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안전을 책임지며 기업의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단속을 빌미로 남양유업에 압력을 행사해 물의를 빚고 있다. 한 방송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에는 식약청 직원이 경쟁업체인 동서식품을 들먹이며 폭언과 욕을 일삼고 뇌물을 받는 듯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이에 따라 식약청은 최초 유출자를 찾는 한편, 담당 조사관을 징계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식약청의 한 간부가 단속을 빌미로 남양유업 직원에게 과대광고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폭언과 금품을 요구하는 듯한 내용의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두 달 재미 봤잖아”
지난 2월28일 한 방송에 따르면 지난1월 식약청의 한 간부는 남양유업 직원을 불러 제품 표시사항 위반 등을 지적하다가 욕설과 반말이 섞인 폭언을 했다. 이 간부는 남양유업이 최근 출시한 커피믹스 광고에 사용한 ‘합성첨가물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문구가 과대 광고에 해당한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화면 속의 식약청 간부는 “허위표시예요. 표시사항 위반만 제가 한 번 좀 알려줘 볼게. 이거만 해도 벌써 허위표시잖아”라며 반말로 언급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간부는 남양유업이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들며 시장을 두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경쟁업체에 대한 이야기도 드러냈다. 식약청 간부는 “남양유업 한두 달 재미 봤잖아요. 그 사람들(동서식품) 이것만 빼주면 될 것 같은데”라며 “여태껏 그냥 넘어간 것만 해도 ‘동서 가만 계세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렇게 했기 때문에 여태까지 가만 있었어. 내가 보기에 남양 약점 많아요. 얼굴 벌게질 거 많아”라며 엄포를 놓았다.
이어 식약청 간부는 남양유업 관계자들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에이 씨 진짜 뭐… 0000과장이 무슨 사정하냐? 씨000”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간부는 “몇 장 넣었어? 두 장? 뭐 섭섭한 거 있으면 전화주세요”라고 이야기해 정황상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약청, “직원 목소리 맞다”
녹취록이 방송을 통해 공개되자 비난여론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동서식품의 커피시장 독점을 식약청이 암암리에 돕고 있었다는 의혹부터 남양유업이 식약청 간부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녹취록을 공개했다는 설까지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녹취록에서 식약청 간부가 경쟁업체인 동서식품을 지지하는 발언, 이에 화가 난 남양유업이 이 녹취록을 의도적으로 공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녹취록에 담긴 당시 상황도 의혹을 뒷받침하기에는 충분했다. 식약청이 밝힌 바로는 현장에 남양유업 직원 2명과 식약청 간부 2명만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식약청 대변인은 “당시 4명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우리 측 간부들이 녹취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황상으로 남양유업측일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히 누구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을 했다.
하지만 남양유업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남양유업은 “녹취를 하거나 녹취자료를 제공한 사실은 전혀 없다”며 “우리가 식약청과 대립각을 세워봤자 좋을 것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식약청의 유무영 대변인은 “보도에서 확인한 일부 내용은 식약청 직원의 목소리이며 실제 일부부적절한 언어와 행동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며 “그러나 보도된 녹취 전반이 식약청 직원인지 여부는 보도 시 기계음 처리로 확인할 수 없으며, 금품수수를 암시하는 내용은 식약청 직원 여부와 녹취의 앞뒤 상황을 확인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 및 제16조 제1항에 의하면 타인대화비밀보호 위반은 몰래 녹취한 것뿐 아니라 그런 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같은 형량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식약청은 필요한 경우 고발을 통해 수사의뢰도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시작은 카제인나트륨 논란
동서식품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녹취록에 대해 동서식품이 식약청에 남양유업의 표시사항 위반 조사를 의뢰하는 상황이 아니냐는 의구점을 제기하고 있다. 식약청이 남양유업에 문제를 삼은 표시사항 부분은 일전에 동서식품도 오해의 소지를 가진 광고라는 이유로 남양유업에 불만을 제기했던 사항이기 때문이다.
앞서 동서식품은 남양유업측 광고 카피인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를 넣었다는 문구에 대해 카제인나트륨은 인체에 해로운 화학첨가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나쁜 것처럼 광고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청이 남양 제품 광고가 ‘타사 비방 또는 비방으로 의심되는 광고’로 식품위생법 위반이라는 견해를 내 동서식품과 식약청 간의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았냐는 이야기다.
동서식품측은 이번 논란에 대해 “전혀 사건과 연관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동서식품측은“현재 시장점유율 80% 가까이 차지할 만큼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는 우리가 남양유업을 제재할 이유가 없다”며 “남양유업이 세컨드 포지션을 점하기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식약청이 자체적으로 조사에 나선 것이지 동서식품이 먼저 조사를 의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억울해했다.
최초 유포자는 어디에?
결과적으로 녹취록은 공개됐으나 녹취록 최초 유포자는 미궁에 빠진 상태다. 식약청은 결국 담당 공무원을 징계했다. 지난 3월2일 식약청은 보도 자료를 통해 “당시 면담에 참여했던 과장과 사무관을 비롯한 두 명에 대해 우선 공무원 품위손상 및 민원인에 대한 불친절 대응으로 엄중 경고 및 지방청 전보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번 보도와 관련 불법 녹취여부, 당초 녹취를 제공한 자의 편집여부, 금품수수 암시의 사실여부 등 상세한 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식약청 유무영 대변인은 “남양유업 방문결과 녹취 및 금품제공 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며 “방송사측에 정식으로 녹취내용에 대해 협조를 요청했으며, 녹취록이 확보되는 경우 음성지문 확인 등을 통해 식약청 직원 여부 확인과 결과에 따라 추가로 후속 조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품수수 부분에 대해서는 뇌물 및 대가성과 연계된 형법상의 문제로 해당 법률인 형법에 의거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보자의 녹취내용 편집 등 의도적으로 식약청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 당사자는 물론 녹취를 공개한 언론기관에 대해서도 강력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식약청은 앞으로 부적절한 면담의 재발방지를 위해 (민원)업체와 사전면담을 하거나 또는 의견개진을 하는 경우 자체적으로 녹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민원인이 비공개를 희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면담 또는 의견개진의 장소는 사무실이 아닌 고객지원센터 등 공개된 장소를 원칙으로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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