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부터 시작된 전남도청의 남악리 신청사로의 이사작업이 오는 17일 마무리 됨에 따라 광주 광산동 시대를 마감한다.
1896년 개도(開道) 이래 광주에 둥지를 튼 지 110년, 1930년 현 도청 본관건물이 들어선 지 75년, 1993년 남악이전이 추진된 이후로는 12년만이다.
광주시기 전남도청은 말그대로 파란만장했다. 행정중심지로서의 의미를 넘어 한일합방과 해방, 한국전쟁, 5.18 광주민중항쟁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거치면서 호남 뿐 아니라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중심공간이 돼왔다.
특히 광주, 금남로, 분수대 등과 함께 현 광산동 청사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이자 역사적 사건의 증언자로서 우뚝 서 있다. 1세기를 훌쩍 넘긴 전남도청의 발자취는 앞으로 건립될 아시아문화전당과 함께 역사적 유물로 영원히 남게되는 것은 물론, `약속의 땅' 남악신도청 시대의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전남도청의 광주시대는 1896년 8월4일 행정구역을 종전 5개도에서 13개도로 개편, 노령산맥 이남을 전라남도로 분리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관찰부 소재지가 나주 과원동에서 광주(당시 광주군)로 옮겨지면서 전남의 중심이 됐다. 전주와 나주로 대표되는 `전라도'의 중심이 광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현 청사 본관건물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에 준공됐다. 1910년대 현 광산동 도청자리 5000여평에 건평 482평의 양식 목조단층건물이 세워져 청사로 사용된 적이 있지만, 지금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본관건물은 당시 2층 적색벽돌조로 지어졌다. 하지만 광복직후 미군정청이 백악관처럼 흰색으로 도색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본관 건물은 1975년 3층으로 증축되는 등 수차례 증축공사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광산동 청사는 특히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으로 거듭 태어난다. 5.18항쟁지도부가 꾸려지고 신군부의 `도청소탕작전'에 맞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최후의 일전을 벌인 곳이다.
개도 당시와 현재의 전남 모습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개도 당시 인구는 36만6.000명. 한국전쟁 이후 계속 늘어나 68년 418만명으로 가장 많은 인구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부의 산업화정책으로 탈농화가 진행되면서 86년 광주 분리 당시 284만8.000명으로 급속히 감소한다. 현재 인구는 197만명으로 지금도 연평균 4만3.000명의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남의 쌀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1977년 764만석. 45년 208만석에 비해 3배 이상이 늘었고, 올해 예상량인 630~640만석보다 130만석이나 많다. 당시는 통일벼가 도입돼 질보다 양이 중시된 탓이지만 인구감소 등 탈농화와 무관치 않다.
행정구역도 현재와 차이가 있다. 1897년 고창이 전북으로, 구례군이 전북에서 전남으로 편입됐다. 1946년에는 제주군이 도로 승격 분리되고 1963년 영광군 위도면이 전북 부안군으로, 1986년 광주직할시 및 송정시가 설치된 뒤 1988년 광주직할시로 편입됐다.
정부수립 이후 초대 이남규 지사부터 현재 34대 박준영 지사 등 모두 32명이 도백을 역임했다. 허경만 지사는 95년, 99년 두차례 민선지사로, 민영남 지사는 60년 관선을 거쳐 4.19이후인 61년 초대 민선 지사를 4개월간 지내다 5.18군사쿠데타로 송호림 중장에게 지사직을 넘겼다.
전남도는 오는 17일 박준영 지사가 주재하는 첫 간부회의를 남악 신도청에서 갖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남악 시대를 열게된다.
한편 전남도는 오는 11월11일 오후 3시 남악 신청사 다목적 강당에서 도민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청식을 가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