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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무엇을 말하는가?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게 한 계기가 3.1정신이다.

이순복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2/26 [05:42]

3.1만세운동의 날에 즈음하여 85백만 사해동포형제에게 고하노라. 영원히 우리 가슴에 간직해야 할 3.1독립정신을 다시 붙들어 잡자고 말하노라.

 

이같이 부르짖고 보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나라 없는 설음이다. 설음으로 점철된 슬픈 역사다. 나라가 왜놈 나라이니 관리란 것도 왜놈의 것이었다. 우리는 내 땅에서 노예요 이방인이었다. 왜놈의 앞잡이들은 이미 조선인이기를 거부하고 앵무새처럼 왜놈 말을 지껄이며 왜놈행세를 해대며 동포형제를 노략질했다. 우리는 내 것을 내 것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식량을 수탈하고 누이를 정신대로 보냈다. 창씨개명을 시키고 말과 글을 빼앗고 귀신도 왜놈 귀신을 모시라고 지껄였다. 그 뿐이랴. 역사책을 송두리째 왜곡시켜 과거역사도 왜놈치하에 있었다고 임나일본부를 가르쳤다. 그때 그 영향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고 옴딱지처럼 달라붙어 우리를 도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3.1만세운동이라는 독립자존을 내세운 이 자랑된 날에 먼저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대한민국정부에서 한국인의 아들딸이 한국인을 위하여 일하는 모습을 드려다 보기로 한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오늘도 민족중흥의 최 일선에 서서 겨레와 함께 일하며 산다. 이 생명은 오직 나라를 위하여 있고 이 몸은 영원히 겨레를 위해 봉사한다. 충성과 성실은 삶의 보람이요, 공명과 정대는 우리의 길이다. 이에 우리는 국민 앞에 다하여야 할 숭고한 사명을 민족의 양심으로 다지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 지표를 밝힌다. 우리는 민족사적 정통성 앞에 온 신명을 바침으로써 통일 새 시대를 창조하는 역사의 주체가 된다. 우리는 겨레의 엄숙한 소명 앞에 솔선 헌신함으로써 조국의 번영을 이룩하는 민족의 선봉이 된다. 우리는 창조적 노력으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민주한국을 건설하는 국가의 역군이 된다. 우리는 불의를 물리치고 언제나 바른 길 만을 걸음으로써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국민의 귀감이 된다. 우리는 공익 우선의 정신으로 국리민복을 추구함으로써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겨레의 기수가 된다.’

 

좋은 단어와 문장을 연결하여 경전 10권보다 더 나은 정신을 불어넣어 만든 명문장이라 할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대한민국 공무원의 신조이다.

 

▲ 이순복     ©브레이크뉴스

이제 이런 숭고한 공무원정신이 살아나게 한 역사적인 날을 찾아가보자. 그 역사적인 날은 바로 191931일일 것이다. 한국인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잉태하게 한 날이요 동양에 민족자결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기막힌 날이다.

 

그런데 해마다 31일이 되면 잊고 있는 의문점이 몇 가지가 있다. 왜놈이 완전 무장시킨 식민통치세력에 맞서서 어떻게 200만 명이 넘는 비무장 비조직 대중이 목숨을 걸고 시위를 벌일 수 있었을까? 싸울 수 있었을까? 목숨마저 내던질 수 있었을까? 물과 기름처럼 상극이던 천도교와 기독교가 뜻을 모아 만세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을까? 어찌하여 국권 상실의 가장 큰 피해자인 조선유림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을까? 라는 끝없이 많은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엉성한 만세운동이라는 네 글자뿐인 그런 틀로도 200만 명이 참가한 만세운동은 창천을 뚫고 세계만방으로 퍼져나갔음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알고 보면 한국인에게는 불가사의한 사건이 우리의 근대사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3.1정신을 이어받은 4.19혁명, 6월항쟁, 광주사태와 같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꿔 놓은 정치적 사건들로 인구에 회자되는 맨손대중항쟁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힘을 쥔 권력이 이들 비무장 비조직 대중 때문에 변화와 탈바꿈을 하여 한국 현대사를 크게 변전시켜왔다. 이를 뒤집어 보면 한국인에게는 이러한 비폭력 주도세력이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나타나서 나라를 바른 길로 이끌어 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 번도 권력을 손에 넣어 보지 못한 이들 대중이 3.1운동 이래 지향한 궁극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3.1독립만세운동 중심세력이나 4.19혁명 덕분에 권력의 맛을 본 민주당정부나 6월 항쟁으로 대권에 접근할 수 있었던 제도권 정치세력은 목숨을 걸고 항쟁한 대중의 실제 생각과는 그 생각에 편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대중은 무정형집단이기 때문에 구성원 각자의 의식을 하나로 묶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와 같이 힘을 하나로 묶어내어 역사를 움직인 힘의 발로는 우리 민족역사의 역동성 내지는 민족정기가 모둠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면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3.1운동만 놓고 보면 대한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200만 대중은 제국주의의 지배를 절대적으로 거부했다. 일제는 고대사회에 고착되어 있던 조선민중에게 개화라는 선물을 들고 나와 온갖 감언이설로 홀렸으나 그것도 거부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진보라는 이름을 달고 감언이설을 입에 담는 엇나간 지식인들이 생겨나고 있으니 그들은 3.1독립만세운동정신에 입각하여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놈의 개화바람이란 선물을 거부하고 우리 손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독립만세를 불렀던 그들이 원하고 열망했던 나라의 정체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그 답은 의외로 쉽고 간단하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

