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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 조상은 한국인, 가라가미가 입증

일본(日本)과 우리나라와의 관계

강동민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8/08 [15:54]
약 1만5천년 전에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마자 지금의 일본 북해도 쪽으로 넘어간 우리선조들이 있었다. 일본은 그들을 “아이누(아사달= 태양족)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오늘날의 형태처럼 크지 못하고 몸집이 작게 되었다. 짐승이나 나무도 영양이 부족하면 덩치가 작아지고 분재처럼 된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에는 우리 고대 언어가 녹아있다.


(아이누)말

우리말

참 고

시 = 자기(自己)

지/제

<지>는<시>가 탁음화(濁音化)한 것으로서, 일본 고어도 <시>이다.

아 = 앉다(좌 : 坐)



<아>는 <앉다>의 어간(語幹)이다.

아=있다(재 : 在)



현대말 <있다>의 원형(原形)은 <아하다>인데, <아 → 이> 모음교체와 받침화 현상으로 <있다>가 되었다. 일본 말에서는 <아하루 → 아루 = 재(在)>로 변화했다. 일본 관서방언(關西方言)에 보이는 <이하루 = 있다> <기하루 = 온다> <다베하루 = 먹다>에서 <~할 = ~한다>라는 고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아그 = 아우(제 : 弟)

아하

<아우>의 원형은 <아하=어린태양>이다. 태양 숭배족인 우리는 가족들의 호칭에 모두<하 = 해(태양 : 太陽)>을 붙였었다. 예) 아해 = 작은해. 안해 = 처(妻). 오하 → 오빠. 올해 → 올캐. 누해 → 누이(姉妹) 등과 같다. <아그>는 <아하>의 ㅎ-->ㄱ 소리바꿈 꼴이다.

아자포 = 아저씨

아자비

<포>는 <보 = 사람>에서 소리바꿈한 것이다.

앞가스 = 걷다

앞가다

<앞으로 가다>에서의 소리바꿈

알가=아프다(통:痛)

알하

<아프다>의 원형은 <알타=병나다>를 뜻하는 <알하다>이고, <알가>는 ㅎ-->ㄱ 소리바꿈

 
이상은 <아이누어(語) 이라스트 사전>(일본 와우사 : 蝸牛社 發行)의 <아>줄(行)에서 찾은 것을 예시(例示)한 것인데, 이것만 해도 우리말과 <아이누>말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어원으로 밝히는 우리상고사 / 박병식 저 인용)
 
▲ 강동민     ©브레이크뉴스
이들은 연해주 쪽에서 넘어간 숙신(肅愼)과 오로(挹婁)족으로 일본 열도로 전달한 새로운 지식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불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추운지방에서 생활해온 숙신과 읍루(오로)부족들은 일찍부터 고열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기술을 터득했으며, 중국 고대역사에 우리민족의 치우천왕이 광석을 캐내어 쇠(鐵)와 구리(銅)를 생산하여 여러 가지 갑주(甲冑)와 무기(武器)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의 옛날이었다.

또한 이들이 일본열도에 그러한 기술을 전달한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 승문중기(繩文中期)의 일본 토기에 고열의 화기를 마음먹은 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다양한 형태와 신비스런 문양에서 찾을 수 있다.

경북 고령의 우가야인들이 BC 2000년경 처음으로 일본 나라(奈良)에서 다스릴 때는 약 73대(2100년) 동안이었는데 그때는 “라마터(태양의 밝은 터)”였으며, 이 말이 변하여 요즈음은 “야마도(大和)”로 변하였고, 본래의 뜻을 모르는 일본 사람들은 ‘야마도 정신!’ 하면 즉 경북 고령의 ‘우가야 정신!’이 되는 것임을 모르는 채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금 일본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거짓말 역사를 가리켜, 일본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민족처럼 역사를 만들어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

일본 역사책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나오는 하느님이란 말은 ‘가야(라), 신라, 백제, 고구려’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일본 신화는 모두가 한국 쪽에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인데, 첫째가 가야(라)에서 건너간 우가야 이고(BC 2000년경), 둘째가 포항에서 해류타고 시마네현 이즈모(出雲)로 건너간 연오랑(연일만 오씨 = 스사노오노 미코도 AD 157년)이며, 셋째가 김해 김수로왕의 아들 7형제와 둘째 딸(비미호 = 히미꼬)이 건너간 규슈 가고시마의 “韓國岳 = 가라구니 다께” 쪽으로 건너가서 나라를 세우는 이야기들이다.

