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함초롬한 이 가을, 오곡백과가 이삭마다 가지마다 출렁이고 고추잠자리 황혼의 하늘가를 맴도는 평화로움을 그리워하는 이 가을에 산과 들에는 서서히 최후의 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나뭇잎은 최후를 맞이할 때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뭇잎의 마지막은 빛과 색으로 화려한 종말을 맞고 있다.
우리 인생도 아주 아름답고 멋지게 최후의 날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 마음에 텃밭을 가꿔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에 텃밭 하나를 갖고 살아가고 싶다. 거기에 사랑도 심고, 이해도 심고, 아니 애증(愛憎)으로 얼룩진 내 마음도 내려놓는 씨앗을 뿌리고 싶다.
그 텃밭에 열매가 영그는 날, 내 텃밭에 빛과 색깔이 화려한 야생화가 피고, 채소며 과일 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텃밭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내 텃밭은 얻는 것보다 나누어 주는 텃밭으로 가꿔갈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다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만을 추구하고, 온갖 욕심으로 찌든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삶은 곳곳에 숨어있는 우리가 몰랐던 아름다움으로 더욱 더 소중해지고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왜, 그것을 모르고 살았을까. 바닷가의 조개껍질이 우리가 간직하고 싶은 수공예작품이 되고, 메마른 날의 한줄기 빗줄기가 신이 창조한 우주를 신비를 엿볼 수 있는 날에, 누군가의 미소로 우리를 인류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준다.
평범한 것들이 지닌 신비로움에 감탄하기까지 왜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우리는 이제 볼 수 있다. 인생을 살아 본 후에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삶의 교향악을 느끼면서도 젊은 시절에 느꼈던 것과는 다른 의미의 감정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삶에 대한 감흥이 찾아오지만, 종종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해 본다. 좀 더 젊었을 때, 더 많은 것을 채우고 거둬들이는 것에 연연했지만, 조금은 비우는 것에 마음을 썼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무언가 잃었을 때 더 많은 것을 깨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무언가 부족할 때 비로소 삶의 본능이 우리 안에서 고개를 들기 때문이리라.
긴 시간동안 놓쳐왔던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삶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순간도 함부로 살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삶의 맛을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순간으로 다가오는 삶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들여 마셔야 한다.
불행이도, 바쁘게 몰아치는 현대사회에서 삶의 맛을 음미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 사치며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잠시 멈추기에는 너무나도 일상이 바쁘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정리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우리가 부딪치는 모든 상실과 한계 속에 보다 깊은 삶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이 있다.
호흡이 힘겨워질 때 비로소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남아 있는 나날이 줄어드는 것을 바라보면 하루하루가 모험의 연속인지 모른다. 이제 나는 지난날을 돌아본다. 추억 속에 오랜 세월을 뛰고, 모으고, 가꾸고 또 버렸던 그 시간 속에 내가 외면했던 것들을 주워 모은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사는 동안 내 삶의 많은 것을 잃었을지 모른다. 그 두려움 때문에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 짐이 될 수 있다. 청춘을 돌리 수는 없다. 아무리 외쳐도 청춘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잎이 떨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아름답게 더욱 아름답게 최후를 맞이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10월은 그렇게 가을을 불러오고 있다. 내 인생도 가을의 낙엽처럼 아름답게 떨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저 마지막 불타는 정열을 쏟아내듯 붉게 더 붉게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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