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은이 달라졌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며 자타공인 ‘로맨스의 여왕’으로 군림해 온 김정은이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영화 ‘식객:김치전쟁’으로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김정은은 극 중 한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자존심 빼면 시체인 천재 셰프 ‘배장은’ 역을 맡았다. 라면 밖에 못 끓인다던 그녀가 연기한 천재 셰프는 어떨까. 잠시 움츠렸던 동장군이 살짝 고개를 들었던 지난 1월21일, 김정은 아니 ‘배장은’을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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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불친절하게
지난 1월21일 오후, 서울 명동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식객:김치전쟁(이하 식객. 개봉 1월28일)’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시스루룩으로 한껏 멋을 내고 시사회에 참석한 ‘식객’의 헤로인 김정은은 무척 사랑스러웠지만, 스크린 속 그녀는 달랐다. 새하얀 셰프 복과 가지런히 벗어넘긴 머리에얼음같이 차가운 말투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배우 김정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정은은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불친절하게 보이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셰프라는 새로운 직업은 물론이고, 극 중 어머니 수향(이보희 분)에게는 10년 간 남처럼 살아온 못된 딸, 성찬(진구 분)에게는 따귀를 때리는 못되고 냉정한 누나가 되어야 했다.
실제로 엄마와는 잠시도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는 그녀인 만큼 ‘장은’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 김정은은 “나는 장은과 달리 효녀다. 그래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장은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일부러 엄마에게 상처주려고 했던 기억을 잔인하게 되돌아 봐야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상대 배우를 때리는 연기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정은은 “그동안 맞는 역할만 해오다 이번 작품에서 처음으로 때리는 연기를 했다”며 “때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엔 힘들었는데 한번이 어렵지 그 이후엔 쉽더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연기 인생 첫 번째 따귀의 주인공이 된 진구는 그녀에게 합격점(?)을 줬다. 진구는 “(김)정은 누나의 따귀는 생각보다 묵직해 남자의 주먹에 맞는 느낌이었다”며 “보통 여배우들은 어깨 힘으로 팔만 휘두르는데, 정은 누나는 점프를 해 체중을 싣는다”고 폭로해 김정은을 비롯한 현장 모두를 폭소케 했다.
나, 요리하는 여자야~
김정은은 극 중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세계적 셰프다. 음식의 맛까지는 흉내내지 못하더라도, 천재 셰프가 미숙한 칼솜씨를 보일수는 없는 법. 김정은은 촬영에 앞서 3개월간 피나는 요리 연습을 했다. 자기 종아리의 2배는 족히 되는 무를 하루 10통 이상 썰며 연습한 덕분에 스크린 속 ‘장은’은 천재 셰프다운 손놀림을 갖출 수 있었다.
고운 손은 촬영 중 칼에 베인 상처와 굳은 살로 못난 손이 됐지만 얻은 것도 있다. 조금은 나아진 요리 솜씨와 가슴으로 알게 된 어머니의 사랑이다. 김정은은 원래 요리를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지만, 주요리는 라면과 커피 정도 수준이었다. 김정은은 “이제는 ‘김치’정도는 만들 줄 알게 돼 어머니도 놀라셨다. 된장찌개 등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생활음식’에 익숙해져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이젠 요리 좀 하는 여자, 김정은이 꼽은 가장 어려운 요리는 ‘엄마 밥’이다. 그녀는 “원래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이 그럴싸한 특별식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며 “이제와 생각해보니 가장 고난이도 요리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 밥’은 단순히 조리과정을 통해 나온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돌이켜보니 어머니께 못되게 군 적이 있더라”며 “나도 모르게 그런 적이 있어 죄송하고, 앞으로 더 잘해드리고 싶다”는 다짐을 전했다.
배우의 ‘고통’은 관객의 ‘즐거움’
배우들이 배역을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다반사지만, 김정은은 유독 자기 몸을 혹사시키기로 유명하다. 그녀를 대중 앞에 세운 드라마 ‘해바라기’의 삭발투혼이 그랬고, 전작인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핸드볼 선수 역을 맡았을 때는 하루 11시간의 고된 훈련으로 부상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골반 부상으로 진통제를 맞으며 촬영에 임했던 그녀의 투혼은 2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이번 ‘식객’도 만만치 않다. 요리하는 과정에서 손을 베이는 것은 기본이고 뜨거운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는 등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졌다.
김정은은 ‘배우가 고생할수록 관객은 즐겁다’는 말을 곱씹으며 매 장면을 버텨내는 무서운 열정을 지닌 배우다. 그녀는 “우연찮게 연달아 몸으로 먼저 습득해 캐릭터를 표현해야 하는 작품을 하게 됐다”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넘어서고 믿음을 드리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체적인 고통이 앞섰던 전작에 비해, ‘식객’의 장은 역으로 분해서는 심적 고통이 컸다. 조리과정의 부상은 참을 수 있었지만, 외롭고 차가운 장은을 담아내는 일은 김정은을 괴롭게 했다. 그녀는 “이번 역할은 심리적으로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며 “전작에서는 사랑스러움을 버리려고 노력했는데, 이번에는 속으로는 끓어 넘치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감정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국 영화 좀 ‘봐주세요’
‘식객’의 개봉일은 1월28일이다. 추운 겨울, 꽁꽁 언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흥행은 장담할 수 없다. 출발 전부터 ‘식객’ 앞을 가로막고 나선 건 화려한 cg를 앞세운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다. 지난해 12월17일 개봉이후, 박스오피스 1위 독주 중인 ‘아바타’는 개봉 한 지 한 달이 넘은 시점임에도 3d 상영관의 경우, 주말에는 표가 없어 최소 1주일 전에는 예매를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아바타’의 독주에 대항해 국내영화 ‘전우치’(2009년 12월23일 개봉)가 사력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주유소습격사건2’(1월21일 개봉)가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전우치’와 집안싸움을 하는 데 그쳤다. 이대로라면 ‘식객’과 ‘하모니’가 개봉하는 1월28일부터는 ‘아바타’의 독주를 막기는 커녕 집안싸움만 격화될 태세다.
김정은은 “지금은 한국 영화를 향한 관객분들의 사랑이 절실한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바타’의 독주로 국내 영화를 위한 상영관 수가 줄어드는 것을 염두에 둔 듯, “고생하고, 고민해 내논 훌륭한 결과물들을 만나보게 해드릴 기회가 너무 없어서 아쉽다”며 국내영화를 향한 관심을 간곡히 부탁했다.
<주간현대> 박상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