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뉴스 광주.전남판에서는 오는 6월 2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광역단체장.교육감 후보를 필두로 각급 선거 출마 예정자들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공식 출마를 선언한 예비 후보들을 중심으로 ‘2010 지방선거 특집 시리즈’를 연재합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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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여건 딛고 성실과 혁신적 마인드로 공직사회 성공 신화 일궈
- 이 의원의 닉네임이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 따온 ‘담쟁이’로 알려져 있고, 최근 출간한 저서의 제목에는 ‘연어’가 등장하는데요, 상당히 감성적인 것 같습니다. 문학이나 문화예술 분야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지 궁금합니다.
▲문화예술 분야에 조예가 있다기 보다는 시골 태생이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 접한 감성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습니다. 오랜 공직 이력이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논리적인 사람으로만 보여질 지 모르지만, 저는 감수성이 풍부한 편입니다. 그동안 제가 냈던 책에도 각 챕터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시들이 엮여 있습니다.
‘담쟁이’라는 별명은 국세청장 재직 시절에 얻은 별명입니다. 국세청 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혁신의 과정에서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때 제가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바로 내부 게시판에 ‘담쟁이’ 시를 적어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담쟁이처럼 내가 먼저 저 높은 벽을 넘을테니, 미리 포기하지 말고 같이 가 보자, 그런 의미였죠.
또 책 제목은 고향을 떠나 바다로 나갔다가 알을 낳을 시기에 수천킬로미터를 다시 거슬러 와서 모천에 알을 낳고 죽는 연어의 삶이 제 삶과 참 닮았다는 생각에서 붙인 것입니다. 보은의 상징인 연어처럼, 저도 고향 사람들에게서 진 빚을 갚고 싶다는 의미에서 ‘연어가 민물로 돌아온 까닭은’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 전남대 개교 이래 최초로 상대 무역학과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하였고, 정시채․허상만 농림부 장관 이래, 2개 부처 장관을 잇따라 역임한 것은 이 의원이 처음인데요, 모교인 전남대의 명예와 동문들의 사기를 드높였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를 두 차례 장관으로 중용해 주신 노무현 대통령께서 저를 두고 한 토론회에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성실하고 항상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도전적인 자세를 갖고 있으면 설사 좀 이름 없는 대학 가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라고 단언한다”라고요.
노 대통령의 말씀처럼, 특히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누가 얼마나 빨리, 제대로 습득하느냐가 경쟁력이 됩니다. 연고주의나 온정주의가 통하지 않고, 혁신이나 변화를 생활화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회가 지식정보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고 보니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 경쟁하는 치열한 중앙 공무원 사회에서 ‘지방대 출신’이라는 제 핸디캡은 오히려 도전정신을 키워 준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모교, 전남대학교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또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걱정하는 후배들에게 나의 행로가 희망이 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이 의원은 면 단위 고등학교와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중앙 무대에서 행정관료로 성공하였습니다. 공직자 시절, 어떤 신념을 갖고 일했는지요?
▲제가 가진 조건들은 중앙 공무원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최악의 조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연.학연.혈연과 같은 연고주의에 끝없이 맞서야 했습니다. 승진 철이 되면 소위 명문학교를 나온 동료들의 술자리에 끼는 것도 어려웠던 것이 당시 상황이었습니다. 서러운 적도 많았죠.
그러나 남들이 꺼리는 어렵고 힘든 일을 찾아서 하는 ‘솔선수범’과 ‘문제의식’으로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남들이 꺼리는 업무는 기회가 많고 부가가치가 큽니다. 여건이 좋은 사람들은 힘든 업무를 꺼리게 되고, 그런 일들을 맡다보니 차츰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게 된거죠. 또 저는 모든 일을 할 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른가? 제대로 하고 있는가? 더 나은 방법은 없는가?”를 항상 고민했습니다.
저는 매사에 문제의식을 갖고 더 좋은 방법을 찾아 솔선수범하는 것이 바로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론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늘 문제의식을 갖고 좋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혁신가’죠. 결국, 저의 성공비결은 바로 ‘성실함’과 ‘혁신적 마인드’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한, ‘궁불실의 달불이도(窮不失義 達不離道)’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맹자에 나오는 말인데 ‘궁하다고 해서 의를 저버리지 말고, 뜻을 이루어도 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뜻입니다.
- 2001년 재정경제부 세제실장이라는 요직을 시작으로 관세청장, 국세청장, 청와대 혁신관리수석비서관, 행자부장관, 건설교통부장관에 이르기까지 5년여 동안 숨가쁘게 승진을 거듭했는데요, 관운도 좋으신 것 같고 또 거기에 분명 +α가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α를 몇가지만 말씀해 주시죠.
▲이명박 정부에서 이미 그 원칙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저는 참여정부 시절 도입된 합리적 인사 시스템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사람입니다. 참여정부에서는 과거 혈연․지연․학연 등에 의해 주어졌던 기회들이 대부분 차단되고, 시스템에 의한 평가를 통해서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을 발탁하는 ‘시스템 인사’ 원칙이 지켜졌던 겁니다.
