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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의 혁신 부른 ‘맛술사’는 한국의 글로벌한 문화외교 사절

권유리 기자 | 기사입력 2010/03/02 [11:10]
17세기 스페인 출생의 연극의 귀재 ‘로페 데 베가’는 당시 극작가들이 원칙처럼 고수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연극 삼일치론(연극공연은 해가 질 때까지, 한 장소에서, 그리고 하나의 긴장관계를 다룬 사건이어야 한다)’이 낡은 법칙이라며 다른 연극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페는 “나는 세인들의 박수를 이끌어 낸 자들이 발명한 기술과 예술로 극을 쓴다. 왜냐하면 세인들이 돈을 주고 보니까,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선 속어로 말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로페처럼 획기적인 연극

로페의 이 주장은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다. 스페인의 세르반테스조차도 오랫동안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로페의 연극이 큰 성공을 거두자 모두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긴 했다.

연극 맛술사는 로페처럼 전혀 새로운 주장을 펴는 ‘새로운 연극’이다. 세게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이 연극은 지난 25일 정동세실극장에서 초연됐다. 지난해 출범한 한아트(윤미나 대표)의 연극 ‘맛술사’가 드디어 베일을 벗고 관객과 만난 것이다.

지금까지 맛을 주제로 하는 연극은 없었다. 맛있게 먹고 살고픈 것이 인간의 욕망이자 본능인 데도 말이다. 연극 ‘맛술사’는 맛을 다루는 전문 요리사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세계 요리대회의 출전을 앞두고 국내요리대회를 열어 출전선수들을 뽑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실력위주의 공정한 선택을 위해 극비리에 진행된 심사과정에 의해 의외의 인물들이 선택되었다. 양식부문 챔피언, 특급호텔 수석 주방장으로 재직 중 청와대 만찬팀을 짜기도 했으나 만삭의 아내를 잃고 술로 인해 조리 도중 화재를 내 폐인처럼 지냈던 주태오에게 주어졌다.

흥미진진한 시나리오

전통요리집 청운각을 운영하는 엄마의 요리전수를 거부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으나 결국 다시 요리 현장으로 돌아와 한식부문 챔피언이 된 민오곡, 중식부문은 최연소자로 재래시장에서 고기장사를 하는 할머니 일을 돕다 시비가 붙어 상해를 입힌 죄로 소년원을 다녀온 강산들에게 주어졌다. 강산들은 소년원에서 요리를 배워 절대 미각의 소유자로 인정을 받았다.

언론에서 말이 많거나 말거나 우승자 세 명은 요리대회 후원자인 빙글빙글 식품의 이회장이 주도하는 기상천외한 맛 훈련을 받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간다. 일 년간의 지옥 훈련을 마친 그들에게 스승은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 각자 전설의 맛을 찾으라는 엄명을 내린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에 가게 되지만 예상치 않은 일은 계속해서 들이닥치고, 세계의 벽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대회 결과는 참담했던 것.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시작된다. 숙소에 돌아와 실의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뜻밖의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이야기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맛술사’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흥밋거리를 선사한다. 바로 맛을 음미하는 방법이다.

맛있게 먹는 법 알려줘

조리의 영역은 전문가가 되려면 오랜 시간의 노력과 학습이 필요하지만, 맛의 영역은 조금의 노력으로도 쉽고 간단하게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쁜 생활로 인해 맛에 대한 이해보다는 모든 처리를 빨리 빨리 하고자 하는 습관에 젖어 그 습관대로 먹는다. 빨리 먹고 빨리 판단하는 생활이 일상적으로 몸에 배어 있어서다.

한아트의 윤 대표는 “‘맛술사’라는 맛있는 연극을 통해서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법과, 그것을 통해 조금씩 자기 맛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 졌으면 한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맛의 세계는 인류역사와 더불어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더불어 음식문화가 많은 변화와 발전을 보인 것처럼, 국가와 민족에 따라, 그 음식문화의 종류와 형태가 수도 없이 다양하다. 심지어 같은 민족, 같은 나라라 하더라도 지역이나 동네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 음식문화이다. 하지만 맛을 느끼거나 즐기는 것은 공통이다.

즉, 다른 음식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맛이 그 수용의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맛은 맛있게 먹으려 하는 열려 있는 마음이나, 그 기본적인 자세에 따라 느낄 수 있는 폭이 달라진다.

맛의, 미식의 영역을 넓힌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접하는 세계를 넓혀 가는 것이 된다. 사람은 자신이 맛있게 먹은 음식을 만든 문화에 호감을 갖고 수용하게 된다.

연극 맛술사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동안 중간에 관객들은 한아트에서 마련한 재료로 맛을 음미하는 방법을 배운다. 한아트는 이를 위해 떡과 바나나 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어떻게 떡과 바나나 그리고 물의 참맛이 표현되는 지 음미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맛술사는 지금까지의 연극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연극 무대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주방이 아닌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다양한 요리 퍼포먼스를 할 수 없게 됐다.

주최측은 이런 문제를 영상으로 준비했다. 관객들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다양한 요리의 향연과 퍼포먼스를 지켜보게 된다. 그러한 요리의 향연이 끝나갈 무렵 무대에는 ‘침을 꼴딱 넘어가게 할’ 멋진 상차림이 떡 하니 나타난다.

영화야 연극이야?

무대에서 재현할 수 없는 음식의 향연이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고 무대 위 드라마와 결합되어 관객들로 하여금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송이버섯을 이용한 요리법, 신선로, 북경오리 요리와 이태리 파스타까지 요리의 상세한 조리법은 물론 신체와의 연관성과 오감을 이용한 먹는 법까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내어 마치 한 상 그득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대하는 풍요로운 느낌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맛술사’는 맛있는 연극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관객들 모두 함께 참여하는 시식을 진행하여 실제로 보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행위자로서 함께 맛의 세계를 경험케 해주는 체험극이기도 하다.

‘맛있게 먹는다는 것은 곧 자신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행복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극중 대사)

연극의 후반부에 벌어지는 요리시식 퍼포먼스는 또 하나의 맛깔스런 연극의 맛을 선사한다. 세계요리대회에서 1, 2등한 이태리의 파스타 요리와 북경오리 요리를 3인의 요리사들이 예리하게 분석해내는 장면을 으뜸으로 극 중에 이어지는 갖가지 맛에 대한 표현들은 이 연극을 접하는 이들을 미식가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다.

그동안 요리를 주제로 한 영화는 있었지만 요리와 더불어 맛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연극 무대로 오른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한국 전통의 맛을 시험하는 무대가 될 이번 연극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미식의 세계를 선사하며 2월25일부터 4월11일까지 상연된다. 입장료는 3만원.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3시, 6시. 정동 세실극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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