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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 포커스]“응답하라, 우리의 1990년대여…”

글/사진 넷포터 조영순 | 기사입력 2013/08/24 [22:28]

“응답하라, 우리의 1990년대여…”

2013년 08월 23일 (금) 18:08:53
  • ▲ 요즘 즐겨보는 책 '세계미술거장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
  • 요즘 제가 즐겨보는 책 한권입니다.
    제목은 '세계미술거장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
    아마도 살짝 얼굴에 미소가 번지신다면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지난 3월19일부터 7월14일까지 전시했던 '세계미술거장전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가 생각이 나서겠지요.
     
    ‘세계미술거장전-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전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개관 4년 만에 처음으로 진행을 한 국외대외전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보도자료에 의하면 118일간의 전시시간동안 무려 7만 336명의 관람객이 제주도립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고, 관람객수 만큼이나 총 수입(2억8087만3000원(입장료 2억6407만2000원·기타 1680만1000원)도 도민들 사이에서 회자되었지요.

    전시회가 끝나기 이틀 전, 살아생전 샤갈과 피카소의 그림을 언제 제주에서 직접 보겠냐며 평생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뜻 맞는 지인들 몇 명과 함께 관람하여 7만 336명의 관람객에 포함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세계미술 거장전’이라는 타이틀에 알맞게 마르크 샤갈과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폴 세잔, 피에트 몬드리안, 마르셀 뒤샹, 호안 미로, 장 뒤뷔페, 앤디 워홀 등 근·현대 미술사를 수놓았던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귀한 시간이었지요.

    물론 평소 미술과 거리가 멀었기에 아는 화가라곤 ‘샤갈’과 ‘피카소’밖에 없었지만 전시해설자(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살짝 근현대 미술사에 발만 담가보는 행복감도 느꼈습니다.

    그때 구입한 도록인데요. 저는 그냥 ‘책’이라 칭하겠습니다. 초록색의 작은 책은 폭염주의보의 연속이었던 여름을 이겨내기 위한 동반자가 기꺼이 되어 주었고, 저의 몇 권 되지 않는 소장도서의 대열에 당당히 서게 되며 급기야 한 달이나 훌쩍 지난 미술전이야기를 하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게 만듭니다.

    당시에 카메라를 들고 갔었으나 사진촬영이 허가되지 않았기에 집에 와서 책을 읽어보며 그때를 기억하곤 합니다.

    미술전의 단연 화제는 420억원에 이르는 피카소의 ‘누드와 앉아있는 남자’였지요. 전시해설사(도슨트)의 맛깔스런 해설이 작품에 더 눈이 가게 만듭니다.
  • ▲ 캔퍼스에 칼자국 3개. 그림의 가격은 10억^^
  • 개인적으로 저는 ‘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 1899-1968)’의 공간개념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얀색 캠퍼스에 칼자국 세 개.
    후에 이 그림의 가치는 10억.
    그야말로 칼자국 한 개에 3억3330만원….
    (이 시점에서 그림을 돈으로 환산하고 있는 제 무식함을 크게 나무라지 말아주시길 ㅜㅜ)
    사실 ‘루치오폰타나( Lucio Fontana)’의 그림의 가격이 10억이라는 점에 관심이 더 가지만 이내 곧 그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캔퍼스에 하나의 세상을 뚫고 나감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기존의 캔퍼스는 끝이 보이는 누군가가 재현해야 하는 도구였는데 그에게 캔퍼스는 끝이 아니라 그 이상의 세계가 있는 제4차원 열망하는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면 여러 가지 시도나 작업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지만 그 시절 1960년도 돌아가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어린아이가 그어놓은 선 세 개, 보통 어른들의 잣대로 생각하면 정말 ‘무의미하다’ 고 느낄 수 있지요. 그래서 ‘루치오폰타나( Lucio Fontana)’가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의미’를 생산하고 10억의 가치로 표현되는 대중성을 얻기까지 무려 30년이 걸렸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세계미술의 거장의 공통점은 남이 하지 않는 시도를 맨 처음 했던 도전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관람객을 위해 전시해설사(도슨트)는 “무엇이든 처음 했을 때는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좌절하지 말고 도전하다 보면 너희들은 왜 못하겠는가” 라고 설명하며 자신감을 주고 있었습니다.
    거장은 아무도 하지 않았던 것을 처음 시도 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주면서요.