 

우리가 세울 나라의 성격은 대한이고 민국이었다. 군주가 다스리는 제국이 아니고 국민이 다스리는 나라인 민국이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3.1독립만세운동이 필요했고 일어났던 것이며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에서 찾아 볼 없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다시피 19193.1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하여 꾸준히 이어온 독립운동은 드디어 24년 후인 19458.15일에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우리는 해방된 조국을 얻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독립정부를 갖는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호주·캐나다·인도 세 나라와 시리아가 한국 분단이 영속화 된다'는 이유로 승인에 반대했다. 김구선생이 주장한 것과 같은 주장을 했던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막아내지 못하면 영연방(英聯邦)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영국은 물론 프랑스와 중국도 대한민국을 승인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외교가의 대세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치고문 로버트 올리버에게 보낸 1948726일자 편지에서 대한민국 정부수립직후 확고부동한 우방은 없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승만의 결단으로 파리 UN 총회 대표단으로 장면, 장기영, 조병옥, 전규홍, 김우평, 김활란, 정일형, 모윤숙, 김진구 제씨를 보내 단독정부 승인을 얻어냈던 것이다. 이것이 3.1정신의 결정체라 말해도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66월 남한단독정부수립을 촉구한 정읍선언 때문에 남북 분단의 주범'으로 몰렸지만 냉전 붕괴 후 발굴된 새로운 사료는 이를 오설(誤說)이라 규정했다. 펙트는 1945920일 그러니까 9개월 전 소련의 수상 스탈린이 먼저 북한에 단독정부를 세울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 펙트다. 그 이유는 중국국공내전에서 중국 공산당팔로군이 국민당군에게 크게 밀리자 스탈린은 북한을 팔로군의 후방기지로 제공해서 분단을 고착화하겠다는 것이 펙트로 드러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그런 비열한 역사관을 버리고 3.1정신으로 무장하고 우리의 대한민국이 도도한 역사의 물결과 슬기로운 지도자들에 의하여 오늘이 있음을 감사드리자. 그래서 3$시대를 열어갈 위대한 대한민국 앞에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소원하는 바이다.

 

제발 종북은 그만하자. 제발 억지 주장도 그만하자. 제발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도 그만 하자. 주관적인 짧은 애국이 객관적인 긴 안목으로 볼 때 망국지언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이제 우리 다 같이 새아침을 맞이하여 동녘에 밝아오는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의 아들로 사는데 주저하지 말자. 우리 모두가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올바른 역사인식만 가진다면 우리는 영원무궁토록 발전할 수 있는 나라를 가졌다. 그런 확실한 장치가 3.1정신을 토대로 하여 마련되어 있으니 그 정신 붙잡고 함께 달려 나가자. 85백만 내 동포형제여!

' 국가였기 때문이다. 3.1운동 때뿐 아니라 이 땅의 민중은 국이미 '근대'와 싸워 왔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은 일본뿐 아니라 개화파도 배척했지만, 누가 이 운동이 전근대의 가치를 부여잡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

이순복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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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사화 문화 전반에 걸쳐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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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산 2015/03/01 [05:43] 수정 | 삭제
  • 잊고 모르는자 개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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