이때가 처음으로 수로왕의 아들딸들이 일본 왜(규슈 가고시마)로 건너갔으니 AD 103년이며, 규슈(일본 왜) 쪽에서 나라를 세우고 첫 번째 왕으로 제일 큰누나(제사장 = 무당)를 왕으로 추대하여 모셨다고 AD 183년 ‘위지왜인전’에 기록하였다.
 
즉 어떤 쪽이든지 가야(라)와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서기 670년쯤부터 <일본 : 日本>이라는 한자로 국호(國號)를 나타내게 됐는데, 그 당시는 <닛뽕>이라고 읽은 것이 아니고 <라마터 → 야마터 → 야마도 : 만옆집의 발음기호 참고>라고 읽었다.

<야마터>는 가야(伽倻)의 본가(本家)인 우가야(上伽倻)의 이름인데, 현재의 경북 고령지방에 있던 나라로서 “위지(魏志)”에는 야마국(邪馬國)이라고 적혀 있다.

즉 일본열도를 개척하여 나라를 처음 세운 사람들은 우가야를 종주국으로 하는 가야(라)족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천황이 제주(祭主)가 되어 직접 모시는 조상제(祖上祭)를 가라가미마쯔리(韓神祭 = 加羅神祭)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봄에 그 제사를 지내는 2월 11일은 일본의 건국기념일(建國記念日)로 제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대일본지명사서(大日本地名辭書)의 국호론(國號論)에도 “일본(日本 = 야마터)이라는 국호는 원래 삼한(마한, 진한, 변한<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이 쓰던 말인데 그 이름이 너무 아름다워 만년에 변치 않을 국호로 삼는다.”라고 명기(明記)되어 있다.

일본말의 바탕은 경상도 말과 사투리가 약 80%이고 나머지 20%가 북한과 충청도와 전라도 그리고 제주도 말이다.

일본은 가야족이 세운 나라이므로 경상도 사투리가 일본말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은 말을 하면서 <마>소리를 많이 사용하는데 다음은 알기 쉬운 예로
 


우리말 표준

경상도 사투리

일본말

그래도






그래도마

~캐도(그래도)

~캐도마(그래도마)

게레도

게레도모

~게도

~게도모

 
* 경상도 사람의 말 습성(習性), 예(例): (마-, 니 이재 왔노-. 마, 마, 이리 앉으라카이)
* 위와 같은 말을, 일본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 안따 이마 기다노-, 마, 마, 고고니 오가께나사이)
 
일본의 가장 오래된 사서인 고사기(서기 712년에 완성)에는 초대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자기를 꼬임수로 죽이려던 적(敵)을 자기 자신의 꾀에 빠져 죽게 하고나서 그 기쁨을 노래하며 비웃은 가사가 실려 있는데,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로 적혀있음을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우리 표준말

진무천황의 가사(歌詞. 단어번호 1057)

고소하다

고시야


 
* 말뜻 : 원래는 <맛좋다. 시원하다>라는 뜻인데, 상대방이 잘못된 것을 보며 냉소(冷笑)하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 원문 : 疊疊(引音)志夜胡志夜 此者伊能碁布曾(此五字以音) (첩첩지야호지야 차자이능기포증)

* 종래 일본학자들의 번역 : 아아 시야 고시야 : 이는 비웃음의 뜻이다.(틀린 뜻)
* 우리 옛 고어를 이용한 번역 : 시원하다 매우 시원하다.(고소하다. 꼬시다 = 경상도 말)

  (胡志夜 = 고시야. 꼬시다)
 
이 낱말은 경상도 사투리로 <꼬시라>라고 하는 것인데, <라>줄 소리가 <아>줄 소리로 바뀌기 쉬운 습성 때문에 <꼬시야>가 되었으며(예 : 가라 → 가야. 그런 거라 → 그런 거야) 된소리(硬音) <꼬>를 표기할 글씨가 없는 일본말로는 <고시야>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사기>에 있는 가사원문에는 <伊能碁布曾 : 이능기포증>이라는 문구도 함께 있는데, 원편찬자는 그 다섯 한자를 음독(音讀)하라고 지시해 놓았는데 우리말로는 <이는 기쁘죠>를 나타낸 것이며, 그 노래 가사 원문에도 <此者嘲笑者也: 이는 조소하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쓰여 있어 그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말이 일본말의 뿌리라는 것을 언어학자가 아닌 사람도 쉽게 알 수 있도록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양국(兩國)의 말에 쓰여 지고 있는 의성어(擬聲語)와 의태어(擬態語)의 비교이다.

