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피딕 ‘사슴이 있는 골짜기’라는 제품의 이름처럼 스코틀랜드 동북부 그램피언 산맥에서 녹아내리는 청정 빙하수로 빚어낸 프리미엄급 스카치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지 50주년을 기념하던 1887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첫 선을 보였다는 내역을 소상히 설명해 주는 이가 바로 생일상을 받는 주인공이었다. 바텐더 출신이 아니라 무려 1,000여명의 식솔들을 거느린 회사의 대표였다.
두 남자의 프러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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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섬마을에서 최고로 가는 멋쟁이 양반이었어요. 내 어디 가서도 내 아버지 함자를 항상 자랑스럽게 내놓았죠. 그런 아버지의 후광으로 우리 형제들 간의 우애는 섬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예요. 너무나 다들 부러워하죠.”아버지를 우뚝 세운 위상에 형제(형 정운용, 동생 정해용)는 포옹과 동시에 입을 맞추었다. 옆에 앉아있던 형수는 발그레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시동생이 내뿜는 애정 어린 발언을 멀리서 짐작만 한다면 독립선언문이라도 낭독하듯이 진한 애정이 녹아있었다.
“형수! 나 두고 좀 보쇼. 지금이야 형수가 움직이면서 식당이라도 하니깐 미루어졌지만, 내 이 자리에서 장담할 수 있소. 잘 자란 조카들도 있지만 서도 형수는 내 몫으로 잘 대접할거외다. 내 어머니처럼 잘 모실 거요. 우리 형수가 집안에서 이리 잘해 주니 정말로 형수가 제일 좋소.”형제는 한 여자를 두고 칭찬을 한 소쿠리나 풀어놓았다. 그 옛날 신안 섬에서 형은 동생을 데리고 맞선을 보러 나갔다. ‘나만 좋으면 되나? 내 동생들도 좋아해야지만 결혼 할 수 있지!’ 진하게 아롱진 마음들은 60평생 동안이나 이어졌다. 형제에게 흡족한 합격점을 받아 낸 6남매 장남의 아내는 오늘날까지도 가족들에게 추앙과 사랑을 받으면서 묵묵히 집안을 이끌었다.
합정역 8번 출구 ‘부산횟집’
서울시 마포구 합정역 8번 출구의 30m 떨어진 ‘부산회관’(전화: 02-336-1804)에서는 오랜만에 신안 바다에서 막 잡아서 올라 온 큼지막한 민어로 잔칫상을 도배했다. 가장 고소한 옆구리와 눈 주변에서 발라 진 민어회와 민어 내장매운탕에서는 별스런 정들이 넘실거렸다.
“난 동생들 덕에 참 행복해요. 막냇동생 6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동생들이 다들 잘 자라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동생들 웃음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따스해져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생들은 나는 뒷전에다 밀쳐놓고는 우리 집사람을 더 좋아해요. 우리 집사람은 참으로 좋은 여자예요. 그리 동생들한테 퍼다 주어도 싫은 내색 한 번을 하지 않는 사람이에요.”부산횟집의 벽면에는 고향을 내려다보이는 사진 두 장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정이 유난스런 정운용 사장을 그대로 빼어 닮아있는 정경에서는 따스한 초록 향이 넘실거렸다. 학교를 다니는 동생들은 뒷바라지 했던 맏형 내외를 부모처럼, 신안 섬에서 갓 잡아 올라 온 생선들이 우애 깊은 형제의 웃음소리를 끊이질 않게 하였다.
“우리 형수는 우리 가정을 위해 태어난 분이예요. 세상에 이런 형수는 있을 수가 없어요.”동생의 칭찬을 흐뭇한 미소로 맞받아서 장단을 맞추는 사람이 또 있었다.“정말 군소리 한마디 없이 참 고생도 많이 했어요. 땅을 팔아서 동생들한테 주어도, 동생들 학비 대느라 그리 고생을 시켜도……. 다시 태어나더라도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네요. 나도 저 사람이랑 다시 결혼해서 내 동생들이랑 살 겁니다.”“정말 언니는 세상 살 맛이 나겠네요. 어쩜 두 남자들이 그리도 좋다는 칭찬이 귀에 딱지가 질 정도이니 정말로 행복해 보입니다.”시샘하는 양념장으로 담뿍 끼얹어 놓은 생일상은 웃음들에 뒤섞인 스카치위스키의 맛은 한층 풍미로웠다.
솔향기를 담은 마음
“우리 형수, 술 못해.”시동생의 정겨운 참견을 미덥다는 듯이 쳐다보는 형수의 눈매는 다정했다. 그저 편안하게 주변에서 지나치는 말들에 싱긋이 웃으면서 자리를 지켰다. 시동생은 여전히 형수의 손을 잡으면서 형수 잔에 채워지는 술 단도리를 했다. 주변에서 호들갑을 떠는 분위기에서도 얌전히 미소 짓는 모습은 참으로 순박해보였다. 집안에 맏며느리가 잘 들어와야만 집안이 편하다는 말을 절실히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현장이었다. 곱상한 외모에 오랜 세월 동안 주방일로 약간 허리가 굽은 모습은 우리네 어머니처럼 속 깊은 여인이었다.
“지금처럼 건강 지키면서 앞으로 더 좋은 일 많기를 바라요.”
짤막한 인사말로 시동생의 생일상을 형수는 밝혀주었다. 2시간 동안이나 즐거운 잔칫상에서 처음으로 내비치는 형수의 말 한마디에 시동생의 입 꼬리는 마냥 올라갔다.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때문에 홀로 지내는 시동생을 챙기는 형수의 손길은 언제나 자상하였다. 말 한마디 없는 가운데에서도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하게 자리를 이끌어주었다.“pure single molt란 순수 증류 위스키예요. 밸런타인이나 제이앤비 다른 양주들은 여러 가지 향료와 증류수를 브랜딩해서 나온 제품이지만, 진짜 순수 스카치로 건배를 하죠.”좋은 와인을 손수 만들어서 명절 때마다 지인들에게 인사하는 시동생 옆에서 형수는 조금 남겨져 있는 위스키를 음미할 정도였다. 반찬들을 이리저리 건네다 줄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따스한 형제애를 부추기는 여인에게서는 싱그러운 솔향기로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붉은 소나무 사이에서 불어오는 잔잔한 향기에 온 집안은 행복한 웃음들이 가득 매워져 있었다. sungae.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