대통령 사절이 들어서면 그때나 인사를 드려야지요.”
안내자인 삼중스님은 낙산사를 대표하여 끼를 발동시켰다.
“........ 대통령의 첫 방문이니 문까지 나오십시오.”
“일주문 경내에서는 안내를 해 드리겠지만, 일주문 밖에서는 곤란합니다.”
경호 실장은 젊은 삼중을 빤히 쳐다보았다. ‘웬 중놈이 이리 뻣뻣해!’하는 듯이 위 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래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땡중에게 한 발 물러섰다.
“정 그렇다면 인사는 일주문에서 하기로 하죠. 그런데 대통령 내외분이 법당 안에서 절을 해야 합니까? 미국에 사셨던 어른이라 절을 하지 못하시는데.”
사실이었다. 그는 세세한 상황까지 챙겼다.
“절은 자유입니다만 법당 안에서는 모자를 벗어야 합니다.”
“……. 모자를 벗지 않으시려고 하실 텐데..........”
“대통령이라도 모자는 꼭 벗도록 사전에 말씀 올려주십시오. 법당에서는 중들 소관이니 경호실에서는 관여치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청와대의 경호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저런 땡중이 세상에 여기 있네그려!’면서 더 이상 기싸움을 접었다. 그 시절 삼중은 오십년 내내 입었던 거지 적삼을 입고 있었다. 육환장을 집고 누더기 장삼을 걸친 거침없이 질주에는 누구하나 제동을 걸지 못했다.
각하! 모자를 벗으십시오!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외교사절단이 낙산사에 도착했다. 거지 중의 왕거지 장삼을 걸친 삼중은 세상사를 잘 모르니 겁대가리가 없었다. 대통령 내외를 포함한 외교사절에게 안내자로서 설명도 잘했다. 법당 안에 들어선 이승만 대통령은 중절모자를 쓰고 있었다.
“각하! 법당에서는 모자를 벗으셔야 됩니다. 벗어주십시오.”
젊은 삼중은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았다. 대통령에게도 명령(?)했다.
“난, 중같이 불교를 믿지 않는데, 모자를 벗어야 하나요?”
대통령은 자신의 종교에 따라 자연스레 지나치려 했다.
“물론 벗어야 합니다. 다른 종교인이라도 부처님에 대한 예의상 모자는 벗어주셔야 됩니다.”
젊은 삼중에게는 불교의 예를 지키는 데는 무슨 놈의 직분이 앞서나가지 않았다.
“.............”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삼중에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감정이 교차했다. 낙산사를 담당하던 경찰서장은 삼중에게 눈으로 호통을 치듯이 크게 치떴다. 그래도 통제가 되지 않는지라 이번에는 삼중의 누더기 장삼을 뒤에서 잡아 당겼다.
“내 하나 물어 볼 게 있는데....... 그 옷이 뭐예요?”
대통령은 중절모자를 쓴 채 젊은 삼중이 걸친 누더기 장삼을 화두로 올렸다.
“50년째 입은 장삼을 물려받아 입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형편에 국민들은 이런 옷들을 입고도 못 먹고 못살지 않습니까? 좋은 옷은 푼수에 맞지 않습니다. 각하께서 입은 옷은 우리 경제에 맞지 않습니다.”
시한폭탄인양 굴러다니는 젊은 삼중의 장삼자락을 경찰서장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휙 잡아 당겼다. 이승만 대통령은 가만히 젊은 스님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 사절단은 떠났다. 삼중스님도 어서 빨리 걸망을 짊어져야 했다. 경찰서장이 삼중을 빨갱이로 몰기 전에 서둘러서 떠나야했다.
젊은 삼중의 기행은 불국사에서도 여전했다. 안내자로서의 능숙한 삼중의 솜씨는 불국사에서 큰 자랑거리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장관들이나 외국인 사절단의 안내만 맡을 때마다 희귀한 기행들이 이어졌다. 애국심이 발동된 기행들은 어느 누구도 근접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국사 앞마당에서 막내고모를 보았다. 소설 같은 만남이 이루어졌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다보탑과 석가탑을 설명하는데, 한 꼬마가 청운교를 건너서 뛰어왔다. 아이의 얼굴을 보니 바로 ‘막내고모의 아들’이었다. 꼬마도 스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질겁하면서 달려 내려갔다. 꼬마의 뒷모습을 쫒아보니 청운교 근처에서 고모 일행들이 보였다. 막내고모는 스님이 있는 장소로 올라왔다. 피하지 않았다.
불국사에서 마주친 막내고모
“o o 아~ 결국 네가 중이 되었구나!"
삼중스님은 고모의 마음을 눈빛으로 읽었다. 조카의 당당한 모습에 흡족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가사장삼을 멋지게 어울리는 삼중 자신도 떳떳했다.
“그 이름 부르지 마십시오. 그 이름은 이미 죽었습니다. 지금은 삼중이라는 스님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 어떻게 잘 지내고 있니?”
“중의 신분으로 고시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법을 절에서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글쎄~ 원하는 공부를 해서 좋으나, 꼭 그렇게 나한데 이야기 안 해도 되는데……. 저 아래 관광호텔에 있으니 시간이 있으면 나중에 이야기하자.”
고모는 조카가 아직도 법 공부를 하고 있다는 서리어린 말에 피하는 듯 등을 돌렸다. 전투적인 모습에서 아직도 복수라는 마음이 남아있음을 서로가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삼중은 떠나는 막내고모와 불국사 길을 걸어 나왔다. 고개를 숙인 채 걷는 고모에게 삼중은 심정을 털어놓았다. ‘승복을 입고 고시에 합격하겠다. 꿈을 이루고 싶다. 그리고 당신들이 고맙다. 당신들이 없었더라면 추하게 살았을 텐데, 이리 사는 게 행복하다.’ 복수라는 마음을 내보이듯 고모에게 당신이라고 칭했다.
삼중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22살에 대학 3학년, 법학과에 편입했다. 머리를 약간 기른 후 양복을 입었다. 고모 집을 찾아가서 법 학생으로 유세를 떨고 싶었다. 대문에 들어서니 할머니가 맞아 주었다.
막내고모, 만나서 사과하고 싶소!
“이 놈아가 대학생이 되었구나! 아니~ 중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대학생이~ 되었네!”
할머니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야~ oo 왔다. 어서 나와 봐라.”
할머니의 흥분된 목소리에 막내고모가 나왔다.
“그래~ 훌륭하게 되었구나. 참 축하한다.”
“뭘요! 나는 할머니 만나러 이집을 찾았지, 당신 보러 오지 않았소!”
대학생은 막내고모의 손길을 박차고 나왔다. 고모의 눈길은 누그러져 있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날카로운 칼을 품은 반항기였다. 그 때가 할머니와 막내고모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인연들로 뭉쳐진 사연에 마음들이 서로 아파했다. 분명히 삼중스님에 관련된 기사를 그들은 보았을 게 분명하다. 고모부와 어린 조카와의 싸움, 그 와중에 있는 고모를 이해할 수 있다. 삼중 스님은 말한다.
“지금은 고모를 만나고 싶습니다. 살아 계시다면 내가 그 때 참 심했노라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어린 내가 너무 강했습니다. 차갑게 대한 당신 덕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은 참 행복합니다. 행복을 만들어 준 당신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고 싶습니다. 복수라는 어린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나이가 점점 더 먹으니 절실히 느낍니다. 마음이 조금이나마 언짢았다면 친오라버니를 생각해서라도 조카의 잘못을 묻어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생이라도 인연으로 만나 해원하고 싶습니다.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막내고모입니다.”
sungae.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