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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를 이용하여 살아간다. 세상에 태어난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발명과 도구조작이 가능한 것이 인간이다. 생각해보자. 그러니까 도자기는 수수만년 인간의 삶과 단 하루도 떨어져본 적이 없는 인류가 발명한 생활용품의 최고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만들어진 그릇이야말로 모든 발명품의 어머니 격이 아닌가. 그렇다. 사람의 눈과 손에는 예술이 있고 발명이 들어있다.
송운 최성신 선생의 남양 도자 연구소
최성신 씨는 도자 연구가이다. 그는 도예인생 40년이 훌쩍 넘은 도자(陶瓷) 명장으로서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팔야리에 연구소 겸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우선 작품의 양과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자고로 진솔한 예술가의 공간은 역동성을 자랑하기 마련이다. 최성신 도예가의 작업실도 그랬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디서부터 눈길을 줘야할지 모를 정도로 즐거운 고민에 빠져들게 하는 다채로운 작품으로 가득했다. 높은 천정과 시원스런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하루 동시에 100여명이 수업할 수 있는 작업대가 놓여있고 그 위에는 초벌 빚기를 끝냈거나 이제 막 빚다가 놓은 갖가지 토기들로 가득했다. 공간 한편에는 비닐로 말아 둔 찰흙더미와 유액이 담긴 들통이며 가마와 토련기와 유약실험용 교반기가 비치돼 있었다.
눈을 돌려 사방을 보면 완성된 작품들이 아름다운 쓸모가 되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입체형 물고기화분에 넝쿨식물이 심겨져 푸른 잎을 늘어뜨리고 있는가 하면, 도자로 된 물레방아에서는 너울거리는 수초와 함께 졸졸졸 물이 흐르고 있다. 다양한 용도의 그릇세트도 많았다. 고래나 거북이 같은 동물도 있고 장화모양을 한 화분 장식품도 수없이 많았다. 눈이 가는 대로 번갈아가면서 구경을 하고 있자니 어지간한 시간 갖고는 다 구경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 많은 보물들을 언제 다 구경하지?
송운 최성신, 당대에 사랑받는 생활도예가로서 우뚝 솟다
아무튼 알아줘야겠다. 현대판 도공들은 멋있고도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벼라 별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말이다. 명장명품의 세계에서는 즐겨 회자되는 말이 있다. 어떤 생산품이든 쓰임 받고 선택받아야 하는 점이다. 애청자를 확보하지 못하는 노래가 명곡일 수 없듯이 공예품들도 나름대로의 운명이 있다. 고려청자나 이조백자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희소성에서도 그렇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나고 우수한 예술품이자 명품이기에 그렇다.
그렇다. 도예가들의 작품도 당대에 선택받고 쓰임 받고 사랑받길 원한다. 그래야 전업 작가로서의 존재가치와 생활인으로서의 저력이 솟기 때문이다. 최성신 작가도 마찬가지다. 넓디넓은 그의 작업실에는 늘 상 수강생들로 북적이고 가마에서는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그만큼 작업량이 많고 도예 계에서의 지명도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이 이룬 성공으로서 지역사회에 공헌도 하고 전업 작가로서의 긍지를 지켜나간다. 그의 작업실에서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연구생들과의 소통으로도 늘 바쁘다.
작품 감상과 함께 하는 Good 인터뷰
‘남양도자기 연구소’ 최성신 원장과의 인터뷰를 한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외곽지역의 2차선 도로 변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아갔을 때 작가는 때마침 수강생 서너 명과 작업 중이었다. 최성신 작가는 기자를 보더니 활짝 핀 수국처럼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볼 것 많아서 참 좋다!” 숨은 그림을 찾듯이 어렵게 찾아 나선 길이라서 그런지 순간적으로 안도감이 들며 나오는 기자의 마음 속 첫마디였다.
1층 작업실을 눈대중으로 훑어보고 나자 왼편에 철재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는 전시공간이 보였다. 작품전시실이 눈에 띈 순간 직감적으로 “최성신 작가를 인터뷰하는 것은 참 괜찮은 일이로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징조였다. 작가의 작업현장에서 작품 감상과 함께 인터뷰를 하면 그 작가에 대한 이해도 빠르고 화제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최성신 작가의 작업실엔 그만의 특별한 코너가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럼 송운(松澐), ‘소나무로 큰 물결을 이룬다.’는 뜻을 가진 최성신 작가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본다.
45년 도예경력과 함께 경기도 으뜸이 도예가로 선정되다
도예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작가의 아버지는 도공이었다. 최성신은 곁에 있는 흙덩이를 끌어당겨서 손과 마음이 가는 대로 이것저것 형상을 만들어내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흙 작업이 놀이가 되고 놀이가 직업으로 발전한 셈이다. 지금의 최성신 작가가 미술을 전공한 딸을 조용히 지켜봐줬듯이 그의 아버지도 아들이 매일 같이 흙을 주무르며 노는 모습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신 거다.
