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8년 6월, 독도에서 미 공군이 어민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해 어부들이 사망한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과 보상이 이뤄져야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푸른 울릉도 독도가꾸기모임과 한국외국어대 독도문제연구회는 최근 독도에서 폭격으로 숨진 어부들을 위한 위령제를 열고 지난 48년 6월 8일 전시도 아닌 상황에서 미역을 채취하던 어부 수십 명이 미 공군의 폭격으로 숨진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과 보상을 주장했다.
이 사건은 지난 48년 6월8일 오전 11시 독도연안에서 미역을 채취하던 강원도와 울릉도 어부 수십 명이 미 공군폭격기 4~5대로부터 수백발의 포탄과 기총사격으로 4명만 목숨을 건지고 대부분이 숨진 사건으로 진상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왔다.
당시 미군정은 이 사건 후 8일이 지나도록 사실을 부인하다가 뒤늦게 미 극동항공사령부를 통해 “미 제5공군의 b폭격기가 어선들을 바위로 오인하고 연습폭격을 했다”고만 발표했을 뿐 진상조사는 외면한 채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폭격에서 어선과 함께 살아 돌아온 선주 고 장학상(당시 36세. 96년도 사망)씨가 사망하기 전인 95년에 독도피격 진상조사를 했던 한국외국어대 독도문제연구소와 푸른 울릉도, 독도가꾸기모임에 증언한 자료(녹취)에서 밝혀졌다.
장씨는 이 녹취에서 “울릉도 쪽에서 날아온 12대 정도의 폭격기가 2개로 나눠 600m정도 상공에서 서도에서 동도 쪽으로 융단폭격과 기총사격을 하자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졌으며 공두업(당시 36세, 97년 사망)씨, 최원식(당시 50세, 78년 사망)씨, 이상주(미상)씨와 함께 현장에서 탈출했다”고 증언했다.
장씨에 따르면 “당시 동력선 한척에 5~8명이 승선했으며 30여척이 작업하고 있어 최소한 150여명이 숨졌다”고 말하고 “독도에서 작업중이던 동력선과 전마선 80여척(보통 동력선 1척에 전마선 1척)이 거의 다 폭격에 가라앉았으며 대부분이 강원도에서 작업 온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
또 이 녹취에 따르면 고 공두업씨는 “사건당시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도 보였으며 사건 발생 8~9일 전에도 미역채취 중 몸체 곳곳에 총구가 나와 있는 비행기가 날아와 기관총으로 바다 위를 난사, 생명의 위협을 느껴 울릉도로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공씨는 “당시 울릉경찰서 총무 이종오씨에게 보고했으며 며칠 뒤 안심하고 조업을 하라는 통보를 받고 다시 작업을 하려갔다가 폭격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예균(57) 푸른 울릉도, 독도가꾸기모임회장은 “미 공군의 정조준 폭격으로 강원도와 울릉도 주민100여명 이상이 사망했는데도 진실규명은 커녕 아무런 대책이나 보상이 없는 것은 숨진 어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로 두 번 죽이는 꼴”이라고 말했다. <취재협조:경북매일신문 울릉주재 김두한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