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재계에는 ‘적대적 M&A’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엔씨소프트-넥슨, 일동제약-녹십자, 신일산업-개인투자자 등이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았기 때문이다. ‘적대적 M&A’는 타 기업에 대한 인수의사를 갖고 있는 기업이 경쟁력을 바탕으로 주식지분을 매입해 피인수기업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인수·합병하는 것이다. ‘적대적 M&A’로 경영권 획득을 성공한 기업 및 투자회사는 시너지효과 창출이나 시장을 독점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원 감축 및 유휴자산 매각, 계열 주식 처분 등을 통해 단기 수익을 챙긴 후 비싼 값에 되파는 경우가 많았다. 또 반대로 적대적 M&A를 당하는 기업은 무조건적인 ‘경영권 방어’로 오히려 회사재원의 손실을 가져올 뿐 아니라 기업의 영속성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기존에 국내 기업의 ‘적대적 M&A’로 발생한 대부분의 경영권 분쟁 결과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자본시장 개방 20년, 국내에는 수많은 ‘적대적 M&A’가 있었다. 그중 국내 기업의 순환출자 구조 문제점과 취약한 지배구조를 보여줄 수 있는 몇몇 ‘적대적 M&A’의 대표적 사례를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미도파’ 놓고 신동방그룹 vs 대농그룹의 혈투
SK그룹을 삼키려 한 외국계 펀드 회사 소버린
[주간현대=김유림 기자] 적대적 M&A는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는 자본시장육성법으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했다. 때문에 국내에서의 ‘적대적 M&A’는 기존 대주주 경영권 보호장치로 작용했던 자본시장육성법이 지난 1993년 폐지된 이후 시작됐다.
국내의 역대 적대적 M&A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잊지 못할 큰 사건은 IMF 외환위기를 꼽을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금융권에서 대출해 무리한 다각화로 사업을 확장했고, 금융권과 정부에서도 기업의 덩치 키우기에 동참해 부실화에 따른 부도사태가 속출하는 데 기여했다.
미도파 역시 무리한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따른 경영악화로 적대적 M&A의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 1997년 1월 이른바 미도파 사태는 재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도파 사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지난 1996년 하반기부터 미도파 주식 매집을 시작, 외국인 지분한도 소진을 시작으로 신동방그룹과 성원그룹 계열사가 전면에 나서 미도파 주식을 인수하면서 격화됐다.
신동방을 중심으로 한 미도파의 적대적 M&A 세력은 대주주인 대농그룹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해 대농그룹 지주회사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M&A에 나설 것임을 공시하자, 같은 해 3월12일 전경련 회장단은 비상회의를 열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회의를 마친 뒤 “필요하면 전경련 회장이 직접 나서서 중재할 것”이라고 결연한 각오로 발표문을 읽어 내려갔다. 전경련과 함께 삼성, 현대, LG그룹 계열사 등 재계를 중심으로 적대적 M&A를 용납하지 않겠다며 미도파 사무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인수해 대농그룹의 방어를 도왔다.
결국 대농그룹의 지분강화와 전경련과 재계의 공동대처 등으로 미도파에 대한 신동방의 적대적 M&A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방어에 성공한 승자와 공격에 실패와 패자의 모습은 처참했다. 직·간접적으로 미도파 인수에 참여한 대농그룹과 신동방은 재무구조 악화와 영업력 분산 등의 부실이 발생했으며, 연이어 발생한 외환위기로 법정관리 및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미도파 사태 5년 후, 지난 2003년 적대적 M&A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SK그룹과 소버린펀드의 분쟁이 시작됐다. 소버린은 지난 1972년 뉴질랜드의 자산개발그룹으로 출범해, 지난 1986년 무역 사업의 대부분을 매각한 모나코에 기반을 둔 외국계 펀드 회사다.
소버린은 지난 2003년 3월부터 4월까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태 직후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지배주주의 구속을 통해 주가 폭락을 기다렸다가 자회사인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20여 일 만에 SK그룹의 지주회사격인 SK㈜의 지분을 14.99% 확보해 2대 주주가 되었다. 소버린은 SK㈜의 2대 주주로 부상한 후 현 경영진 퇴진, 부실계열사 지원반대 및 기업 재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며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를 시도했다. SK㈜의 주가는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면서 지난 2003년 3월 6100대에서 지난 2004년 12월 6만9000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지난 2005년 소버린펀드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사직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본격적인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소버린을 포함한 외국인 주주의 지분은 50% 이상인 반면 SK의 직접보유 지분은 소버린보다 겨우 2% 적은 13%에 그쳐, 최 회장은 SK그룹 경영권 자체를 상실할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난 2005년 정기주주총회에서 고액주주와 외국인 주주 대부분으로부터 신임을 획득해 60.63% 찬성으로 사내이사에 선임돼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 경영권 확보에 실패한 소버린은 결국 지난 2005년 7월 보유하고 있던 SK(주) 지분을 모두 매각했고, 2년 동안 불거진 경영권 분쟁은 종결됐다. 하지만 소버린은 이 과정에서 1조원이라는 차익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이외에 KT&G는 지난 2006년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억만장자 투자자 칼 아이칸의 공격을 받았다. 칼 아이칸은 스틸파트너스와 연합해 KT&G 주식을 6.59% 매입해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1명 확보 및 자회사 매각 요구 등 본격적인 경영권 개입을 선언했다. 이에 KT&G는 2조8000억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매입해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고, 칼 아이칸은 주식을 매각하며 한국을 떠났는데 약 1500억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3년 11월 KCC의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적대적 M&A는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시작됐다. 고 정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은 취임 한 달이 채 지나기 전에 경영권을 놓고 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KCC는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적대적 M&A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체 주식 8%에 해당하는 57만 주를 주당 7만원에 공개 매수를 추진해 성공했으나 경영권까지는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지난 2006년 KCC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53만1103주 전체 주식의 21.47%를 스위스 엘리버이터업체 ‘쉰들러홀딩스AG’에 매각하며 경영권 분쟁은 종결됐다.
적대적 M&A의 가이드라인 필요적대적 M&A로 인해 빚어지는 무리한 공격과 방어에 따르는 경영권 분쟁은 해당 기업들의 부실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심할 경우 기업부도로까지 이어져 일반 주주들의 손실 유발 및 해당 기업 직원들의 대량 실업을 초래한다. 또 SK그룹과 소버린펀드와 같이 외국계 펀드 회사의 적대적 M&A 시도는 내부지분율이 취약한 국내 기업들이 장기적인 대규모 투자나 일시적인 경영성과 악화로 인해 주가가 폭락한 상황에서 종종 발생한다.
이와 관련해 한 전문가는 언론에 “국내 법체계는 적대적 M&A에 따른 경영권 분쟁에서 방어의 허용과 금지를 판단할 수 있는 본질적 원칙이 설정돼 있지 않다”며 “미국의 경우 이사에게 주주와 회사의 이익이 무시되더라도 회사와 관련된 이해관계 집단의 사회적 이익을 고려해 경영권 방어의 재량권을 허용하는 게 각 주 회사법의 입법 추세”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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