최성신은 명지대학교 산업대학원 도자기기술학과를 마치면서 본격적인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면서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큰 전시회체 차례로 출품하면서 도자연구가들 사이에서 남다른 지명도를 획득해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참여한 전시회를 손꼽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도자협회 전’을 필두로 ‘한일 도예페스티발’ ‘우리공예 어울림 전’ ‘도자기 기술과 디자인의 만남 전’ ‘우리공예 즐김 전,’ ‘흙으로 빚은 추억 전’ 등이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제8회전국공예대전에서 금상, ‘남양주 관광상품 공모대전’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러한 활동에 힘입어 경기도에서 선정한 2003년도 ‘경기 으뜸이 도예가’로 뽑힌다. 또 전문 도예가 10여 명이 뜻을 모아 상설전시회장도 열었다.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도자문화’라는 주제로 연중무휴 진열판매 관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호기심 만발, 스트리텔링 기법으로 엮어진 토우들
토우들이 참 많네요. 어린이들이 좋아하겠어요? “아이들이 많이 찾아오거든요. 원아들이 체험학습을 하는 날이면 장날 분위기입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열띤 반응을 보이지요. 거기다 흙을 만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몰입하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동심으로 돌아가서 호흡하다보면 하루해가 금세 지나가버려요.”
단체로 체험학습을 하는 날이면 선생님의 제자들이 보조강사로 투입된다. 만들기뿐만 아니라 진시공간을 돌면서 감상시간도 갖는데 이 또한 신나하기는 마찬가지다. “야, 혹부리 영감이다!” 혹부리영감을 보면서 박장대소를 하는 걸 보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돈다. 흥부와 놀부시리즈를 보면서 박속을 들여다보며. “이게 뭐예요. 저게 뭐예요?”하는 질문을 쏟아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작가도 옛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서 다시 한 번 어린 시절을 되새기게 된다.
이런 토우들이 아이들 키 높이 만한 진열대 위에 시리즈별로 배치돼 있다. 우리나라의 전래동화 시리즈가 있고, 그 옆에는 서구유럽의 동화가 시리즈로 엮여 있다. ‘피노키오’와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토우로 재현돼 있었다. 이런 도자기수업을 보면서 도예가의 역량에 따라서 도예품들이 아이들 교육과 생활에 얼마나 지대하게 공헌할 수 있는지 바라보게 되었다.
특수학급 출강과 재활센터 수업과 지역사회 활동
도자기에 대한 지역사회 인들의 관심은 어떤가요? “요즘은 특수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도 많습니다. 작년 한해는 매주 수요일 오전 시간에 진접고등학생들과 함께 도자기를 통해서 예술치료수업을 했는데요, 처음에 아이들은 안정감도 없고 집중력도 형편없습니다. 하지만 손안에서 흙을 주무르는 순간부터 치유가 시작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흙이라는 자연물을 손으로 주무르면서 오감을 자극하며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되는 거지요.” 최성신 작가는 현재도 오남과 진건초등학교 또 광동중학교의 C. A 명예교사로 있으면서 아이들과의 만남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송운선생은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 하는 일을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다. 보건소 쪽 일도 열심이다. 그곳엔 정신보건가족협회라는 것이 있는데 정신지체자 혹은 직계가족 중에서 정신지체자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국가 차원의 케어와 관리를 담당하는 곳이다. 충령복음병원에서도 다년 간 흙으로 인연을 맺으며 예술치료에 임하고 있다. 그러면서 확신을 갖게 됐다. 세상의 그 어떤 치료보다도 흙이라는 매개체는 탁월한 치유매개체란 사실 말이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처음에는 눈을 마주치는 것도 서먹해한다. 그러나 손에 흙을 쥐게 된 순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소통을 하며 농담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이럴 때면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일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최성신 작가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보니 “귀하는 정신 장애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주어진 업무에 성심을 다하였기에 감사장을 수여합니다.”라고 남양주시 정신보건센터에서 수여한 감사장이 있었다. 또 “귀하는 교육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 본교 장애학생이 도예에 열과 성을 다하여 치료교육 및 독립적인 생활 형성에 크기 기여하였기에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교육기관으로부터 받은 감사장도 보였다. 최 작가의 사무실을 잠시 엿보며 제일 많이 접한 단어는 케어, 예술치료, 교육치료 같은 흔치 않은 말이었다.
‘창조적 작업은 놀이’와 같다고 한다. 즐기는 일을 계속하면 인생의 절반은 성공이라고 하는데 최성신 작가야 말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귀한 예술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은 성취의 기쁨과 창조적 노력이 따라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타고난 재능으로 업을 삼고 그것으로 인해 정신지체 아이들까지 돌보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성신 같은 도자명인이 우리 사회에 더욱 많아지길 빈다.
*박정례/기자, 르포작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