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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홍용식 대표 "생각도 사업도 이제는 광역시대"

전국 최초 농기계 판매업 광역화 성공

이학수 기자 | 기사입력 2006/01/26 [21:07]
 

●29년 동안 농기계 사업으로 자수성가

 

“저 홍용식은 자수성가했습니다. 29년간 고생 끝에 국제종합기계 대리점을 화순군에서 출발해 보성군까지 광역화에 성공했습니다. 이른바 화순군에서는국제종합기계 화순군 보성군 광역대리점, 보성군에서는 국제종합기계 보성군 화순군 광역대리점입니다. 양쪽 군민 자존심을 생각한 상호입니다. 작년도에 이룬 저의 겸손한 이 성공은 아마도 대한민국 최초일 것입니다.”


 

홍용식(47세․전남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743-1)대표는 부모를 비롯 누구에게도 물려받은 재산 없이 혼자 힘으로 재산을 모아, 자수성가한 지역 사업가로 정평이 드높다. 동시에 지역 텃세 때문에 생각보다는 힘들다는 농기계 대리점 사업을 광역화에 성공한 개척과 돌파의 능력가로도 호평받고 있다.

“재산만 모은 것은 아닙니다. 농기계 사업을 통하여 농민들의 마음까지 이 홍용식에게 모아버렸습니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이겠습니다만, 제 마음부터 농민들에게 활짝 열어주고 열과 성을 다해 농기계를 수리해준 덕분으로 사료됩니다.”

부뚜막 부지깽이도 바빠 날뛴다는 모내기철을 비롯해서 농민들을 제철에 씨넣고 제때에 수확하기 위해 땀을 흠뻑 흘린다. 그 땀흘리는 현장에서 연락이 오면 열일을 제쳐놓고 달려갔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비롯한 농부들은 도시로 나가 출세한 자식들보다 기름복 입은 채 숨가쁘게 달려와 ‘어디가 고장나 고생하십니까’하고 인사하는 홍용식을 보고 반가워만 했다.

 

“논두렁 밭고랑으로 달려가느라 부서진 오토바이가 여러 대입니다. 물론 지프차를 비롯한 차량들도 부지기수로 망가졌습니다.”

일이 생겼다 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도 바라보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해서 얻은 별명이 ‘무대뽀 트랙터’, 홍용식의 지난 29년은 후진 기어가 없는 ‘외길 돌진 엔진 인생’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전자제품도 그렇습니다만, 해마다 모델만 바뀌다 보니, 부품이 항상 문제가 됐습니다. 고장나는 것은 농가살림살이고 죽어나는 것은 농민들의 농심일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중고부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해볼텐데 말입니다. 제게 수리기술이 있으니까요.”  

홍용식은 농가살림을 위하고 농심보호를 위하여 중고 농기계 저장공간을 만들었다. 자신의 재산인 화순군 능주면 소재지 사유지 안에다 말이다.

 


●피눈물 더운땀 오기가, 3대 성장 엔진

직원들과 함께 한 홍용식 사장   

홍용식은 인간들이 평생 울고 산다는 ‘3물 가난’중 2물 가난을 운명적으로 타고 났다. 인물과 먹물 그리고 재물, 소위 3물 가난 중 풍산 홍씨 아버지와 달성 배씨 어머니 덕분에 인물가난은 면해 그나마 33퍼센트 ‘인간기본자산’은 타고난 셈이다.

호남 3대 명촌인 나주시 금안동의 풍산 홍씨는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배출할 정도로 전국구 명문 명족, 남평현감을 지낸 홍용식의 조상대부터 나주시 일원과 화순군 일대에서 유명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초등학교도 능주 외가 동네로 이사가서 겨우 졸업했습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이 재산모으는 일에는 재주가 없었답니다.”

이른바 인물가난 다음으로 서러운 먹물가난을 홍용식은 돈버느라 잊고 살다가 고장난 농기계 수리하듯이 자신의 ‘인생성장엔진’을 다시 수리하기 시작했다.

“조선대학교에서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어와 영어학원 등에 등록해서 외국어도 마스터할 예정입니다. 농기계 사업을 하면서 일본을 여러 차례 가서 견학할 수 있었는데, 일본어를 모르니까 참으로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농군의 아들로 땀방울의 동반자로 기름밥 눈물밥 생활로 평생을 살아온 홍용식 대표는, 대학 캠퍼스에서 국제화시대를 대비하고 외국어 학원에서 일어와 영어를 배울 각오를 단단히 한 것은 홍용식 사장의 사업관과도 무관치 않다.

“소위 고샅 양반이요 논두렁 걸으며 사업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직접 두발로 뛰고 직접 차 몰고 달려가야 살아남습니다. 예전 비포장 도로들이 바둑판처럼 사방팔방으로 확포장돼 있는데다가, 돈이 되네 하면 너나없이 뛰어드는 무한경쟁시대입니다. 친절하지 않고 애프터 서비스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리 농심이 넉넉한 분들조차도 두 번 찾지 않는단 말입니다.”

옛 농촌 지역은 혈연과 지연으로 뭉쳐있어, 지역내에서는 돈보다 피가 진하고 계약보다 신분이 중요해왔다. 그러나 농사도 이제 경쟁이요 농업도 생존산업으로 발전해가자 농업인들 마음도 시나브로 변모해갔다.

