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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읍 ‘장기리(場基里)’

이승철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5/04/29 [09:54]

장기리(場基里) 이 이름 긴 설명 필요 없이 그냥 ‘장터’ 그대로이다. 지금도 5일 0일 5일장이 선다. 시장 기능이야 ‘있을 것 다 있고, 없을 다 없다’는 말 그대로 옛날과 매일반이나 다만 장소는 바뀌었다. 원래는 만경강둑 노거수 많은 그 일대이다.


 

▲ 이승철     ©브레이크뉴스

17번국도 가 여러 비석이 있는 근처. 장터야 옮겨갔지만 여기에서 씨름을 많이 했고, 쉬다 떠나기 좋기로는 예나 지금 별 차이 없다. 여러 비석 가운데 ‘전라도관찰사 서기순영세불망비(全羅道觀察使徐箕淳永世不忘碑:재임 1842∼1843)’를 기억해야 한다.

 

후손인 서청원(徐淸源) 국회의원(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몇몇 씨족과 함께 답사하였다. 여야 정치를 떠나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보통 정치인과 크게 다르더라. 장기리는 장기-학교(학다리)-월리-한오-임거-쌍계 등으로 이루어졌고, 파출소와 우체국 농협 외에 얼마 전까지 버스 매표소가 있어 많은 사람이 오갔다. 1970년대 이 아무개 음식점은 출장 나온 외부 손을 대접하는 영빈관(迎賓館) 역할을 했다. 공간이 넓고 음식 맛이 좋아 사람이 북적북적 봉동 매력 인상을 좋게 했다. 돈 많이 벌어 서울 가지고 가면 ‘이 생원․이 선생’ 하는데 집안에선 고기장사라는 이유로 못 마땅하게 여겨 하세했으나 물 건너에 재실을 크게 짓고 선영을 잘 받들었다.


3거리에 주조장이 있었다. 주인 종렬 아버지(일동)는 동상면에서 술로 돈을 모았고 봉동에 새 주조장을 차려 아들에게 맡겼다. 전주고등학교를 나온 지식인으로 주류업계에서 대접 받는 기업인이었다. 1970년대 완주중학교에 최도철 교장이 부임했다. 전주고등학교 근무 경력이 있는지라 유종렬과 가깝게 지냈고 친해지자 유종렬은 철재 교문을 해 주었다. 최 교장은 기독교회 장로로 전고․군산고등학교 교장 이력에다 뛰어난 화술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봉동이라 하지만 전에는 봉상(鳳翔)이었고 ‘봉상(峰上)’이라 쓴 기록이 있다. 낙평리 소재 봉상교회가 초창기에는 장터에 있었고 옮겨 가는 과정에서 서두에도 교회가 섰는데 한때 서로 원조라는 역사 논쟁이 있었다.

 

해방 후 제12대 봉상교회 오기영 목사는 사회적으로도 저명인사에 들었다. 전에는 ‘보상리예배당(寶上里禮拜堂)’이라 했으며《봉상교회100년사(1904〜2004)》는 황갑순 목사 재임 때에 나왔다. 2013년 읍사무소를 크게 지어 이사하니 장기리가 더 한층 환해졌다. 1973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한 이후 인구가 점점 늘어 2만인 시대를 열었다. 사람 느는 만큼 애향심도 커나가기 바란다. 완주고등학교 앞에 자리한 최규성 국회의원 사무실에서는 완주군민의 표심 어느 끝까지를 내다보고 있는지. 유권자들은 많은 예측 가운데 2016년 총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esc2691@naver.com 


*필자/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esc269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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