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하게 부상하는 중국이 이젠 세계를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꾸고 있나?
중국은 g2라는 국제적 지위를 부담스러워한다. 중국이 세계와 관계를 맺어온 방식은 지금까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950년대는 세계와 적대관계적 태도를 갖고 있었다. 서구에 대응한 자기방어적 자세와 반제국주의적 태도를 가진 것이다. 1980년대에 와서는 개혁개방과 함께 세계에 한 발을 들여놓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국제적으로 부상하는 단계였다. 이제 와서는 오히려 해외에서 중국이 컸다고 추켜세우는 상황이 됐다.
이제부터 중국은 국제관계 규칙을 지키는 단계를 넘어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현재 중국은 규칙을 지키는 단계와 만드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물론 존경 받는 단계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중국의 발전모델, 소위 ‘중국모델(베이징 컨센서스)’은 중남미지역에서 상당히 어필하고 있다. 중남미지역 국가들은 ‘미국이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모델은 단순한 서구식 근대화 이론과는 다른 새로운 국가발전 모델의 가능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문제는 정치와 경제에는 중국모델이 통할 수 있지만 인권과 가치관에는 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이 흔히 내세우는 국가상황론(國情論)은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는 호소력이 있을 수 있지만 인권과 가치관 측면에서는 수용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중국 지도자들은 인권과 민주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원화된 시장경제체제에서 사고를 일방적으로 묶어놓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중국에 대한 연구도 자연스럽게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서구와 한국의 중국연구 동향은 어떤가? 중국내부에서도 자체 연구가 활발한 것 같은데?
서구의 중국연구는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고 관심영역도 매우 넓다. 미국 투자전문가 워런 버핏도 “성공하려면 중국어를 배우라”고 말했을 정도다. 서구는 과거부터 튼튼했던 중국연구 기초 위에서 최근 범위와 깊이를 확대하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중국의 문화와 문학, 역사 등에 대한 서구인의 이해와 조예가 보편적으로 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같은 문화권으로서 중국을 보다 잘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문화에 대해서도 연구와 이해를 심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중국연구도 양적, 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 분야에 따라서는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간 것도 있다. 앞으로는 질적인 성장뿐 아니라 한국의 중국연구자를 잘 활용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전문가 풀을 네트워크화하고 필요할 때 기업과 정부 등 적재적소에 전문가들이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국을 바로 아는 것은 한국의 생존학이라고 생각한다. ‘중국학은 한국 생존학’이다. 이점을 절실하게 느껴야 한다.
중국 자체의 중국연구도 보다 다양하고 자유롭게 가고 있다. 과거 베이징(北京) 등 주요 도시에 국한됐던 자체의 중국연구가 지역적으로 확산되는 것도 의미 있다. 예를 들어 남부 위난(雲南)성은 베트남과 인도연구, 광둥(廣東)성은 동남아 연구, 동북3성은 러시아•한반도•일본 연구, 산둥(山東)성은 한국에 대한 연구를 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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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worldbreaknews.com / 인터뷰=배연해 기자 mrbaey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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