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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총통과 한국 유학생의 ‘이색적 대화’

“한국에 대한 오해 풀어달라” 부탁에 마 총통 흔쾌한 승낙

박정대 기자 | 기사입력 2011/04/12 [10:21]
마잉지우(馬英九) 대만 총통이 대만 대학생들과의 간담회에 참가한 한국 유학생으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응한 일이 화제다.

중국시보는 11일 이 일은 대만과 한국 사이의 상호이해 부족과 함께 국민에 친근하게 다가서는 대만 정치문화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 보도했다.

마 총통은 10일 타이베이(臺北)에서 성요한(聖約翰)과기대학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간담회 도중 이 대학 영업유통과에 유학중인 한국인 이진희씨가 손을 들고 ‘다소 엉뚱한’ 요청을 했다. 이 대학의 유일한 한국인 학생인 이씨는 한국에서 중국어를 배운 뒤 성공회를 통해 교환학생으로 와있다.

이씨는 “대만에서 반 년간 유학하는 동안 많은 대만인들이 한국을 오해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며 “총통께서 직접 공개적으로 오해를 풀어달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오해의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만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며 공자를 빼앗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본인 이외에 다른 한국 유학생들 중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는 예가 많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한국인들이 대만의 전통음식인 또우장(豆漿‘콩국)을 한국이 발명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대만인들의 오해였다. 그는 이런 오해에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문화를 빼앗아가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비쳐 다소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 역사교과서에서 공자는 중국인이라고 배웠다”고 설명하지만 일일이 오해를 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를 빌어 대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고 신뢰성이 있는 총통께서 직접 공개적으로 오해를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당초 ‘사치세’와 같은 대만의 현안문제에 대한 질문을 예상하고 있던 마 총통은 이런 부탁에 다소 머쓱해졌다. 이씨도 “반드시 응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며 머뭇거렸지만, 마 총통은 곧 친근한 태도로 그의 요청에 응했다.

마 총통은 참석자들에게 “이 학생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공자가 중국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인들은 공자가 한국인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 총통의 발언이 끝나자 간담회장에 참석한 교수와 학생 100여 명은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성을 보냈다.

이씨는 “대만유학 도중 국가원수와 가까이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잊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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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d 2011/04/14 [14:33] 수정 | 삭제
  • 한국인들 대부분이 공자가 한국인이라는 걸 거짓말인줄로 잘못 알고 있는데.
    논어를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은 절대로 그런 말 못한다.
    논에서 공자는 자신이 지나사람이 아니고 동이사람이며
    동이국으로 돌아갈거라는 말이 수차례 나온다.
    그런데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흥분하는데
    옛날과는 달리 흥분하게 된 이유가 있다.
    고구려땅은 중국역사이기 때문에 공자는 중국인이다
    라는 것이다.
    공자시대 동이쪽에 있던 국가는 한국(고조선)밖에 없다.
    나머지는 아직 국가를 이루지 못한 유목민 단계.
    중국인들은 논어를 2500년이나 배워왔으면서 (당연히 공자는 한국인라는 걸 알고 있었다)
    왜 지금서 새로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하는가?
    그것은 고구려가 자신들의 역사라고 최근 날조했고
    그전 고조선까지 거기다 집어넣은 결과다.
    차이나라는 말은 중국어 지나(支那)에서 유래했는데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어떤 지방"이라는 뜻인데
    중국이 왜 지방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을까?
    그것은 옛날에 어떤 나라의 지방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 내용은 이렇다.
    고구려 옛땅 요하에서 BC4000년경 세계최초로 일어난 금속문명에 의해
    즉 중국의 지나인들이 동이족에게 정복당했다.
    탁록전투의 상황이 동이금속문명과 지나석기문명의 전투상황을 잘 보여준다.
    지나인이 "구리로 된 머리를 가진 동이는 이길 수가 없다"며 혼비백산하는데
    이것이 최초의투구와 갑옷을 가리킨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 고조선 단제(임금)나라의 일 지방이 된 것이다.
    지나가 독립하게 된 것은 금속문명이 널이 퍼지면서 진시황때가 최초이다.
    하나라,은나라,주나라,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 모두 고조선의 봉건제후들이었다.
    고조선은 세계최초의 봉건제도를 실시한 봉건국가이다.
    차이나란 이름이 중국최초의 통일국가 "진"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15년만에 망한 나라가 세계에 널리 알려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동북공정 등 최근의 중국의 역사학은 학술적 가치가 전혀없는,즉 사실과는 관계가 먼 쓰레기 역사학이라고 보면 된다.
    역사학의 최고후진지역 중국,이렇게 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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