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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떨어진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역사문화 콘텐츠 마고

김중평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3/08/21 [13:18]

▲     © 거리검  세계의 원형종교는 삼신교-태백진교-덕교이다.
 
 
 
 
 
 
 
 
 
 
 
 
 
 
 
 

1. 종교의 도와 종교의 덕

우리가 도를 예기할 때는 노자를 예기하고, 덕을 얘기할 때는 공자를 예기한다. 노자는 깨달음을 감추고, 공자는 깨달음을 드러낸다. 노자가 감추고자 한 것이 도이고, 공자가 드러내고자 한 것이 덕이다. 그래서 노자는 “우리가 도를 말하면 이미 그것은 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가 도이다. 그래서 공자는 “도를 깨달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던 것이다. 이 말은 도를 깨닫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     © 거리검  대한제국 고종황제 때 지은 천제단과 황궁우. 겉에 보이는 것은 종교의 덕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나 안에 있는 것은 종교의 도를 실현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종교에도 노자가 생각하는 도와 공자가 생각하는 덕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기독교를 예로 들면, 예수에 의하여 드러난 기독교는 덕이라 할 수 있고, 예수가 드러낼 수 없었던 하나님이라는 부분은 도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가 드러나면 非道나 부도不道가 된다. 종교도 종교의 도가 드러나면 그때부터 이미 도가 아니므로 종교의 비도가 되거나 부도가 된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의도했던 도에 속하는 부분이 누군가에 의하여 노출되어 순수성을 훼손당함으로써 비도나 부도가 되는 것이다.

종교는 비도나 부도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율려가 주파수가 높아지면 질 수록 눈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율려가 보이는 율려가 되었을 때, 덕이라 할 수 있다. 종교에서 인간이 물고 늘어지는 것은 도가 아니라 덕이다.

2. 동이족이 창안한 인류종교의 세 가지 원형종교

종교에는 모든 종교의 시원종교가 되는 원형종교가 있다. 인류 문명사에서 최초로 생긴 종교가 원형종교이다. 원형종교가 인류 종교의 핵이 된다.

원형종교가 생긴 때가 언제 쯤 될까?

우리의 원형 종교가 생긴 때는 조디악 12궁도로 보면, 쌍여궁시대에 해당하는 시대로, 지금으로부터 14000년~12000년 전이다.

쌍여라는 말은 두 여자라는 말인데, 직녀성시대, 모계시대의 뜻을 가진 말이다. 이 시대는 천부삼인을 삼신으로 숭상했던 시대였다.

천부삼인은 율려律呂를 형상화 한 것이다. 율려를 형상화 한 것이 해와 달과 칠성이다.

율려는 종교의 모체이다. 율려는 팔풍八風이 되고, 팔풍에 신들이 깃들인다. 팔풍을 타고 신들이 이동한다. 팔풍에서 맨 먼저 나온 것이 삼신교였고, 다음에 나온 것이 태백진교였고,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덕교였다. 덕교에서 무교巫敎가 나왔다.


▲     © 거리검  율려(최초의 진동)는 팔여의 음(8방향으로 퍼져나가는 울림)이 되고, 팔여의 음은 8풍(8방향으로 퍼져나가는 바람)이 된다. 8풍 중에서 융풍(남풍)은 한인천제의 바람이 되고, 명서풍(동풍)은 한웅천왕의 바람이 되고, 청풍(동풍)은 단군왕검의 바람이 된다. 영등풍(서풍)은 마고의 바람이 된다.


 



마고와 황궁과 유인과 그의 후손들이 율려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약 4,801년 동안이고, 한인천제와 그의 후예들이 천부삼인으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3,301년 동안이며, 한웅천왕과 그의 후예들이 태백진교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1,565년 동안이다. 마지막으로 단군왕검과 그의 후예들이 덕교로 세상을 다스리던 때가 2,094년 동안이다. 이들 기간을 다 합하면 11761년이나 된다. 여기에 서력 2,000년을 더하면 13,761년이 되므로, 삼신교의 창안자로 보 수 있는 마고의 생존연대를 대략 14,000년 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4000년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기록한 역사 기록에 나온 숫자가 아니고, 고대 천문학에서 나오는 숫자이다. 천문학자에 따르면, 지구가 북극성을 향하여 세차운동歲差運動을 하는데, 지금의 지구 회전축이 북극성인 천추성을 향하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14000~12000년 전에는 당시의 북극성인 직녀성을 항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구가 직녀성을 향하여 세차운동을 하다가 극이동極移動을 하여 지금의 북극성인 천추성을 향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때 지구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달이 잡아당기는 바닷물은 그대로 있다가 육지를 바닷물로 덮었고, 바닷물이 빠져나간 바다 밑에 있던 땅은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천문학자는 지구가 뒤집어지는 현상이라 하였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이 바다가 된 땅에서 살고 있었지만 바다가 덮치는 바람에 거의 모두 다 바다 속 깊이 가라앉고 말았다.