    ‘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의 공간개념은 저를 ‘1990년 12월’ 23년전으로 시간이동을 시켜주고 그리고 제주시 구남동에 위치한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로 공간이동을 시켜주었습니다.
  • ▲ 제주시 구남동에 위치한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의 모습.
  • 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입구에서 오른쪽 벽으로 보면 대형벽화가 눈에 보일것입니다. 대형벽화를 처음 본 보통의 사람들은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고 생각조차 안하지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인 시절 1990년.
    2학년학생 442명이 돈을 걷어 재료를 사고, 도면을 그리고 찰흙으로 빚고 석고를 붓고 1년이란 시간을 공들여 만든 벽화입니다.
  • 당시 미술을 담당하셨던 김순관 선생님(현재 애월고등학교교장)께서 졸업 후 추억할만한 조형물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하셨고 그 취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2학년 재학생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직접 제작했습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 미술사에서 중용한 사조 대표작품을 선정하고 끝으로는 중앙여고의 미래의 밝은 모습을 표현하여 제작하자는 데 뜻을 모았지요. 샐비어인(학교를 상징하는 꽃이 ‘샐비어’, 중앙여고 학생들을 상징함)의 전통·긍지·꿈의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면서 상징적인 역할이 되기를 기대하고 만든 것입니다.
  • ▲ 아들에게 이 벽화를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 각 반마다 구획을 나눠 벽화작업을 했습니다.
  • 그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
    우리 반의 총무가 대형벽화 프로젝트의 담당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종이에 밑그림을 찰흙과 석고작업까지 진행 되었을 즈음이었지요.
    자율학습 시간에 밖에서 갑자기 비가 오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갑자기 밖으로 뛰어가는 것입니다. ‘석고 어떻게…’하면서 당황해 하며 나가길래 저희도 뒤따라갔지요. 자칫하다가 석고가 내리는 비에 녹아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을 뻔했는데 곱디고운 여고생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삽으로 도랑을 파서 내리는 빗물을 고이지 않고 도랑으로 빠지게 하고 급하게 비닐을 빌려와 석고마다 비닐을 덮고 석고벽화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했지요. 이런 저희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시던 분이 계셨습니다. 대형벽화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던 김순관 선생님, 선생님도 비가 오자마자 걱정이 돼서 밖으로 나오셨고 먼저 학생들이 석고벽화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그때 ‘이런 애들이라면 벽화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겠구나’ 하는 신뢰감 가득한 선생님의 미소, 요즘으로 표현하면 ‘아빠미소’를 지으셨지요. 저는 지금도 그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 ▲ 우리반 학생들이 담당했던 부분, 저는 아마도 오른쪽 여신의 하의 옷주름을 담당했습니다. 주름에서 빛이 나지 않나요? ㅎㅎ
  • 졸업 후 20년이 지난 지금,
    대형벽화 조형물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손을 잡고 찾아갔습니다.
  • ▲ 고대에서 현대까지 서양 미술사를 재현한 벽화
  •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함께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추억 더듬기를 하고 싶었으나 이내 관심이 없는 아들은 의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추억 더듬기에 동참해 준 이는 따로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제주중앙여고 고3학생들입니다. 20년 이상 차이가 나는 후배들에게 벽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깜짝 놀라며 이런 사연이 있는 벽화인 줄은 몰랐다고 합니다. 고3에 이르기까지 벽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없다고 합니다.

    후배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박한 현실이라는 지우개로 박박 지워졌던 20년 전의 저의 학창시절이 생각이나 모처럼 힐링과 치유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 ▲ 벽화 앞 벤치에 앉아있는 우리 아들.
  • ▲ 저의 추억 더듬기에 기꺼이 동참해준 너무나 이뻤던 중앙여고 고3 학생들^^

  • ‘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 당시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창의와 도전의식으로 거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형물에 동참했던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12회 졸업생들은 서로의 추억을 만들고 기념하기 위한 소박한 소망의 씨앗을 심었던 것이고 다만, 시간이 흘러 그 씨앗이 튼튼한 거목이 되어 응답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있었겠지요.

    저는 벽화조형물이 추억이 되는 동안 개구쟁이 아들 둘을 키우는 억센 엄마가 되어 있고 2013년 여름에 20년 전의 벽화에 응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면 대형벽화 조형물은 지난 20년동안 우리들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동화 같은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또 2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자리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언제라도 돌아가서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고향이 되어주기를 바라기도 하면서요.
  • ▲ 조형물 벽화 입구에 있는 시 한편 제목은 ‘거목으로 자라거라’
  • 그 시절 배움을 함께했던 제12회 졸업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나지막이 읊조려 보며 아들과 함께 한 추억 더듬기를 마칠까 합니다.

    “응답하라 우리의 1990년대여...”

    <글/사진 넷포터 조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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