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을 야구에서 사라진 롯데에는 과거 흔들타법으로 유명했던 레전드 박정태 선수가 있다. 1969년생인 박정태는 롯데에서 데뷔해 롯데에서 은퇴한 한마디로 뼛속까지 롯데맨이다. 태어난 고향조차 부산이기 때문이어서인지 그는 롯데에만 어울리는 선수였다. 1991년도에 1차 지명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박정태는 데뷔하지마자 타점6위 2루타1위 최다안타4위 등 어마어마한 기록들을 쏟아냈다. 91년 92년 2년 연속 2루수골든글러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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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는 선수시절 지략적인 흔들타법으로 상태 투수를 혼란에 빠트리기라도 하듯 타격 타이밍을 맞추었다. 트레이드마크는 바로 타이밍. 수 싸움에서 늘 앞서는 두뇌플레이어였던 것이다.
탱크 박정태 .... 악바리 박정태 등 그를 칭하던 수식어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 팬들은 악바리 박정태를 기억한다. 당시 박정태 선수가 삼진을 당하면 덕 아웃 안 복도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다고 했다. 머리를 벽에 부딪치며 악으로 깡으로 근성을 보여줬던 선수 그가 바로 박정태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도 경기를 뛰며 투혼을 불사르던 그는 롯데의 또 다른 전설 최동원을 생각나게 했다. 그는 한 프로야구단의 선수가 아닌 부산의 영웅이자 부산의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부산 어린 선수들은 박정태의 근성을 배우고, 그 중 조카 추신수는 한국의 자랑 메이저리그의 대박 선수가 되었다.
박정태 선수가 보여준 경기의 명장면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두 경기가 있다. 그 중 한 경기는 바로 롯데의 2번째 우승이 이루어진 롯데와 빙그레의 한국시리즈 5차전이다. 포스트 시즌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투아웃에서 박정태 선수 앞으로 공이 굴러갔고 그 공을 잡은 박정태 선수가 2루 베이스를 밟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 바로 롯데의 우승이 그렇게 기억되었다.
1993년 1루에서 2루로 가다가 좌측 발목 골절부상을 당하고 야구선수로서 생명이 끝나는 큰 부상에서 부산야구의 레전드는 사라졌다, 그 뒤로 94년 12월까지 5차례의 발목수술을 받아 누구도 그의 재기를 믿는 사람이 없었을 때, 죽을힘을 다해 다시 야구를 하기 위해 악으로 깡으로 재활해 기적같이 야구장에서 다시 섰다.
복귀한 후 첫 타석에서 내야 안타, 그리고 50경기에서 337리의 타율을 기록하며 제 2의 야구인생을 펼쳤다, 그가 복귀한 뒤 마해영과 펠릭스 호세와 더불어 박정태는 역대 최강의 클린업
트리오를 형성하며 부산 팬들을 롯데야구 중독에 빠져들게 했다. 부산 갈매기가 힘차게 울렸던 것이다.
1999년 31경기 연속안타 신기록을 세우며 롯데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고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는 프로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경기다. 호세의 퇴장으로 어수선한 선수단 분위기를 특유의
악바리 근성과 카리스마로 재정비해서 극적인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박정태는 한국시리즈에
롯데를 진출시켰다.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 당시 박정태가 했던 이 말은 롯데팬들 사이에 명언으로 남아 선수들이 헤이 해지고 연패에 빠지면 그의 말을 담은 플랜카드가 외야 관중석에 지금도 걸린다.
롯데야구의 침체기에 김시진 감독이 떠났다. 그 후임으로 부산 사람들은 누구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을까? 이제 롯데도 그 전설의 레전드를 깨울 때가 되었다. 롯데만의 야구. 그런 정신을 생각나게 하는 선수가 이제 감독으로 화려한 그 시절을 꺼내게 할 것인가.
이 가을, 롯데 팬들의 부산갈매기를 목 놓아 부르게 했던 박정태가 롯데 가을야구의 전설을 깨우길 기대해본다. 2014133@daum.net
*필자/윤영용. 소설 근초고대왕을 쓴 작가.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