받침이 없는 일본말에서는 받침소리를 탈락시키거나, 모음을 덧붙여서 표기하며, 중모음(重母音)과 음모음(陰母音)인 <의>. <어>. <애> 는 단순 모음으로 바꿔 쓰여진다.

우리만 “슬슬” → 스루스루, “졸졸” → 조로조로, “쭐쭐” → 쯔루쯔루, “쿨쿨” → 구-구-, “벌벌” → 부루부루, “쫄쫄” → 쪼로쪼로, “쑥쑥” → 스꾸스꾸, “터벅터벅” → 도보도보, “쪼끔쪼끔” → 쪼꼬쪼꼬.
 
이와 같이 간단한 예만 들어봐도 우리가 까맣게 모르고 지내온 잊혀진 역사를 되찾게 해 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동경에서 서남쪽으로 약 70km 가면 “오이소(사이타마현) 역”이 있다.

‘오이소 오이소(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이소(빨리 오세요)’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역 이름이 되어 있다.

고구려의 보장왕의 막내아들 ‘약광(若光)왕자’가 1799명을 이끌고 동경 쪽으로 입항하여 ‘나를 따르라 잘 먹고 잘 살도록 해주겠다!’ 그래서 그를 따라 작은 고을(고려군 : 高麗郡. 716년)을 만들었고, 이렇게 하여 그 마을 전체가 고려 고등학교(야구 명문), 고려 아파트, 고려 절(고마 진자) 등이 지금도 건재하며, 고려(고구려의 준말) 신사의 주지스님은 약광 왕자의 60세 후손됨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오사카는 백제(8명의 왕과 4명의 후를 책봉하는 큰 나라)의 ‘불면후(佛面侯)’가 다스리던 장소답게 백제절, 백제 다리, 백제 초등학교, 백제 버스정류장..... 즉 백제라는 말은 부여로부터 나온 나라이니 “큰 나라”라는 뜻의 “구다라”라고 한다.

백제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부인 ‘소서노’의 두 아들 온조와 비류가 백제를 세우는데 중국 발해만 대능하 지역에서 최초 건국되었다가 ‘산동성’지역에서 자리 잡고 ‘한반도와 일본지역’을 왕래하며 대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백제왕 중에서도 ‘비류계’는 AD 348년경 한반도로 들어오고, 온조계는 대륙 백제와 일본(비류계)으로 왕복하며 힘을 합쳐 고구려에 대항하였으나(AD 391년), 광개토 대왕에게 백제의 최대 수군기지인 ‘관미성(현 중국의 발해 쪽 지역)’이 탈취 당하게 되었다.
 
이 내용을 ‘광개토 대왕의 비문’에는 이렇게 ’신묘년(辛卯年)‘ 기사로 적혀 있다.

.........而倭以辛卯年 來到海 破百殘 (隨)(波)(新)羅 以爲臣民...........

AD 391년 요서백제 전투에서 광개토대왕에게 백제 최대의 수군기지인 관미성(삼국사기 392)이 탈취 당하게 되다.

AD 396년 고구려 광개토 대왕에게 ‘웅진성’ 마저 기습당하여 일본에서 온 백제동맹군(응신천왕으로 봄)은 오사카 근기지방으로 달아나게 되고, 반면에 백제 아신왕은 호태왕에게 ‘영위노객(永爲奴客)이 되겠다는 서약을 한 후 항복하여 ’백잔국‘으로 살아남게 된다.
 
막강한 고구려의 후원을 받게 된 신라는 사기가 충전하고 심리적 여유가 생겨 왜에 볼모로 가있던 왕자를 찾아오자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부도지의 저자 박제상’이 자기의 목숨을 회생하고 ‘미사헌’을 구출해 낸 것은 서기 418년의 일이다.

왕자를 되찾는데 성공한 신라조정은 그동안 겪었던 수모의 대가로 신라 수군이 세도내해(瀨戶內海)에 깊숙이 침입해 지금의 오사카(大阪) 연안에 나타난 것은 ‘오진천황22년’이었다.

오사카로부터 약 40km 거리에 있는 ‘아카시포’에서 항복한 천황은 ‘기비국’의 6개 지역을 ‘신라’에 주었다고 <일본서기>에 적혀 있고, ‘오진천황’은 항복을 다짐하기 위해 “백마의 목을 쳐서 묻었는데 그 이름을 <백마총>이라고 한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근세 한국 사람에게 알린 것은 ‘임진왜란’ 이후 ‘제2회 조선 통신사 오윤경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갔던 이경직’이다.

