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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주 교수,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실크로드 회상열차’ 추진

[인터뷰] “블라디보스토크~알마티까지 6500㎞, 고려인 17만2000여명 강제이주!”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기사입력 2017/05/12 [15:04]

고려인 강제이주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중 하나이다. 공산주의 국가인 당시 소련에서 일어나 역사적으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

 

브레이크뉴스는 고려인 강제이주 80년을 맞아 7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고려인 강제이주 행로를 따라가는 ‘눈물의 실크로드 회상열차’행사를 준비 중인 사단법인 국제한민족재단의 상임의장(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석좌교수.국제관계학)인 이창주 박사(71)를 만나 ‘6500Km 실크로드 회상열차’추진배경과 역사적 의의를 들어봤다. 
 

▲ 이박사는 "각계 저명한 80명의 인사들이 80주년 되는 해에 해방이후 최초로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인 6500Km를 답사하며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대한민국 국민이 고려인을 한민족으로 함께 끌어안고 고려인의 흔적을 찾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고려인 강제 이주 행로를 따라가는 ‘눈물의 실크로드 회상열차’ 행사를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이 행사를 추진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의의를 설명해 주시죠.

 

▲ 올해가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되는 해이다. 하지만 중앙 아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은 올해가 고려인 정주 80년이 되는 해이다. 고려인이 소수민족에서 주류 세력의 일원으로 발돋움하는 올해가 전환기를 맞는 상징성이 있는 해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계 저명한 80명의 인사들이 80주년 되는 해에 해방이후 최초로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인 6500Km를 답사하며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대한민국 국민이 고려인을 한민족으로 함께 끌어안고 고려인의 흔적을 찾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 언제부터 고려인 강제이주에 관심을 가졌으며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는 감회는?


▲ 1999년 미국 뉴욕에서 국제한민족재단을 설립했다. 조국이 버리고 역사가 버린 고려인 강제이주 문제를 알리는 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적으로 한민족의 가치를 홍보하고 연대를 조직하려고 재단을 만들었다. 시베리아 땅에 묻혀있는 고려인의 슬픈 역사를 재조명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고 역사 교과서에 실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버려지고 잊혀진 역사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 고려인 17만 2천여명을 스탈린이 왜 강제이주 시켰는지 국민들은 잘 모르고 있다.

 

▲ 혹자는 스탈린 정부가 외형적 명분을 내세워 고려인이 스파이 역할 때문에 스탈린이 강제이주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적 이유는 고려인이 신문을 만들고, 학교를 세우고, 민족운동, 독립운동의 정치결사체를 만들어 소위 군사화를 꾀하고 있어서 고려인을 강제 이주시켰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유대인은 정치 결사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고려인은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자치조직을 가질 정도로 자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박사는 "조국이 버리고 역사가 버린 고려인 강제이주 문제를 알리는 것이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며 "시베리아 땅에 묻혀있는 고려인의 슬픈 역사를 재조명해 국민들에게 알리고 싶고 역사 교과서에 실어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버려지고 잊혀진 역사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눈물의 실크로드 6500Km 회상열차’ 기간 중 대표적인 행사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 주요 행사로는 신한촌 흔적 숨결 역사회복 재건 준공, 블라디보스토크 통곡의 역 강제이주 시발점 라즈돌노예 진혼제, 이르쿠츠크 러시아혁명-볼셰비키 영향을 받아 고려공산당을 창건하여 조선지식인들의 사회주의 운동의 배경이 된 무대 탐사, 바이칼 평화문화제, 노보시비리스크 시베리아고려인과의 만남을 통해 역사적인 대화, 고려인 최초 중앙아시아 기착지이며 가장 희생이 많았던 우슈토베에서의 진혼제 및 위령비 제막, 알마티 조선극장(고려극장)에서의 홍범도 장군 추모제 및 예술제, 알마티 15개국 참가 세계한민족포럼(중앙아시아 고려인학자 포함),열차 특강 등을 통하여 잊혀진 역사를 재조명하게 될 것이다.
 
- 1937년 8월 21일 스탈린의 지시 각서에 의해 강제 이주가 단행되기 전 소련당국은 고려인에 대한 이주계획의 전 단계로 고려인 중 지도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계획이 은밀히 추진되었다. 고려인의 집단적 반항이나, 이의 제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고려인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을 총살시킨 걸로 알고 있는데 그에 대한 구체적 사료들은 남아 있는가?

