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 ‘국민모임’ 소속으로 4·29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에 출마한 정동영 전 의원(이하 경칭 생략)은 전주에서 초·중·고를 마치고 서울대를 졸업한 뒤 MBC에서 20년 가까이 기자와 앵커로 일하다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 간판으로 전주 덕진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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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 집계에 따르면 정동영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9만7858표(89.9%)와 16대 총선에서 9만8746표(88.2%)를 얻어 연거푸 전국 최다득표를 한데 이어 2009년 4월 29일 실시된 전주 덕진구 재·보궐 선거에서도 5만7423표(득표율 72.3%)를 얻어 당시 재·보궐 선거 62년 역사상 최다득표 기록을 세웠다.
정동영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친노(친노무현) 직계들로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데 앞장섰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친노(친노무현) 진영과 척을 졌다. 열린우리당에서 초대 당 의장과 통일부 장관, 또다시 당 의장을 지내며 ‘노무현 정부 황태자’로 불렸지만, 2007년 6월 ‘탈노(탈노무현)’를 표방하며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제3신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가 됐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번에 탈당해 나란히 4·29 재·보선에 출마한 정동영과 천정배 전 의원(광주 서을)을 향해 동교동계의 좌장인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이 강도 높은 비판을 했다. 권 고문은 지난달 20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당시 서울 관악을 출마설이 돌던 정동영을 향해 “야권분열을 일으킨다면 정치생명은 끝날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당 대표에 대선후보까지 했던 사람이 탈당해 재보선에 참여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정치적 양심을 기대하겠다”고 덧붙였다.
권 고문의 이 발언을 신호탄으로 삼은 듯 일부 언론이 ‘정동영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사설로 정동영의 정치도의를 비판하는 큰 신문들도 있다. 정동영을 비판하는 언론의 주된 논조는 ‘네 번 탈당해 네 번째 지역구로 출마하는 것이 옳은가?’로 집약된다. 정동영이 2008년 서울 동작을 출마 때 "제2의 정치 인생을 동작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겠다"라고 했던 말을 새삼 들춰내 그를 말 바꾸기의 달인이라며 공격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철새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정동영은 “정치노선에서 철새는 추방해야 하지만 하나의 노선을 가는, 약자와 서민을 지키는 노선을 걷는 정치인을 철새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철새 정치인’ 비판을 일축했다.
정동영은 지난달 31일 KBS, YTN, CBS 라디오 등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지역구를) 이동한 것이 맞으니 이동한 것을 철새라고 하면 얼마든지 말해도 되지만, 정치인 노선에서 철새였는지 말해보시기 바란다”며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노선이며 저는 정확한 노선으로 날아가고 있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반격했다.
정동영은 과연 철새이며 배신자인가. 그에게 이런 명찰을 붙이는 것이 온당한가.
우리나라 정당사를 살피자면 이합집산(離合集散)의 기록이 첩첩히 쌓여 있어 어느 당이 어느 당인지 가려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십 년 취재경력을 가진 정치부 기자나 ‘한국 정당사’를 전공한 정치학자라면 모를까, 일반인으로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최초에 어느 정당에서 출발해 어떤 변천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띠게 됐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정당의 당명(黨名) 변화만을 추적하는 데에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다. 그만치 우리나라 정당들의 변천사는 복잡하다. 아니 후진적이다.
밀실(密室)과 막후(幕後)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은 오랜 세월 숱한 ‘탈당’과 ‘배신’의 사례를 생산해 왔다. 탈당과 지역구 바꾸기를 흠결로 잡아 정동영을 질타하기에는 우리나라 정치판이 너무 혼탁하다.
한때 국민적 인기의 표적이 되었고 대선후보까지 지낸 정동영을 언론 등에서 ‘야당 분열의 주범’으로 몰아 비난하는 것은 겉으로는 특정 정치인의 정치 행태를 나무라는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혼란스러운 야당’을 부각시켜 이번 선거전에서 여당을 돕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든다.
소속 정당에서 왕따 당하고 찬밥 취급당해온 거물 정치인이 당을 뛰쳐나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이 과연 죽을죄인가? 대선에 나섰다 낙선하자 다시 지역구 국회의원(18대)으로 복귀했던 정동영의 정치 행태는 유연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정치인은 나중에 구청장에도 출마할 수 있다. 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안상수 전 의원이 체급을 낮춰 각각 경남지사와 창원시장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동영 구청장’도 상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자리는 너도나도 해보겠다고 덤비는 ‘최상의 직업’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0∼2011년 국내 759개 직업의 현직 종사자 2만6181명을 조사해 직업별 연봉 순위를 매긴 바에 따르면, 연봉 1위는 기업 고위임원(CEO)으로 평균 1억988만원이다. 2위는 국회의원으로 1억652만원이다. 국회의원 연봉은 많이 벌기로 소문난 도선사(3위·1억539만원)보다 많다. 그런데 도선사는 자기 돈으로 자동차를 사서 타고 다니지만 국회의원은 기사가 모는 대형 승용차를 정부 예산으로 타고 다닌다. 우리나라는 대학교수를 대단한 존재로 취급해 정당들이 곧잘 국회의원으로 영입하는데, “아무개 대학 교수가 아무개 정당의 국회의원 영입(이 경우 주로 비례대표) 제의를 거절했다”는 언론보도는 우리나라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국회의원을 전직 국회의원이 다시 해보겠다는 것이 무어 그리 나쁜가? 정동영은 힘을 내기 바란다. 안타깝게도 <중앙일보> 3일자에 실린 관악을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정동영 후보가 13.3%로 새누리당 후보(34.3%)와 새정치연합 후보(15.9%)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기죽을 것 없다. 선거일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다. koreamedianow@hanmail.net
*필자/고진현. 언론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