그는 서기 1676년 막부(幕府)관리의 소개로 일본연대기(日本年代記) 내의 기록을 보고 현장 답사 확인까지 했었다고 한다.

일본 국학의 시조격인 ‘마스시다 겐린’이 저술한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을 읽고 ‘고고학자 한치윤’은 그의 저서 ‘해동역사(海東繹史)의 통일본시말(通日本始末)’ 속에 그 내용을 명기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역사학자 ‘안정복의 <동사강목>’에도 기록되어 있고, 문헌비고(文獻備考)와 여지고(與地考) 등의 편집자인 ‘신경준의 선암산고(旋庵散考)’에도 그 내용이 실려 있다.
 
신라 식민지 지역 이름으로는 지금도 남아있는 1. 세라고을(世羅郡) : 히로시마현 2. 조선 산성 : 오까야마현 소샤시(가야고을<加夜郡> = 가야고호리)의 표기사실을 화명초(倭名抄)에서 찾으면 간단하다. (일본지명사서 <日本地名辭書> 참조)

기비국(吉備國)의 이름 어원은 ‘님의 나라 = 君國 = 기미구니 = 기미국 = 기비국’이며 이때가 서기 420년 경이다.

<고사기> 오진기(應神紀)에 가야 왕자가 츠루가(敦賀)에 왔다고 하였고, <일본서기> 스이닌기(垂仁紀) 3년 조에 신라왕자 도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서기 647년에 신라 김춘추는 일본 정부를 방문하여 많은 토론을 하였는데 ‘일본서기’에 ‘미남이고 활달하며 말도 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의 표준말은 같았다. 그러나 사투리는 요즘처럼 많이 달랐다.
 
우리 고어 중에 <섬(島)을 시마(신라 말), 사마(백제 말)>라고 하였고, 대마도가 큰 섬 두 개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두시마”였는데, 660년 한반도 백제가 망하면서 서기 670년경부터 모음 세 개(ㅓ. ㅐ. ㅡ)가 빠지기 시작하여, 발음이 우리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고 일본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두시마라고 발음할 수가 없고 “쓰시마”로 발음하면서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하기를 “대마도(對馬島)”로 기록하고 있다.

10년 전(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백제 무령왕(25대 : 462~523)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비석의 내용 중 “사마왕”이란 이름이 있었다.

무령왕의 다른 이름은 융(隆) 또는 여융(餘隆)이라고도 하였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무령왕의 어머니가 무령왕을 임신한 몸으로 규슈의 속국으로 가다가 후꾸오까 앞 ‘가기라시마<각라도>’에서 무령왕을 낳았다고 하여 ‘섬돌이<사마>’라는 아명으로 정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당시는 백제가 일본에서 천황가를 좌지우지 하고 있을 때였다.
 
538년 백제의 성명왕(聖明王)이 오경박사(五經博士)를 파견하여 불상과 불경을 일본에 보낸 이후 불교가 크게 보급됨에 따라 한문으로 된 불경을 손쉽게 읽기 위해 승려들이 한자의 반쪽만(변)으로 읽을 수 있는 “가다가나(片假名)”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 쪽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로 받침이 많이 생기고 탁음, 찢어지는 음 등이 보충되어 서로 더욱더 발음의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일본 학자들은 “나라시대(奈良時代 : 서기 720~784년)까지 일본 말에는 모음이 여덟 개였는데 다섯으로 줄었다.”고 말은 하고 있으나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어는 한번 정착하면 쉽게 바꾸어지지 않기 때문에, 모음이 셋이 빠진 채로 보충을 시키지 못하여 오늘날까지 오게 되다보니, 우리는 <냄비>를 말하면 일본사람은 “애”모음 대신‘ㅏ’를 넣어 <나베>라고 하고, 연기가 굴뚝에서 <떠 나부낀다>를 “어”모음이 안되니 “ㅏ”로 바꾸어 <다나부끼>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애” 발음을 하는 곳이 있으니, 유일하게 천황가에서 일년에 두 번씩 천황이 직접 참석하는 행사의 축문을 읽을 때는 달라진다.

