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대표가 제안한 ‘제3의 길’ 놓고 새누리당 노선투쟁 재점화할 조짐
역시, 유승민! 똑똑한 건 두말할 나위 없고 매력 있는 정치인인 것을 아는 사람만 안다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난 4월8일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진면목을 보여줬다. 야당의 ‘정책정당론’ ‘야권 개편론’에 밀렸던 이슈 주도권을 한판에 여권으로 돌려놨다. 새누리당에도 다양한 정책적 스펙트럼의 인물과 정책이 있음을 각인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가질 수 있는 어젠다를 단칼에 새누당이 선점하며 4·29 재보선에서 중도성향 표심에 적잖은 영향도 미칠 전망이다. 화려한 수사도 없고 다소 거친 명문장이라 할 수 없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이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유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이 특출났기 때문이 아니다. 이슈가 되고 있는 모든 현안에 대해 진솔하게 얘기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 문제점, 지속가능한 공동체 사회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했다. 문제를 에둘러 가지 않고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것, 회피하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진정성으로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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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도 박수친 유승민식 ‘제3의 길’
유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새누리당은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財閥) 대기업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 편에 서겠다”며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 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겠다”고 했다. 새누리당이 지금까지 ‘기득권’ 쪽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도 해석되는 말이었다.
그는 또 “10년 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 양극화 해소를 시대적 과제로 제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고도 했다. 이어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경제·안보 정당을 말하고 정의당이 미래산업 정책을 말한다”며 “놀라운 변화다. 그 변화 속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고민과 진정성이 담겨 있으리라고 기대해 본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재(再)평가하고 야당을 칭찬한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내건 ‘증세 없는 복지’ 공약에 대해선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는 “2012년 새누리당과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134조5000억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 반성한다”고도 했다. 보육 공약에 대해서도 “정책 재설계가 절실하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는 여권이 그동안 부정적이었던 법인세 인상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언급과 함께 “재벌도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재벌 개혁 정책을 예고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유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새누리당의 놀라운 변화, 유 원내대표의 합의정치 제안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야당이 여당의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 대해 공식 환영 입장을 밝힌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은 유승민 대표가 제안한 ‘제3의 길’을 놓고 당내 노선투쟁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당 안팎의 불씨 때문이다.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균형발전, 양극화 해소, 부자와 대기업의 세부담 확대, 재벌개혁 등 유 원내대표가 던진 ‘보수혁신의 어젠다’에 대한 당내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당내 쇄신파는 유 원내대표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총선·대선을 향한 ‘중도 전쟁’의 본격 개막에 대비해 당의 ‘보수꼴통’ 이미지를 벗고 중도·진보 진영을 끌어안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판단에서다. 수도권 유권자의 관심이 많은 정책 대결을 통해 민심을 잡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유 원내대표와 친분이 두터운 정두언 의원은 “유 원내대표의 연설은 새누리당이 가야 할 중도개혁을 통한 보수혁신의 좌표를 시의적절하게 보여줬다”며 “이제 기득권자들의 정당이란 오명을 벗고 진정한 서민 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내년 총선 승리와 함께 재집권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노선투쟁 재점화 조짐
쇄신파 모임을 준비 중인 정태근 당협위원장도 “19대 국회 들어 사그라들었던 새누리당 보수혁신의 불꽃이 다시금 피어오를 것”이라며 “의총과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연석회를 거쳐 2016년 총선 정책 공약의 기조가 되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미래연대(16대 국회), 수요모임(17대), 민본21(18대) 등 새누리당의 혁신을 이끌었던 옛 쇄신파도 보수혁신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증세 등 당내 조율과정이 끝나지 않는 현안을 언급한 것은 부적절했고 야당의 프레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무성 대표는 복지·증세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서 합의를 해야 하고 그 전에 우리 당내에서도 합의하는 단계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정훈 의원은 의총에서 “대통령 공약사항을 다 부정하는 것처럼 하면 정부나 대통령 입장이 어떻게 되겠나”라며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내 조율이 끝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그 책임은 유 원내대표가 져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치철학과 개인 소신을 담아 그동안 해온 얘기를 재차 언급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불편한 속내가 읽혔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2011년 7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용감한 개혁’이란 이름으로 보수의 개혁을 주장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좌(左)클릭’을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가든 정당이든 기업이든 뛰어난 조직은 구성원들의 성장 욕망과 조직의 이익을 일치시키게 만드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번 연설에서 정치적 욕망과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당과 보수 진영의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공론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주의는 설득의 경연이지만 정치에 대한 판가름은 실행 여부에 달렸다. 그 해답은 유 원내대표의 말 속에 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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