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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거장 피카소 바르셀로나 뮤지엄

'꽃보다 중년'의 유럽문화 르포 ⑩ 본지특파/스페인을 가다!

강욱 기자 | 기사입력 2014/05/19 [08:28]
본지특파/제주브레이크뉴스 강욱 부장= 스페인의 자랑. 피카소.

피카소는 평생 5만점이 넘는 작품을 창작해 냈다고 한다. 하루에 한 작품씩만 만들어도 137년이 걸리는 믿기 어려운 숫자이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판화나 도자기 같은 에디션이 있는 즉 여러 작품을 동시에 만들어 내어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누구도 그렇게 많은 다작과 그 작품 하나 하나가 미술사를 뒤 흔들었던 작가는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게 자명하다.

그리하여 서양미술사를 다시 쓴다면 피카소 전과 후로 나누어 써야한다는 얘기까지 하겠는가? 현대 수 많은 작가들로부터 추앙과 함께 질시도 받고 있는 피카소를 찾아서 바르셀로나 피카소뮤지엄을 방문해 보았다.
▲ 피카소뮤지엄 입구, 좁은 골목길 안쪽에 입구가 있어 밖에서는 쉽게 찾기가 어렵다.     © 강욱 기자
미로재단 방문을 마치고 우리 ‘꽃보다 중년’팀은 피카소뮤지엄으로 향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파리의 피카소뮤지엄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바르셀로나 피카소뮤지엄을 찾아 가는 길은 작은 설레임이 있었다.

작년 그러니까 2013년부터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에 있는 피카소생가박물관의 작품들을 들여와 지금까지도 여전히 한국 순회전을 진행하고 있는 우리 ‘꽃중년’팀으로서는 새로운 피카소 작품들을 보고 즐기고 비교하며 느낄 수 있는 전시장을 찾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말라가에 있는 피카소생가박물관과 또 다른 피카소뮤지엄을 통해서 익히 많은 작품들을 보고 또 그것을 전시를 하고 있었지만 대가의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만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뮤지엄은 피카소가 살아 생전에 작품을 기증하여 만든 미술관이다. 파리도 그렇고 바르셀로나도 그렇고 피카소에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그의 작품의 원천이 되었던 환경과 지역임이 분명하다. 바르셀로나의 ‘네마리의 고양이’ 카페에서는 언제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예술을 논했었고, 파리의 세탁선에서는 막스 자콥과 로랑생을 비롯한 수 많은 동시대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있었던 그의 작업의 토양이었기 때문이다.
▲ 피카소뮤지엄 사무실의 각종 피카소전 포스터     ©강욱 기자

이곳 바르셀로나 피카소뮤지엄은 2013년까지는 시립 즉 바르셀로나의 직접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으나 우리가 이곳을 방문한 올해부터 재단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관장 로메로(Bernardo Laniado Romero)씨는 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스페인의 경제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결과이겠지만 한편 미술관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독립성은 물론 자율성으로 인하여 보다 좋은 양질의 작품을 해외에 대여하거나 훌륭한 큐레이팅을 발판으로 한 참신한 전시 기획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 피카소뮤지엄의 작품들     © 강욱 기자
그는 앞으로 말라가의 피카소생가박물관처럼 훌륭한 큐레이션을 기반으로 한 좋은 전시가 한국에서도 열리기를 희망한다며, 다음 전시에 대한 좋은 결과를 위해 상호간에 지속적인 교류를 약속했다. 피카소가 직접 기증한 작품 900여 점을 포함하여 3800여 점의 소장품을 발판으로 상설전과 기획전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지난 1960년 7월 바르셀로나 시에 의해서 설립이 결정되어 1963년 개관을 하였다. 피카소가 1970년 작품을 기증하며 명실상부한 스페인 최고의 피카소뮤지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피카소 사후 그의 마지막을 지켰던 부인 자클린이 많은 작품을 추가로 기증하여 스페인의 자랑이자 최고의 거장인 피카소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미술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곳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피카소가 15살 때 그린 것으로 알려진 <과학과 자애>일 것이다. 단지 15살에 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섬세하고 철학이 깃 든 이 작품을 보는 것 만으로도 미술관 방문의 의미가 깊을 것이다.

그 밖에도 그의 초기 작품인 청색시대와 장밋빛시대의 작품은 물론 도자기,판화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바르셀로나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가야 할 미술관임이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피카소가 프랑스인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다. 그의 대부분의 삶의 중심이 파리였으며, 그의 삶의 절대적인 부분이 파리에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미술학도들조차 피카소가 스페인 사람임을 전시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무지를 탓하기보다는 프랑스의 대단한 예술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비록 프랑스 태생이 아니었지만 예술을 위해 기꺼이 프랑스에 모든 것을 향유하게 해 주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피카소도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직 근현대 세계 미술사에 단 한 명 만의 한국 예술가만이 존재하고 있는 사실이 안타깝고 참담할 뿐이다.

지금 같은 문화적 토양으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또 한 명의 걸출한 스타가 나타날 지 알 수 없다. 세계의 미술시장의 흐름과 기운이 미국에서 유럽과 아시아로 점점 기울어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가 바로 그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다. 피카소를 보며 다시 한번 안타까운 우리 한국의 문화적 토양의 절박함과 상심이 교차함을 가눌 수 없었다. 다시한번 세계미술사를 빛낼 위대한 예술가가 태어나길 기원하며 아쉬움 속에 피카소뮤지엄을 나와야만 했다.
원본 기사 보기:jejubre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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