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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혁명음악의 대부 '정율성 선생' 생가 ?

'남구 양림동 79번지' 놓고 '시 와 구청 이견

이학수 기자 | 기사입력 2005/10/20 [11:30]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로 잘 알려진 정율성(1914 ~ 1976) 선생 생가(광주시 남구 양림동 79번지)위치를 놓고,  광주광역시와 남구청간의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다.

광주시와 남구청 모두 국내에 현존하는 호적 등 공부(公簿)로는 정 선생의 정확한 출생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엔 공감을 표시하지만 생가의 확실한 위치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부터 토지이력과 호적 등 자료를 통해 정율성 일가의 거주지 등을 추적.조사한 광주시는 19일 남구가 주장하는 `양림동 79번지'는 정 선생의 생가일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시는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1914년 정 선생이 태어난 후 4년 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광주지형도에 양림동 79번지 일대가 숲으로 표기돼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 1921년 기재된 등기부 조사 결과 이 지역은 종묘장과 임업묘포, 농업학교, 잠업강습소 등이 설치된 국유지로 민간인이 임의로 주택을 짓거나 거주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 정 선생이 이곳에서 출생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광주시의 판단이다.

광주시는 이와 함께 양림동 79번지 인근에 가옥이 나타난 것은 1939년 고시된 광주시가지계획 도면부터였으며 정 선생의 넷째형이 이 지역에 토지를 매입한 것은 1944년으로 이 때는 이미 정 선생이 장성해 중국에서 활동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구가 양림동 79번지를 생가로 지정한 것은 성급했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남구는 정 선생이 태어난 1914년 당시 양림동 79번지와 불과 100~200m 떨어진 지역에 이미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양림교회, 기독병원 등이 건립돼 있었다며 거주지가 아니었다는 시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남구는 정 선생이 생전에 `나의 고향은 광주 양림동이라는 말을 수차례 했다'는 부인 정설송 여사의 증언 및 회고록, 중국정부의 공식기록, 조카 박의란씨의 현장확인 등을 근거로 양림동이 출생지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 `고인이 집 앞마당에 큰 나무가 있고 오른쪽에 우물, 왼쪽에 석류나무가 있었다'고 말했다는 유족의 주장을 토대로 수년간 양림동 일대 가옥을 뒤져 79번지가 과거 이같은 구조의 가옥이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유족 동의를 거쳐 생가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남구 관계자는 “문헌자료 등을 통한 출생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고인의 생전 진술과 유족들의 증언 밖에 없다고 판단해 정밀조사를 거쳐 79번지를 생가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남구는 이에 따라 유족들의 생가 확인 서명과 함께 정 선생의 거류증(현재의 주민등록증) 등 입증자료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광주시가 생가 위치에 대한 이견과 함께 정율성 기념사업 예산 지원에 난색을 표명, 차질이 예상됐던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11월12일)는 시가 행사 예산 2억원을 지원키로 함에 따라 당초 계획대로 열리게 됐다.

남구 문화사업추진단 관계자는 “이번 음악제는 남구 뿐만 아니라 문화중심도시로서의 광주 이미지 제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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