 

▲ 스탈린에 의한 대숙청이 횡행하던 1937~1938년 사이 소련 전역에서 약 150만 명이 체포되고 70만 명이 처형됐다. 피의 숙청을 수행한 기관은 비밀경찰인 NKVD(내무인민위원회)였다. 같은 시대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킨 것도 스탈린의 명을 받은 NKVD에 의한 것이었다. 기록은 금서가 되어 접근도 불가하고 사료들을 찾을 수가 없다. 러시아 정부는 민족역사를 불허하고 비석하나 세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최재형 선생 생가를 복원하려고 해도 3년여 동안 허가를 하지 않고 있다. 이 분야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정부에서도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들을 찾는데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고려인 중 극동 시베리아 대표적인 인물은?


▲ 극동 시베리아 3대 거목이 최재형, 김알렉산드리아, 홍범도 장군이다. 일제 강점기, 조국을 잃고 러시아로 이주한 동포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인 최재형(1860~1920)선생은 함경도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연해주로 이주한 뒤, 사업가와 행정가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연해주 한국인들의 대부가 되었다. 얀치혜 읍장이 되어 조선인 학교 32개를 세웠고, 독립단체 동의회를 이끌며,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지원했으며,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선생은 일본군이 한인을 집단학살한 ‘4월 참변’ 때인 1920년 4월7일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총살로 순국했다. 하지만 일제가 총살 현장을 메워버린 탓에 지금껏 주검의 행방이나 묘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주, 2012년에야 국내에서 최 선생의 추모식을 열고 있으며, 순국 95주기인 2015년 위패를 국립현충원에 봉안했다.)

중앙 아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은 올해가 고려인 정주 80년이 되는 해이다. 고려인이 소수민족에서 주류 세력의 일원으로 발돋움하는 올해가 전환기를 맞는 상징성이 있는 해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계 저명한 80명의 인사들이 80주년 되는 해에 해방이후 최초로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인 6500Km를 답사하며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 바쁜 와중에도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통사를 책으로 엮었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중앙 아시아에 살고 있는 고려인의 현주소와 바람직한 향후 대책은? 

 

▲ 고려인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연해주에 이주해온 고려인이고 또 하나는 사할린 고려인이다. 사할린 고려인은 국적이 일곱 번이나 바뀐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대한제국, 일본국적, 사할린 무국적,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러시아, 대한민국 등. 일제는 패망하자 사할린 고려인들을 남껴둔 채 자신들만 빠져 나왔다. 카자흐스탄은 자원도 풍부하고 먹고 살만큼 넉넉하다. 하지만 CIS(중앙아시아 독립국가연합)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들에 대하여 우리가 못살 때는 몰라도 이제는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우리가 그들을 따뜻하게 품어 안는 아량과 역사의 흔적들을 재조명하고 그리고 우리의 전통문화 교류를 하는데 있어서 인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 국제 한민족재단의 나아갈 방향은?

 

▲ 국제 한민족재단이 정부에 비판기능을 담당하다보니 시달림을 받기도 했다. 향후 방향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으니 한반도 자주적 평화정착에 기여하고 학문적 ,정책적, 국제적 관점에서 분단된 한반도에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가 같은 한민족이 함께 공유해야 할 가치와 대륙진출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습니다. 

 

이창주 상트페테르브르크 석좌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 외교대학원에서 “한국: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이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는데 산파역할을 한 에피소드도 가감 없이 들려줬다.     © 김충열 정치전문기자

 

* 인터뷰를 마치며

 

요즘 세간에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남에서 “운명”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사단법인 국제한민족재단의 상임의장인 이창주 박사 또한 “운명”처럼 고려인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고려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잊혀 져 가고 있는 한많은 고려인의 역사를 재조명하는데 누구보다 골몰하고 있다.

 

김미혜 사무국장과 인터뷰 요청을 한 후 몇 번 연기되었다. 대선 전 기간이라 가능하면 모든 뉴스가 블랙홀처럼 빨려들어 가기에 대선 후 인터뷰하는 것을 지양했으나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이 박사께서 늦게 귀국하는 바람에 이박사의 스케줄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나는 순간 나의 선입관은 무너졌다.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했던 이 박사님은 소탈하고 연세에 비하여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돈 만드는 거죠”라는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이 박사는 사단법인 국제한민족재단을 끌고 오느라 문전옥답을 팔아먹는 아픔도 겪었는데 내년부터는 국회에예산을 신청하여 제도적으로 지원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터뷰하는 와중에 다음 주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다녀 온 후 곧 바로 우즈베키스탄 알마티를 가신다고 한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눈물의 실크로드 회상열차’의 성공적인 행사 개최를 위하여.

 

한편 이창주 상트페테르브르크 석좌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2년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 외교대학원에서 “한국: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이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는데 산파역할을 한 에피소드도 가감 없이 들려줬다.

 

하지만 관운이 없어선지 모 일간지 기자의 기사화로 러시아 대사를 나가지 못한 사연도 지금은 다 지나간 과거이기에 허허로이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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