“지역텃세 때문에 엄청 고생했습니다. 특히 보성과 벌교 지방은 일본인들도 두려워한 ‘삼성삼포’중 한곳이지 않습니까.”

홍용식의 고향은 화순군, 인생과 사업 동시 동반자인 김초자(43세)여사의 고향은 보성군, 이런 인연 덕분에 광역화에 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집사람의 덕분입니다. 그 어려운 셋방 살림하면서도 단 한 마디 불평도 단 한 번 불만도 품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기종도 다종하고 부품도 다양한 농기계 판매업을 전담하랴 살림하랴…, 모든 것이 아내 덕분입니다. 으하하하…”



●성실성과 베푸는 봉사정신 돋보여

“13살 되던 해부터 화물 트럭 조수 생활, 자전거 수리점, 농기계 대리점 수선기사, 철공소 생활 등으로 ‘기계 고치는 명기술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8살 되던 해부터 본격적인 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남들은 직장 생활할 때 말입니다. 그런데 자동차 사고가 났습니다. 농기계 수리를 해주러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뺑소니 화물차량에게 치었는데, 결국 재판까지 가서 이겨냈습니다만, 그 당시 제가 받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집 한 칸 없어 셋방을 전전해야 했으니 말입니다.”

용수철처럼 압력 받으면 튀어나오는 저력처럼 단단하기로 유명한 홍용식 소년사장은 사내로 태어나 ‘내 사업 내 집’의 중요성을 스무 살 이전부터 터득했다.

“눈만 뜨면 농기계를 고쳐내고 틈만 나면 기계를 연구했습니다. 어디 놀러간다거나 돈쓰고 돌아다닐 염두조차 않고 말입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돈 좀 만지면, 고급 술과 밥 사먹고, 노름하고 투기하고 오락에 빠지고 하는 등과는 일백프로 무관한 홍용식 사장은 돈이 모이면 저축하고 농토 마련하고 이웃들에게 인정을 보냈다.

“땅보다 더 진실한 것은 없습디다. 아직도 농심보다 더 진실한 마음도 또한 없습디다. 농촌 어르신들은 아직도 따스한 안부 한 마디에도 감동해 합디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화순군과 보성군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 뵙고 점심식사라도 한번씩 대접해 올리고 싶습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트랙터처럼 사업으로 일관해 온 홍용식 사장의 돌파력과 성실성은 땅들도 알아줬다. 소위 기름밥 먹으면서 모은 돈으로 사놓은 투기성 없었던 땅들이 해가 갈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재산으로 불어났다.

“단 한번도 투기해 본적이 없습니다. 남들이 사업하다 망해 내놓은 땅, 사업하다 부도나기 직전의 사업체들을 인수했습니다. 도와주는 셈치고 말입니다.”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은 재산이요 도망가지 않은 돈’인 덕분에 지역에서 나름대로 부를 일궜다는 홍사장은 ‘돈은 써야 다시 들어오는 법’도 익혔다.

“지금 농촌은 60대 노인이 청년일 정도로 노령화되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국가에서 시행해주는 복지혜택이 아니라, 사람냄새요 인정 그리움일 것입니다.”



●‘화순군 이명박’이란 닉네임


농기계 수리를 잘하는 직원들과, 안살림을 잘해주는 살림 전문 아내 덕분에, 오래전부터 틈만 생기면 노인당 등을 찾는다는 홍용식 사장은 특유의 너털웃음을 함박웃어댔다.

“으하하하, 저 보고 말입니다. ‘화순군 이명박’이라고들 사람들이 그래요. 여보시오 내가 홍가인데 왜 이명박이요 하고 따졌더니, 이명박 서울시장처럼 뜯어고치는데 선수라면서 말입니다.”

고장난 농기계를 뜯어서 ‘통통통’ 엔진 소리를 듣고서야 피곤한 몸과 맘을 휴식할 수 있었던 인간 홍용식 아닌 ‘화순군 이명박’은, 사람인심 고장난 농촌실정에서 인심 그리운 노인분들 ‘인정엔진’에서 ‘허허허’웃음 소리가 나야 안심하는 정도타운 사업가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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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빡 2006/02/01 [22:10] 수정 | 삭제
  • 사장님은 여전히 건재하시군요
    예전에 모시던분인데 언젠가는 보여주실줄 알았습니다
    과거를 경헙삼아서 바른길을 힘주어 강조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그 특유에 함박웃음이 사뭇 그립군요
    힘내시고 사람을움직일수있는 인간미 당신의모습이 아닐까싶네요!
    가슴의품은 정열을 뜨겁게 불사르시길 간곡히 기원합니다
  • 돌돌이 2006/02/01 [21:52] 수정 | 삭제
  • 홍용식 사장님의 살아온 날들이 존경스럽습니다.
    힘들고 어려울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가는 홍사장님의 삶을 닮아가고 싶습니다.
    저도 힘들고 어렵지만, 홍사장님 글을 읽고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 사장님.
    밝은 미래로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세요.
    화이팅 !
  • 청담 2006/01/31 [14:29] 수정 | 삭제
  • 홍용식 사장님의 건투를 빕니다.
    저는 광주에서 한문학원을 경영하는 화순이 고향인 사람으로 홍사장님의 글을 읽고 감동해 댓글을 올립니다.
    너무 욕심내지 마시고, 차근차근 밝은 미래로 한발 한 걸음씩 보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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