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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에서 최 실장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우려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행동을 나설 구상을 했다는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최 실장은 “김 대통령은 이렇게 끝까지 국민들을 믿었다. 국민들이 '행동하는 양심'이 돼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바로잡아 줄 것”을 믿으셨다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민주진보진영이 승리해서 김대중 시대를 이어가자. ‘김-노시대’, ‘민주정부 10년’을 이어가자”했다.
전남 장성 출신인 최 실장은 광주상고, 성균관대학을 졸업했으며, 김대중 정부의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거쳐 김대중 대통령이 2009년 서거하실 때까지 ‘마지막 비서관’을 지냈다. 지금은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으로 이희호 여사를 보좌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김대중리더십연구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강연문 전문이다.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강연문 전문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4가지 호소
존경하는 대전 시민 여러분! 오늘 행사를 주관하시는 민주당 대전시당, 대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행동하는 양심 대전준비위를 비롯한 대전추모위원회 관계자 여러분. 김대중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추모강연회를 준비해주시고, 저를 초청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김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국내외 60여 군데에서 추모문화제, 음악회, 사진전, 뮤지컬 공연, 강연회, 학술회의, 추모예배,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하고 회상함으로써 김대중 정신과 그 가치를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온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민주주의, 인권, 평화, 화해의 가치를 알려주신 분입니다. 민주인권국가, 문화국가, 북지국가, 통일국가의 비전을 세워주신 분입니다. 그러나 이 비전은 지금 실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김대중 대통령은 돌아가셨지만 ‘김대중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김대중 대통령께서 생애 마지막에 우리들에게 무엇을 호소하셨는지, 그리고 그 호소가 지금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김 대통령은 생애를 마무리하시는 순간까지 나랏일에 대해 대안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매주 3회, 하루 4∼5시간씩 투석치료를 받으시면서도, 입원해 누워계시면서까지도 나랏일을 걱정했습니다.
첫째, 6.15와 9.19로 돌아가라
김 대통령의 첫 번째 호소는 남북문제는 6.15공동선언으로, 북한핵문제는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6.15선언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입니다. 9.19성명이란 2005년 미·중·러·일·남·북 6자가 합의한 것으로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북한에 경제지원을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돌아가시던 해인 2009년 5월초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부주석을 만나 "9.19성명을 실천하자. 6자회담을 동북아의 평화안보협력기구로 만들자"고 주장해 중국 정부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중국에서 서울로 돌아오신 다음날인 5월 8일 미국의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동교동 사저에서 만나 북미대화와 6자회담의 복원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셨습니다.
5월 18일 생애 마지막 공식 만찬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했습니다. 이 만남을 앞두고 김 대통령은 며칠 동안 심사숙고하며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에게 보내는 장문의 문서를 작성하셨습니다. 이 문서에서 김 대통령은 지난 20년간의 북핵문제 역사에서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열거하고, 북미 직접대화와 6자회담 협상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남북 긴장이 높아져 가는 것을 보시면서 서해상 충돌을 걱정하셨습니다(2009년 6월 8일, <중앙일보> 회견). 이 예측은 불행히도 적중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생애 마지막 연설이 된 6.15공동선언 9주년 연설(6월 11일)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말했습니다. "강력히 충고하고 싶습니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합의해 놓은 6.15와 10.4를 이 대통령은 반드시 지키십시오. 그래야 문제가 풀립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 노동자 숙소 건설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연설문 제목은 '9.19로 돌아가자'였습니다. 유럽연합상공회의소의 초청으로 예정(7월 14일)됐던 이 연설은 7월 13일 입원 때문에 유고 연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렇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남북문제는 6.15공동선언으로, 북한핵문제는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 해결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소식을 듣고,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씀은 못하셨지만 관련 기사를 계속 읽어 달라고 손짓까지 하셨습니다.
지금 상황은 어떠합니까? 김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연평도 포격으로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북한이 우리 영토에 포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금강산관광은 중단되고 급기야 북한은 금강산 남측재산을 몰수하는 절차를 밝고 있습니다. 이산가족만남도 중단되었습니다. 개성공단의 우리 기업인들은 좌불안석, 한숨은 늘어가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제재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더욱 중국의 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중국 방문에서 보듯이 북한에 대한 제재는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6자회담은 수년간 표류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6자회담을 재개할 어떠한 의지도 표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둘째, 민주당과 야당, 시민세력은 단결하고 연합하라
김대중 대통령은 세브란스 중환자실에서 입원 이틀만에 호흡기를 삽관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며칠후 호흡기를 뗐습니다. 호흡기를 떼고 하신 말씀은 ‘단결’과 ‘연합’이었습니다. 중화자실에 누워계시면서도 민주당과 그 주변세력들은 하나로 단결하고, 야당들과 시민단체는 연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원하시기 전에도 '단결'과 '연합'을 주문 외우듯 하셨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은 소수 의석으로 힘든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책면에서나, 인물면에서나 민주당은 취약합니다. 주변세력들도 당 바깥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민주당이 단결하고 분발해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민주당은 야당 및 시민세력들과 함께 '연합의 정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정치생활에서 수차례 연합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야당 세력을 통합하고 재야세력과 젊은 신인을 정치에 충원하며 힘을 키웠습니다. 여당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지형, 즉 지지기반의 열세, 재정기반의 취약, 적대적이기까지 한 언론환경을 통합과 연합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1997년 정권교체도 이른바 'DJP 연합'을 통해 이룩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합'의 방도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연합을 위해서는 타협과 협상이 필요합니다. 김 대통령은 작년 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 "자기를 버리면서 큰 틀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크니까 7을 차지하고 나머지 3을 (연대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나눠 가지라는 식으로 해선 곤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협력하고 있는 타 정파에) 30∼40석을 양보해서 우리가 60석을 얻어 모두 100석을 얻을 것인지, 따로따로 나가서 40석만 얻을 것인지 그것은 분명하다. 빈손으로 말 것인지, 아니면 전체 10개 중 5개라도 얻어서 2∼3개씩이라도 나눠 갖는 것이 나은지 그것은 분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2005년 가을 김대중도서관으로 찾아온 참여정부의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대중 시대가 따로 있고, 노무현 시대가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입니다. 김-노시대라고 부르십시오. 그래야 성공합니다.”