저는 ‘운’이라는 게 뜻 밖에 얻는 행운이나 우연한 기회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한 사람이 가진 자질이나 능력 등이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경쟁력과 부합될 때 소위 ‘잘 나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죠. 참여정부는 연고보다는 창의적 노력과 성실성을 높이 평가하는 정부였고, 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인 ‘혁신’이 제가 가진 강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리 능력과 경쟁력이 있더라도 자신을 선택해 적절한 자리에 중용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은 제대로 쓰이지 못합니다. 저는 저를 중용해 준 ‘혁신가’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계셨기에 비로소 ‘운이 좋은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관운의 실체가 바로 ‘혁신으로 맺어진’ 대통령과의 인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지난 1월 1일, 봉하마을에 다녀오셨습니다만, 항간에서는 이 의원에게 ‘친노’ 색깔이 너무 강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용섭을 연이어 요직에 발탁했다’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에게 나는 자연인 ‘이용섭’이었다기 보다는 ‘혁신’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체현해 낼 활동 인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연․지연․학연이라는 세속적인 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여러 번 저를 기용한 것이죠.
대통령께서 행자부장관으로 임명하신 후 오찬에서 “혁신으로 맺은 우리의 인연이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좋은 성과를 내십시오” 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과는 그렇게 인연이 이어졌던 겁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친노’ 성향이 강하다라고 말하는데, 그 말에 저는 항상 ‘그렇다’는 답을 합니다. 사실 국세청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저는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인으로서의 노무현과 이용섭은 인간관계 면에서는 엄밀히 말해 가까운 사이였다라고 할 수 없지요. 그렇지만 그분이 가진 ‘혁신’의 자세와는 어느 누구보다 가까웠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속적인 끈이나 연고보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혁신과 시대정신‘으로 묶인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명백히 ‘친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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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원이 광주시장 출사표를 던지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입니까?
▲제가 광주시장에 출마하려는 것은 광주가 지금 많이 어렵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그러나 숲속에 있으면 숲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광주에만 있으면 광주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중앙에서 공직생활을 했고, 또 두 번의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대한민국 전체를 조망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고향에 돌아와서 국회의원을 하다 보니 제 지역구뿐만 아니라 광주의 현실이 더 잘 보였고, 또 보이는 만큼 광주에 대해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와서 본 고향 광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뛰어 다녔지만, 국회의원 299명 중의 한 명으로, 또 광주지역 8명 국회의원 중의 한 명의 자격으로는 광주를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광주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들을 잘 보살피고 구석구석 챙기는 집행기능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누군가가 광주의 역사를 새롭게 써서, 광주의 미래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중앙에서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민주화나 정권교체에 앞장 서 주신 광주시민들의 덕택이라고 여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광주 시민들에게 많은 부채를 안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광주를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피하지 않고 가는 것이 공인의 자세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30여년 이상 행정 관료로 일하다가 지난 18대 총선을 통해 정치계에 입문했기 때문에 광역단체장 후보로서 정치적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습니다. 이 의원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광역단체장像은 무엇입니까?
▲광역단체장은 정치를 오래했다는 중량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광역단체장은 정치적 리드도 중요하지만 행정적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자리입니다. 즉 전문성과 미래비전, 중앙정치와의 관계 등이 모두 고려돼야 합니다.
국회의원은 자기 분야에 전문성이 있으면 큰 무리 없이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이나 도지사 같은 광역단체장은 종합행정기관입니다. 중앙정부 각 부처와 기관에서 수행하는 일을 지방에서는 단체장이 혼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연륜이나, 열정과 의욕만 갖고는 잘 할 수 없고 전문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시행착오와 혼란이 있을 수 있죠.
그리고 단체장이란 게, 결국은 중앙정부와 관련해서 생각하면 예산을 따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결국 정치권과 정부를 망라한 중앙의 다양한 인맥들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얼마전까지 같이 일했던 중앙 요직의 인맥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들이 퇴직하기 전이어야 광주를 위해 예산도 따올 수 있고, 인사면에서도 호남에 있는 많은 인재들을 서울로 올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건강면에서나 창의성이나 도전정신도 지금이 가장 숙성돼 있을 때이기도 합니다.
- 최근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군이 형성되면서 현직 국회의원에 대해 의원직 사퇴 후 경선 참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어떤 입장이십니까?
▲저는 시민을 위한 사퇴라면 언제든지 검토하고 또 결단할 수 있지만, 상대 후보의 이익을 위한 사퇴는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경선 초기에 상대방에 대한 압력이나 비방을 위한 목적으로 의원직 사퇴를 말하는 것은 경쟁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은 세종시 문제 등으로 인해 여당의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국회의원 1석이 중요한 때입니다. 당장 2월 국회에서 제가 대정부질의자로 결정되어 있어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이 많이 남아 있구요.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국회의원직이 대단한 기득권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현행법 하에서는 의원직을 갖고 경선에 뛰어드는 것이 오히려 매우 불리하게 돼 있습니다. 예컨대 현수막도 걸 수 없고, 본인 외에는 명함을 돌릴 수도, 어깨띠를 착용할 수도 없습니다. 공약집도 낼 수 없구요. 예비후보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대부분 제한 받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원직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상대방을 흠집 내기 위한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무리로 광주시민들께 한 말씀 해주시죠.
▲저는 광주시민들과 함께 ‘다시’ 위대한 광주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태평양과 같은 크고 깊은 바다도 변함없이 고요하고 잔잔하면 죽은 바다가 됩니다. 플랑크톤이나 유기물과 같은 먹이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이죠. 이 큰 바다가 다시 새롭게 살아나기 위해서는 용암이 분출되고, 해일이 일고, 거친 파도가 쳐 줘야 합니다. 저는 지금 광주에도 이러한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변화를 위해 제가 먼저 나설 작정입니다. 광주 시민들이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시면, ‘다시 위대한 광주를 만들고 싶은’ 제 꿈이자, 시민들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