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7월 30일 “명량”이 처음으로 상영된 날 새벽에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상상해 보았다. 그를 다시 보면 볼수록 다시 새기면 새길수록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진심어린 경의를 넘어 ‘신(神)’처럼 떠받들게 된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나온지 1주일도 안되지만 온갖 기존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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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에 대한 열광은 우리 남한만이 아니다. 북한도 이순신 만은 인정한다. 아니 북한만이 아니라 세계 유수의 군 장교를 만들어 내는 사관학교 대부분에서 이순신만은 인정한다.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인 이순신에 대해 왜 이렇게 40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열광하게 될까?
탁월한 전략전술도 중요하지만 바로 국민들과 국가를 외적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위대한 사명의식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으로 인터넷상에서 상대적으로 역사와 가장 멀어져 있는 20~30대가 오히려 갓(God)순신이라는 새 합성단어를 만들어 냈을 정도다. 세월호로 지치고, 결국 국민을 위한 진정한 리더십을 바라는 우리 국민들의 작지 않은 열망이라고 봐도 거의 틀리지 않다.
그러나 한편 이 시기 이석기의 재판공판이 있었다. 검찰은 그에게 20년을 구형했다. 아직 결심공판이 마무리 되지도 않았는데, 종교지도자들이 이석기 선처를 위해 종단의 이름을 걸고 나섰다. 특히 염수정 추기경, 불교 조계종 자승총무원장, KNCC 김영주 목사,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 등 7명이 나섰다. 민주화시절 명동성당에 어린 학도들을 숨겨주고 눈감아줄 때에는 그래도 성(聖)스럽다고 할 수 있으나 이석기의 선처를 바란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표면에는 “누가 어떤 죄를 범했든 도움을 요청하면 그 죄를 묻지 않고 기도해주는 것이 종교인의 자세이고 도리라는 것으로 이유를 설명한다. 문제는 이석기는 20대 어린 영혼도 아니고, 이제는 자신의 모든 발언이나 행위를 책임져야 할 40대 후반의 나이다. 또 그의 죄질이 우리 국가와 민주주의질서를 파괴하기 위한 폭력적 행위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누구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한 악행의 수괴이기에 죄질이 더 무거운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명언인 “사즉필생”, “생즉필사” 라는 단어를 재해석해보자. 죽고자 하면 필히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라는 의미로서 이순신 장군은 12척밖에 남지 않은 배를 가지고 100여척 이상의 적군을 맞받아 결사항전을 개시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전장에서 승화했다.
그러나 이석기를 보라. 그는 북한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전쟁준비를 하고 있으니 필요할 때 바람처럼 모여 상부의 ‘파괴’지시를 따를 준비를 하라고 발언했고 실제로 그런 준비를 해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또 아직 우리의 ‘주적(敵)’이 되어 있는 북한의 대한민국을 향한 북한의 전쟁도발행위에 동조하려 했다. 우리가 입수한 북한의 2012년 9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인민군최고사령부 공동명령 제002호 “전시사업세칙을 실시함에 대하여”에 따르면 제6조 2항에서 “전시상태”는 “공화국남반부의 민주애국력량이 들고 일어나 우리에게 지원을 요구하거나 국내외에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할 수 있는 유리한 국면이 마련되었을 때 선포한다”고 문서화했다. 다시 말해 이석기와 그 일당은 바로 북한의 대남도발을 통한 국가 전복을 스스로 기획한 주도자로 입증되었다는 면에서 죄질로 보아 가장 큰 범죄자이다.
그런데 우리 일반 주민들도 아닌 종교계 지도자들이 이석기의 선처를 종교계의 이름으로 요구했다. 이 또한 우리의 현 민주화 수준이나 리더십의 부재를 보여주는 단면이자, 안타깝다 못해 극명한 리더십의 부활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한 반 국가적 ‘중죄’라는 사실이다. 그 요구가 바로 명량의 흥행기록의 결과가 아닐까?
종교지도자들뿐만이 아니다. 민주화사회에서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할 때 어느 국가이든 위기에 직면한다. 반면 국민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처럼 국민들의 요구에 순응하고 그들의 이익을 진심으로 ‘나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고 백성에게 충성(忠成)하는 지도자들이 나오는 경우, 그 어느 국가이든 위기가 기회였고, 그러한 지도자들은 영생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종교계지도자들은 바로 그런 사회적 의식을 만들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석기 같은 명백한 죄인의 선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지금 이 시각 세월호를 통해 정부와 정권을 불신하게 한 자신들의 지난 행위를 자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갈등치유를 위해 내가 이석기 선처를 위한 탄원서에 서명했는가를 스스로 깊이 생각해보길 촉구한다. 과연 이석기는 국민의 안전과 갈등치유를 위한 애국자인가, 아니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갈등을 유발시켜 북한 주적의 행위에 동조한 최대의 범법자인가? shm365@hanmail.net
*필자/채병률. 실향민중앙협의회장.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