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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작품 유채 누드 크로키 작품, 블루 네 여인 누드( 유화 72.7 cm × 60.6 cm ) 는 조범제 화백 작품 세계에서 주된 테마들인 여인의 누드, 정물, 풍경(산) 중에서 유채 크로키 기법으로 여인의 나체를 주관적 조형 개념으로 접근 다시 재해석하여, 블루 톤을 기본으로 절제된 색감과 형태의 단순화 그리고 동양적이면서 현대적인 크로키 특유의 속사 화법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조범제 화백의 지인 중에는 정치, 예술계 인물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최측근 지인이며 이례적으로 매니저를 맡고 있는 영화감독인 최야성 감독은 23년째 깨지지 않고 있는 전설적인 기록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19세 최연소 영화감독 데뷔 타이틀로 유명하다. 2012년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공천 심사위원으로 정치계까지 진출한 영화감독, 발명가, 힙합가수(MC야성), 시인, 작사가, 시나리오작가를 겸하고 있는 범상치 않은 인물. 그는 ‘개인적 친분과 예술적 열정 그리고 11인의 독립운동가 가문이라는 특수성에 힘을 싣지 않을 수 없었다’ 며 자신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매니저를 맡고 있는 소감을 밝혔다. 최야성 감독은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영화들로 평가받는 ‘로켓트는발사됐다’ (원래 표준어는 로케트는 발사됐다. 제작 당시 카피 영화들에 대한 거부감과 예술적 독립의 의미로 표준어를 거부함. 개봉 당시 영화 역사상 초유의 개봉관 무료 개봉으로 사회적 파문 일으킴) , ‘파파라치’ 등으로 주목 받았었고 ‘한국 컬트영화의 기수’ ‘영화계 이단아’ ‘영화계 풍운아’ ‘문화 게릴라’ 등의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청년정신으로 무장한 영화계의 영원한 괴짜 최야성 감독은 ‘먼저 저 최야성과 조화백은 예술이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데 이 우주에 오직 하나뿐인 영화감독 최야성은 그 누구도 아닌, 저 최야성 방식과 최야성 스타일로 최야성 답게 예술에 접근하는 것이며 서양화가 조범제 화백은 조화백 스스로 평생 갈고 닦은 본인의 예술 스타일로 작품에 임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예술 언 30년째인 저 최야성 본인의 예술 업력으로 미뤄볼 때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의 강렬한 예술혼이 되살아 난 듯한 독보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세계 예술계의 무게중심 또한 서서히 동양으로 옮겨 오고 있음을 감안할 때, 빈센트 반 고흐, 렘브란트, 폴 고갱, 피카소, 모네, 뭉크, 마티스, 폴 세잔, 샤갈 등 세계적 화가의 반열에 반드시 이름을 새길 큰 예술가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고 아낌없는 칭찬과 자신감을 내보였다. ‘세계적 반열의 간극은 빠르게 좁혀지고 있고 언젠가 현실이 된다’ 고 한 번 더 강조하며 조범제 화백과 소주 한 잔 기울일 땐 ‘어떤 면에선 정밀묘사보다는 단순한 표현이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 고 자주 말하였고 최야성 감독 본인도 공감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사랑해 5세 때부터 붓을 잡아 현재까지 무려 55년간 세계적 화가의 길을 가고 있는 조화백은 195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아버지 조시원(본명,조용원)선생과 독립운동가인 어머니 이순승 여사의 4남2녀중 2남으로 태어난 서양화가로 조선시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서양화하며, 서양화로 동양화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독보적인 작품 세계로, 마치 먹을 갈아 정성들여 동양화를 완성한 듯한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상에 명성을 높였다. '제11회 대한민국 환경문화대상’ 문화,예술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세계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나만의 독특한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서양화를 동양화처럼 이란 큰 틀 속에서 항상 노력해 왔고, 그것을 위해 하루 잠자는 몇 시간 외에는 덧칠의 향연 속으로 뼛속까지 나를 던졌고, 그것은 죽는 날까지 계속 이어질 것. 그리고 단 한번도 11인의 독립운동가 가문의 뜨거운 애국적 피를 잊어본 적이 없다. 같은 맥락에서 스스로의 예술적 독립운동 또한 영원 할 것이다 ’ 라고 작품에 임하는 의지를 밝혔고 그는 소문난 대로 “대한민국” 이라는 국호를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유명한 둘째 큰아버지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조용은)선생을 비롯하여 첫째 큰아버지 독립운동가 조용하, 셋째 큰아버지 독립운동가 조용주, 넷째 큰아버지 독립운동가 조용한, 고모 독립운동가 조용제, 누나 독립운동가 조순옥, 매형 독립운동가 안춘생(안중근 의사의 종질), 사촌형 독립운동가 조시제, 사촌형 독립운동가 조인제 로 무려 11명의 가족들이 가문의 흥망성쇠 보다는 오로지 애국의 열정으로 독립운동을 한 대한민국 최대 독립운동 가문의 하나로 추앙 받는다. 이 또한 민족적인 화풍을 추구하는 그의 작품세계와 무관하지 않고 세계적이며 장엄하고 민족적인 예술혼이 묻어난 강렬한 터치의 독특한 조범제 화백 작품들은 가까운 미래에 세계 예술계에 폭풍의 핵으로 자리매김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