이 시대의 인간으로서 운이 좋게 살아남은 분이 마고다. 마고는 당시의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지구가 뒤집어질 때, 지구에 엄청난 재앙을 내린 별들이 있었다. 이들 별이 북두칠성과 해와 달이었다.

마고가 두려워한 것은 언젠가 또다시 지구가 뒤집어지고, 북두칠성과 해와 달이 또 다시 재앙을 내리게 될 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의 후예들에게 이점을 가르쳤다.

“언젠가는 직녀성이 다시 북극성이 되는 시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고 가르쳤던 것이다.

신라 때의 사람 박재상 선생이 쓴 『부도지』에, 직녀의 염원을 ‘해혹복본解惑復本’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해혹’은 “왜 우리가 그러한 우주적인 재앙을 당하야 하는가, 그 원인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고, ‘복본’은 “직녀성 시대의 마고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옛날처럼 마고성으로 다시 돌아가서 살아야 한다”는 의도가 반영이 된 것이 ‘해혹복본’이라는 말이다. 이 위대한 가르침을 준 마고를 숭상하는 신앙이 삼신신앙이다.

마고를 숭상하는 신앙을 삼신신앙이라고 하는 이유는 마고가 곧 삼신이기 때문이다. 마고는 해혹복본을 잊지 말라고 돌에 북두칠성과 해와 달을 새겨 후손들에게 전했다. 이것이 우리 정체성의 상징물인 ‘천부삼인天符三印’이다.

그의 가르침은 여러 종족들에게 집단무의식으로 자리 잡아 북두칠성을 숭상하는 칠성신앙이 생겨났고, 해를 숭배하는 태양신앙이 생겨났고, 달을 숭상하는 달신앙이 생겨났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요한묵시록」에서 지구가 뒤집어지는 때, 북두칠성이 내리는 재앙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불교는 『중아함경』 제7일경에서 지구가 뒤집어지는 때, 태양이 지구를 태우는 재앙에 대하여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후예들이 그를 직녀의 신명에 올렸다. 그래서 우리가 상고시대 천문을 알아야만 직녀가 14000~12000년 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상고시대 천문을 살피지 않으면 마고가 직녀성임을 알 수 없고, 그가 세상에 나타나는 년대가 14000~12000년 전임도 알 수 없다.

이 시대는 태평양에 있던 무 대륙이나 대서양에 있던 아틀란티스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고 전한다. 『잃어버린 무 대륙』을 쓴 제임스 처치워드는 그의 저서에서, 무 대륙에 대한 기록이 인도에서 찾아 낸 가장 오래 된 명판에서 발견이 된다고 말했다.

▲     © 거리검  마고와 멜키지덱. 마고는 신선의 형상이고, 멜키지덱은 포도주와 빵이라는 기독교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있다.


 

 





 
 
 
 
 
 
 
 
 
 
                             아틀란티스의 존재는 이미 프라톤에 의하여 밝혀졌다. 프라톤은 아틀란티스가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섬으로 대서양의 어느 곳에 있었고, 높은 문화를 지닌 유토피아였다고 설명했다.

마고가 살았다는 마고 본성이 지구에 이었다면, 지금은 사라진 뮤 대륙의 어디에 인지 있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구약성경의 창세기는 멜키지덱을 하나님이 인류의 시조로 창조했다는 아담(BC 4004출생, 6004년전)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으로 기록했다. 카발라주의자들이 아틀란티스 시대의 사람이라고 밝힌 신비에 싸인 사람이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서 6,000년 동안 아담이 태어나기를 기다렸고, 아담이 태어난 이후에도 1,996년 동안 아담의 후손인 노아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

무려 8,000년 동안 기다려 노아가 태어났는데, 그 후로도 노아의 12대 손인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를 더 기다려야 하였다. 아브라함이 세상에 나오자, 그를 제사장으로 세워, 유대교의 시조가 되게 한 사람이 멜키지덱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에는 이렇게 황당무계한 요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증사학의 눈으로 종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믿을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문화나 종교의 시각으로 종교를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대를 뛰어넘는 축시법縮時法이 있고, 공간을 초월하는 축공법縮空法도 있다. 그러니 옛날에 신선들이 단숨에 수 천리를 걸어가는 축지법縮地法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의 원형 종교인 율려로 세상을 다스린 율려시대를 반영한 율려종교시대가 있을 수 있고, 천부삼인으로 세상을 다스린 삼신종교시대가 있을 수 있고, 태백진교로 세상을 다스린 태백진교시대가 있을 수 있고, 덕교로 세상을 다스린 덕교시대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종교에 율려시대가 있었고, 삼신교시대가 있었고, 태백진교시대가 있었고, 덕교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 역사는 마고년대로 하면 마고기麻姑紀 14000년이고, 한인년대로 하면 한기桓紀 9202년이고, 한웅년대로 하면 배달기倍達紀 5901년이고, 단군년대로 하면 단기檀紀 4336년이고, 한국년대로 하면 대한기大韓紀 55년이다. 율려시대의 종교는 그 형체를 잡기 힘들므로 제외하기로 하더라도, 마고시대와 한인시대에는 삼신교가 있었고, 한웅시대에는 태백진교가 있었고, 단군시대에는 덕교가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고유한 종교를 갖지 못하고, 후세에 태어난 남의 종교를 들여다가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문제는 이 종교가 우리의 고유한 종교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종교의 정체성이 없는 것이다.