국민들은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주변의 정파들, 야당과 시민세력이 하나로 단결하고 연합해 거대 여당과 멋있는 경쟁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정치일정을 생각할 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리더십은 기득권을 지키면서 현실에 안주할 때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리더십은 단결과 연합을 통해, 내부의 경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때 국민이 키워주는 것입니다. 지금 민주진보진영의 최대의 정치적 과제는 통합입니다. 김 대통령은 ‘하나의 링에서 경쟁하라’고 말했습니다. 국민들은 우리에게 “하나로 뭉치고, 나눠가져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지해주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명박 정부는 불행한 길을 걷지 말라
생애 마지막 순간에 김 대통령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김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기대를 품으셨습니다. 이 대통령이 기업을 한 분이고, 실용적 생각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나랏일을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대통령을 찾아와 남북관계에서 햇볕정책이 옳은 방향이라고 몇 차례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같이 상고를 나와서 생각이 같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김 대통령은 목포상고를, 이명박 대통령은 포항 동지상고를 나온 분입니다.
그러나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에 대한 김 대통령의 걱정은 커졌습니다.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두들겨 맞고, 언론인들이 재판정에 서는 등 언론통제 의도가 노골화되고, 재임중 심혈을 기울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유명무실화되고, 시민단체들이 압력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시면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하셨습니다. 2009년 1월 1일 신정모임에서는 "꿈만 같다. 민주정부 10년으로 민주주의는 반석 위에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착각했다"고 자책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길을 간다면 불행해질 수 있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편향의 정책이 계속되고, 사회복지가 축소되고, 800만명 비정규직의 처지와 생활형편을 바라보면서 서민들의 삶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 부정되고, 개성과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가 반목과 대립으로 가는 것을 보고 '10년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다'며 개탄하셨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 대통령은 큰 결심은 준비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간다면 비록 전직 대통령으로 은퇴한 몸이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린 것입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으시고는 "내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라고 분노했습니다. 이때 김 대통령은 마음만큼이나 몸이 크게 상하셨습니다. 의료진은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 때 경복궁 담벼락 옆에 앰뷸런스를 대기시켜 놓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까지 했습니다. 끝내 권양숙 여사의 손목을 붙잡고 오열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대통령을 지내신 분으로서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김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올바른 방향으로 돌아와 주기를 바랐습니다. 김 대통령은 "나라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먼저 말해 경계하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끝내 김 대통령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넷째,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
김 대통령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는 말씀을 국민들에게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평생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셨습니다. 은퇴를 모르는 민주주의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의 3대 위기, 즉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보고, 국민들을 향해 '행동하는 양심'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야경꾼이 되어주길 호소하셨습니다. 민주주의는 싸워서 얻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지키는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시어 두 차례 인공호흡기를 부착하시고 기관절개 시술을 받으시며 37일간 투병하셨습니다. 1차 인공호흡기 부착 이후 병세가 호전돼 호흡기를 뗀 3일의 기간중 국회에서 미디어법 강행통과가 있었습니다. 이날 아침 김 대통령은 병석에서 "상황은(어떠냐)?" "전망은(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야당이 싸우고 있지만 강행통과전망이 높다는 보고를 듣고, 김 대통령은 마른 목을 축여가며 "민심은?(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렇게 끝까지 국민들을 믿었습니다. 국민들이 '행동하는 양심'이 돼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바로잡아 줄 것을 믿으셨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은 참여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김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은 거리에서 투쟁하고 감옥 가는 일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처지에서 양심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바르게 투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쁜 신문 보지 않고, 인터넷에 댓글을 달고,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맺음말
김 대통령은 작금의 남북관계, 서민들의 삶, 민주주의 후퇴를 보면서 피눈믈을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작년 6.2지방선거와 올해 4.27재보궐선거에서 보여준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보고 희망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있는 해입니다. 주변정세도 크게 요동칠 것입니다. 미국은 선거가 가까워지고 중국은 시진핑 시대가 출범합니다. 북한은 강성대국을 진입하는 해로 이미 선포했습니다. 2012년은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햇볕정책’으로 돌아가 평화통일의 길을 걷느냐, 다시 민주주의로 돌아가 세계가 존경받는 나라의 길을 가느냐,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길을 걷느냐 하는 이 모든 것은 정권교체에 달려 있습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드시 민주진보진영이 승리해서 김대중 시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김-노시대’, ‘민주정부 10년’을 이어가야합니다. 오늘 이 자리가 이러한 우리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