예 : ........“.아지매 오게”라고 읽으면서 “아지매(ㅏ+ㅣ = ㅐ)”는 신라에서 온 말인데 “천. 지. 인”을 말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천황의 의복 어깨에 <삼족오> 문장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 일본 천황의 성씨는 “김”씨인데 첫 번째는 덴치천황이 덴무천황을 야습할 때 암호가 “김”이었으며, 두 번째는 한문으로 “군(君)”을 쓰고 읽기는 <김이 가네>라고 읽으며, 사전에는 “장차 천황이 될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세 번째는 일본의 국가(國歌)가 ‘기미가요(천황의 나라 = 김씨의 나라라는 뜻)’이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인데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일본 군부의 무자비한 정책 실수와 역사 왜곡, 날조 등으로 불신이 팽배해졌다.

옛날 신라의 4대왕인 석탈해가 태어난 곳은 ‘시마네현 이즈모’인데 여기를 ‘완하국’ ‘정명국’ ‘화하국’이라고 하였으며, ‘이즈모(出雲)’의 본래 뜻은 ‘이두뫼’라는 말인데 중국 송나라 때의 ‘태평어람’에는 ‘투마(投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즈모’출신으로는 ‘일본 스모의 시조’인 <노미노 스꾸네>가 노미마을(野見鄕)의 토기생산 기술자이며 석씨였고, 또 지금은 토기 생산에 종사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출신지인 ‘스가(썩 일찍 도착한 사람 = 석씨) 벌(原)을 성씨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라고 조정에 청원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학문의 신으로 받들여 지고 있는 <스가하라 미치자네(管原道眞. 이하 “스가하라” = 管原 = 淸地原(청지원) = 스가의 벌>의 조상이다.

‘스가’를 성씨로 삼았던 후손들은 오늘날 일본 각지에 살고 있는데, 현재 그들의 성씨를 ‘세끼 = 關(관)’, ‘席(석)’, ‘積(적)’, ‘堰(언)’, ‘勢木(세목)’, ‘石(석)’ 등 여러 한자로 표기하고 있다.

한반도의 석씨는 한국의 총 274가지 성씨 가운데 겨우 110위를 차지하는 희귀한 성이지만, 일본에서는 총 20만 가지의 성씨 가운데 100위 안에 드는 큰 성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석탈해(昔脫解)는 본시 왜의 동북천리에 있는 ‘다바나국(多婆那國) 사람이며, 그곳은 지금의 시마네현 이즈모(出雲)를 말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열도 밖에 있는 사람들과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천손(天孫)이다.”라는 비과학적인 주장을 해왔지만, 2003년 6월 23일자 일본 교-도-통신(共同通信)의 기사내용을 보면, 동경대학 의학부 인류 유전학 교실 <도꾸나가 가쓰오(德永勝士) 교수>는 일본 본토인과 가장 가까운 집단이 한국인과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돗도리대학(鳥取大學)의 <이노우에다까오(井上貴央) 교수>도 DNA 분석결과가 동경대학과 같았다.

약 1만년 전부터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민족이 일본 사람들의 조상이란 것은 천황이 받들어 제사지내는 가라가미(韓神)로 입증되며, 유전학적 연구로도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황국주의 사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완고한 일본 학자들이 많다.

그들은 한․일 고대사는 물론, 현대사마저 날조하고 왜곡하기를 떡 먹듯이 하며, 일본말의 뿌리가 우리말이라는 사실조차 부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저들의 국어사전에 “일본말의 뿌리는 한국말이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편찬돼 있기 때문에 애꿎은 일본 아이들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 <너>는 상대(相對)를 부르는 이인칭(二人稱)인데, 일본사전에는 <나>로 되어 있다. 물론 모음 <ㅓ>를 표기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모음 <ㅏ>로 대치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사전에 <나>는 일인칭이라고 적혀 있는데 문제가 있다.

인간사회의 질서는 자기 스스로와 상대를 분간하는데서 비롯되는데, 이 세상 어느 곳에 일인칭과 이인칭이 똑같다는 민족이 있을까?

참으로 어이없는 오류인데 일본 학자들은 그런 모순된 표기가 사전(辭典)에 실려 있는 이유에 대하여 한마디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즉 우리민족으로부터 말과 글 그리고 모든 문화를,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물려받은(싱가폴 초대수상 리콴류의 자서전 참고) 것을 숨기려 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상기에 기술한 모든 내용은 고 박병식 선생에게서 공부한 내용과 저서를 참고하였다.)
hanminjock1944@hanmail.net

*필자/강동민. 한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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