남의 종교를 들여와서 내 것처럼 쓰고 있으면서도,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것의 재료가 수입농수산물이고, 내가 입고 있는 의복이 몽땅 수입한 원료로 제조된 것이며, 우리가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들의 원료가 우리에게서 조달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현실의 우리와 같은 것이다. 진짜 내 것임을 말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비싸지 않는 생물체인 몸뚱이 뿐이다. 이 몸에 온갖 외제로 치장한 것이 우리 자신이다. 

삼신신앙은 우리의 원형 신앙이다. 우리의 원형 신앙은 그 근원이 우주에 있다. 이제부터 삼신신앙이 한웅천왕과 단군왕검시대에 어떻게 깊이를 더해 가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3. 한웅천왕이 선포한 태백진교

마고시대를 지나 한웅천왕의 시대에 와서 한웅천왕은 나라에 종교가 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이 종교가 태백진교이다. 태백이라는 말은 큰 산이라는 뜻이다. 진교는 나라에서 선포한 국가신앙이다.

太白眞敎源於天符 而合於地轉 又切於人事也 是以發政莫先於和白 治德莫善
태백진교원어천부 이합어지전 우절어인사야 시이발정막선어화백 치덕막선
於責禍 在世理化之道悉準於天符
어책화 재세이화지도실준어천부
태백진교는 천부에 근원을 두고, 지구가 자전하는 이치에 합치하도록 하고, 또 사람이 하는 일을 이에 맞도록 하였다. 여기에 있어서 정치를 함은 화백에 우선하는 것이 없고, 덕을 다스림에 있어 화를 꾸짖는 것 보다 착한 것이 없다. 세상에 있으면서 이치대로 해나가는 도는 모두 천부에 준하였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임승국 역)


▲     © 거리검  태백진교의 논리수조


 


 
 
 
 
 
 
 
 
 
 
 
 
 
 
 
 
 
태백진교는 근본을 천부에 둔다고 하였다. 천부는 마고가 후세에 전한 천부삼인을 말하는 것으로 북두칠성과 해와 달이다. 이는 마고가 후대에게 물려준 천부삼인이 한웅천왕 대에 와서 태백진교로 체계가 섰음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마고를 숭상하는 삼신신앙이 태백진교로 확대되고 심화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태백진교는 땅이 돌아가는 이치에 맞도록 한다고 하였다. 이는 지축이 세차운동에 순응하듯이 하늘과 땅의 섭리를 그르치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이다.

인사도 또한 천부와 지구의 세차운동에 맞게 한다고 했으니, 태백진교가 추구하는 종교적인 이념은 인사에 있어서도 천부로 표현되는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문을 해석하면서 태백진교의 내용이 천부天符와 지전地轉과 인사人事로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 민족사상의 원천인 ‘일석삼극의 원리’에서 나온 천지인天地人 사상을 세부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는가를 밝힌 것이다. 천지인 사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방법론이 본문에서는 발정發政과 치덕治德으로 설명이 되고 있다. 발정은 정치를 시작하는 것이요, 치덕은 덕으로 다스리는 것이다.

발정은 순수민주주의인 화백으로 한다. 화백으로 한다는 것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토론을 거쳐 100% 찬성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수결이란 있을 수 없다. 100% 찬성만이 필요하다. 결국 이견異見 조정의 수단으로서 끊임없는 토론을 요구하는 것이 화백의 화和이다. 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100% 찬성이다. 단 1%도 불찬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것이 백白이다. 만약 다수결로서 소수를 무시하려 한다면 이는 화백이 아니다. 전원 찬성을 도출하기 위하여 대화와 이견조정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정치제도가 화백이다.

