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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로운 아름다움 늘 함께하는 특유작풍

조범제 화백 23번째 개인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일 것!”

문일석 발행인 | 기사입력 2014/04/04 [08:18]
예술가에겐 자기만의 독특한 예술 혼이 있다. 그 혼이 가치를 창조하고, 그 가치가 시대와 이념을 초월해서 아름다움을 발하게 한다. 조범제 화백은 4월 2일부터 8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길 36, 월빌딩 3층 올 갤러리에서 23번째 개인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 전시회에는 33점이 출품됐다. 한국 화단의 중견인 조범제 교수(전 단국대 교수. 전업 화가이므로 화백으로 호칭)는 삶-그림이 모두 특별한 데가 있는 화가이다. 그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왔고, 치열하게 작품을 해온 작가이기 때문이다. 
  
 
▲ 조범제 작품   ©브레이크뉴스
▲ 조범제   작품  ©브레이크뉴스
인연의 발길이 닿아 조 화백의 그림 그리는 화실을 방문한 적이 있고, 그 곳에서 더불어 밤을 보낸 적도 있다. 더러는 어울려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조 화백과의 대화는 언제 어느 때나 진지했고, 자신만의 진한 철학이 묻어났다. 동석한 이들이 그림이나 역사와 관련된 그의 강의(?)을 듣기 시작한 몇 분(分) 이후면 존경의 눈빛으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한때 그의 화실은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 있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부근이다. 몇 가구의 집들이 띄엄띄엄 있는 시골마을이다. 수도승이 스스로 무문관에 갇혀 사는 것을 택하듯, 그 역시 수도하듯, 그 곳에서 6년간이나 혼자 스스로 갇혀 살면서 오직 그림만을 그렸다. 서울 강남 청담동과 서초구 터미널 부근에 화실에서도 그림 작업이 이어졌다.
  
 
▲ 조범제  작품   ©브레이크뉴스
▲ 조범제 작품    ©브레이크뉴스
그의 예술적 삶은 한 마디로 '치열', 그 자체였다. 미술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 10여년 머물면서 그림공부를 했다. 그림공부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음식점 접시닦이, 사무실 청소, 잔디 깎이, 세탁소 다림질, 풀장 청소, 벽돌쌓기, 건축 아르바이트 등 안해 본 일이 없다. “미국 생활 내내 미술 공부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혁대가 땀으로 절어 있었습니다.” 귀국해서 결혼을 했으나 후손을 갖지 않았다. 예술적 삶에 올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처절하게 시간과 싸우고, 고독과 벗하면서, 삶의 시간들을 온통 작품을 위해 마모시켰다. 이 처럼 고된 그림수업 과정을 거친 조 화백은 처절한 고독을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창작에만 몰두, 환희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화가로 성장, 오늘에 이른다.
 
 
“나는 매일매일을 처절하게 시간과 싸운다. 하루 세 시간 이상 잠들지 않는다. 나에겐 시간을 아무렇게나 허비할 여유가 없다. 늘 깨어서 작품을 한다.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고, 덧칠하고, 계속해서 색을 입힌다.” 5세 때 누나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이후 56년간 화가로서 외길을 걸었다. 예술가의 육신적 나이를 셈한다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조 화백은 올해로 환갑에 이르러 이번 전시회는 '환갑 특별전'의 의미도 있다.
 
▲ 조범제  작품   ©브레이크뉴스
 
그는 화실 정면에 독립운동가였던 부친 조시원의 얼굴이 담겨진, 정부에서 제작한 이달의 인물 팸플릿을 항상 걸어둔다. 11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남다른 가문이다. 독립운동가이자 광복회 회장-독립운동사 편찬위원이었던 부친 조시원(조용원)과 '대한민국' 이라는 국호를 처음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유명한 둘째 큰아버지 조소앙(본명, 조용은), 첫째 큰아버지 조용하, 셋째 큰아버지 조용주, 넷째 큰아버지 조용한, 고모 조용제, 누나 조순옥, 매형 안춘생(안중근 의사의 종질), 사촌형 조시제, 사촌형 조인제 등 11명이 독립운동가 였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이었기에 어릴 적부터 가난이 그의 친구였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내달렸다. 국가적 유물이랄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이봉창 의사 의거장면, 백범김구기념관의 해주성 전투장면, 임시정부 초대의장 이동영 선생의 영정도 그가 그린 작품이다.
 
 
그는 매 전시회마다 주제를 달리했기 때문에 전시회에 내놓을 작품 만들기를 힘들어 했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전시회 때마다, 매번 화풍을 바꾸어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한 번도 동일한 화풍의 전시회를 가진 적이 없었다. 매 전시회 마다 화풍을 달리했다. 만 60세를 넘겼으니 내 화풍에서 공통분모를 발견, 나의 대표작으로 남기고 싶다.” 그의 작품을 바라다보면 섬세함과 더불어 환희로운 아름다움이 늘 공존하고 있다. 가는 시간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비록, 가난이 그를 벗하더라도 시간만은 정직하다고 믿는다. 조 화백은 시간과 투쟁하듯 싸우고 또 싸우며, 잠을 줄여가며, 작품에 전념해온 화가이다. 그의 작업실에는 온통 작품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아직도 세상으로 나가지 않은 작품들이 가득하다. 정직한 시간이 준 열매인 조 화백의 작품에서는 환희로운 아름다움이 늘 함께한다. 
 
 
▲ 조범제 작품    ©브레이크뉴스
주변에 기라성 같은 미술평론가들이 많이 있겠지만 굳이 필자에게 전시회 때 쓸 글을 부탁한 것은 있는 그대로에 천착하려는 조 화백의 취향일 것, 그러므로 필자는 사실만을 기록한다.
“피카소가 이 세상에 다시금 살아온다 해도 조 화백의 처절히 사유하는 작풍(作風)을 결코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죽은 피카소가 어찌 현대를 살고 있는 조 화백과 비교될 수 있을까? 조 화백의 그림 인생은 스스로 무문관에 갇히듯 살아오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신만의 화풍을 완벽하게 구축했다. 전시회에 잠시 외출 나온 작품을 보고 직접 느껴보시라!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운일 겁니다!” moonilsuk@korea.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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