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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인 1905년 11월 ‘을사보호조약’(제2차 한일협약/한일보호조약,/을사 5조약/을사 늑약)은 이름도 까다롭고 사연도 많다. 이 조약은 한 마디로 ‘일본 내(네) 마음대로 한다(하여라)’랄 수 있는 조약이다.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부가 설치되었다.
1907년의 ‘한일 신협약’과 ‘1910년 한일 합방조약’이 맺어지면서 나라가 망하였다. 그 뒤의 폭악 통치는 다 아는 이야기이므로 줄이되 단 한 가지만 소개한다.
1943년 11월 조선총독부는 각도 ‘경찰부장’에게『반 시국적 고적』을 철거하라는 비밀 지령을 내렸다. ‘항일․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문화재를 모두 없애라’는 야만적인 지시였다.
맨 먼저 ①고려 장군 이성계가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른 사실이 기록된 “황산대첩비”를 다이나마이트로 폭파시켜 산산 조각을 냈다. ②합천 해인사에 있던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사명대사의 “석장비” ③강원도 고성 건봉사에 있던 사명대사 “기적비”도 같은 운명이 되었다. ④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비” ⑤“좌수영대첩비”가 하루밤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1905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조선을 놓고 한 판 붙은 싸움이 ‘러․일 전쟁’이다.
북진하던 일본군 제2사단 17여단은「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서원」근처에서 비석 하나를 발견하였다. 아케다 마사스케 소장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임을 알아보고, 귀국하는 사단장 미요미 중장에게 바쳤다. 이는 1905년 11월 비석은 가지고 일본에 건너갔다.
이 비석이 <북관대첩비>이고 정식 이름은 “朝鮮國咸鏡道壬辰義兵大捷碑(조선국 함경도 임진의병 대첩비)”이란다. 이 비문은 부제학 최창대의 글이다.
이 비가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후미진 전각속에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된 채 외롭게 서있다. 비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의병들은 ‘정문부’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피를 나누어 마시며 의를 멩세 하였다.…수많은 적병을 자르고 무수한 병마와 무기를 노획했다.…숨어있던 백성이 모여드니 그 수가 7,000명에 달했다.…‘정문부’의 활약상을 보고 받은 왕은 눈물을 흘렸다.…관북에서 의병의 공적은 대단히 훌륭하였다.…이들의 공적을 후세에 남기니 영원 무궁토록 빛이 되리라』
이런 내용 가운데「경성(鏡城) 아전 ㄱ세필(ㄱ世必), 회령부(會寧府) 아전(吏) ㄱ경인(ㄱ敬仁)」이 나오는데 이들은 숙질간으로 ㅈ주 사람이란다.
아재비와 조카는 전주에서 북도로 귀양 온 자이다. 이곳에서 족당이 강성하고 재물이 많아 토호 노릇을 하였다. 평소 조정에 원한을 품고 사는 터인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자 임해군(臨海君)․순화군(順和君)이 피난을 오자 두 왕자와 종신을 결박하고 적에게 항복하였다. 왜장은 기뻐하며 왜의 벼슬 ‘판형(判刑:우리나라의 병사와 같음)’을 주어 북도를 통제케 하였다. 이 때 강문우(姜文佑)는 결사대 20여 기병으로 영강역(永康驛)까지 쫓아가 왜병 40여명을 죽이고 ‘ㄱ세필’의 벤 머리를 돌렸다. 사기가 떨쳤다. 도훈도(都訓導) 신세준(申世俊)은 역사를 시켜 ‘ㄱ경인’을 불러 때려 죽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의도적일까? ‘족보회상40년사 한국성씨 개관’에 보면 100대 안에 드는 ㄱ씨인데 ‘완벽 국사대사전(1,260여 페이지)’에 오직 ‘ㄱ경인’ 하나 밖에 나오지 않는다. <증보 문헌비고>에 의해 써 놓은 ‘주요 성씨 시조 일람표’에는 <ㄱ씨>가 아예 없다.
<ㅈ주 향교지(2004년)> 제5편 인물안(1.관찰사 및 부윤) 뒤에 보면 ‘賊完用(적완용)’이가 나온다. 광무 원년 정유(1897년) 도임이라 하였는데, 우리 성에 ‘賊(적)씨’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는 바로 /李完用(이완용)‘이다. 5적 매국노이기 때문이다.
요사이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은 한국의 초산 스님과, 일본의 가키무라 센신 스님이 주도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참여하였다. 초산스님은 2004년 12월 10일 금강산에서 북한 측과도 실무 협의를 벌였다.
결국 비는 서울을 거쳐 북한 제자리로 돌아갔다.
역사를 거울이라고 한다. 모름지기 뒷날 기록되는 역사에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지 않는 처신을 해야 한다. ‘을사 5적’은 이지용(내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하영(법부대신), 이완용(학부대신), 권중현(농상공부대신) 다섯 사람이다. (참고문헌:국사대사전, 연려실기술, 시사저널 800호) esc2691@naver.com
*필자/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