치덕은 책화責禍로 한다. 치덕은 법률적인 책임을 묻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재해를 당했을 때, 그 책임을 개인에게 물어서 덕을 처벌로서 구현하겠다는 것인데, 재해에 대하여 무과실책임을 묻겠다는 점이 특징이다.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는 것이 자기행위 책임의 원리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자기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책임을 지게 되어 있다. 행위책임이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이 책임을 지는 것이지만, 자기가 행위 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은, 자기가 행위 한 만큼 책임을 지는 행위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현대의 형법사상의 시각으로 볼 때, 원시적인 형법사상이라고 할 것이다.

책임이란 어떤 사람의 행위에 대하여 비난을 가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가치판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전혀 사정이 다르다. 홍수가 나고, 한발이 드는 것이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나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다. 임금이 자연재해를 당하여, "짐의 부덕의 소치로서 …운운" 하는 것이 이런 경우이다.

책화를 하는 목적은 선善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선은 도덕을 의미한다. 임금이 자연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짐으로써 도덕이 실현된다고 보는 것이 태백진교의 도덕관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발정과 치덕으로 나라를 경영하고, 천지인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 태백진교이다. 이를 재세이화의 도라고 하였다. 재세이화의 도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천부에 맞추는 것이다. 태백진교가 추구하는 세계는 이렇게 우주의 섭리 속에 있다. 우리는 한웅천왕이 선포하고 시행한 태백진교에서 원형이정元亨利貞,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유교적인 가치관이 태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4. 덕교를 가르친 단군왕검

단군왕검시대에 와서, 단군왕검은 3이라는 숫자를 뛰어 넘어 4라는 숫자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자 주목한 것은 천부경에 나오는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다. 운삼사성환은 3이라는 수가 우주를 한 바퀴 돌고 나면 4라는 수를 생성하여 고리를 형성한다는 뜻이다. 이 이치가 태양이 운행하는 길인 황도黃道를 만들고, 달이 운행하는 길인 백도白道를 만든다. 황도와 백도는 삼태극인 삼의三儀가 운행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황도와 백도가 완성되면 거기에 4라는 수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춘하추동의 사계절이다. 이렇게 발전해 가는 우주의 이치를 원형이정이라고 한다.

원은 우주의 시작을 의미하고, 형은 우주의 운행을 의미하고, 이는 우주운행의 결실인 사계四季를 의미한다. 정은 우주가 생성하고 운행하는 원리 즉 이理를 말한다. 원형이정을 사덕四德이라고 한다. 덕교의 내용은 이 사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군왕검은 사덕을 가르치기 위하여 덕을 상징하는 떡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고 제를 지낸 후에 나누어 먹게 하였다. 우리가 정월 초하룻날 떡국을 끓여 먹는 이유도 떡을 잘게 썰어서 나누어 먹음으로써 덕을 고루 나누어 알게 하자는 의도였다.

德敎漸得偉廣 덕교점득위광
경자 93년(BC 2241) …덕교는 점점 위세를 얻고 널리 퍼져나갔다.(『단국세기』 단군왕검조) 

단군세기는 단군왕검이 덕교를 선포했음을 분명히 기록하였다. 덕교가 세상에 나온 때는 BC 2241년이다. 기독교가 세상에 나온 때를 AD 33 년경으로 보고, 불교가 세상에 나온 때를 BC 500 년경으로 본다면, 덕교는 기독교보다 2274년 전 불교보다 1741 년 전 세상에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원형종교의 위대함은 이런 데서 나타난다.

우리가 중국인의 저작으로 오해하고 있는 『주역』을 주의 깊게 살피면 단군왕검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주역』을 읽다 보면, 『주역』이 마고시대와 한웅천왕시대와 단군왕검시대의 종교와 문화와 전쟁과 제의를 기록한 기록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머리가 혼란스러워 진다. 공자의 사상이 담긴 『논어』도 역시 주의 깊게 읽어 보면, 단군왕검이 선포한 덕교를 공자 나름대로 페러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어지럽기는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상고시대의 저작물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역」에서 예를 하나 들어 덕교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中庸之爲德 其至矣乎 民鮮久矣
중용지위덕 기지의호 민선구의
용의 덕이 됨은 지극한 것이다. 조선의 백성이 지켜 온지 오래이다.
(『論語』 雍也)

사덕을 한마디로 줄려 말하면 중용이 된다. 삼극의 극점이 중용이기 때문에 삼극이 완성하여 나타난 황도와 백도와 사계의 중심을 잡아 주는 극점이 중용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중용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위 문장을 지금까지 "중용의 덕이 됨은 참으로 지극한 것이다. 중용을 능히 행하는 자가 적었다."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 해석이 제대로 된 해석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민선民鮮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다시 검토해 보자는 것이다. 

선鮮자는 조선朝鮮의 선자이다. 이 문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오로지 조선으로 쓰기 위하여 만들어진 문자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적다는 의미로 해석을 한다면 여기에는 정치적인 장난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 소설가 한민족원로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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