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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핵 위협이 김정일 '핵 망상' 키웠다

50년부터 미국 핵위협 정책 이어져‥김정일 핵개발 망상에 근거로 작용

김경탁 기자 | 기사입력 2006/11/01 [21:15]
美 언론 "북한 핵실험, 미국이 자초"
 
<워싱턴포스트>는 10월 15일 인터넷판에서 미 공화당과 민주당이 북한의 핵실험 강행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기 위해 아전인수식 해석을 쏟아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양당 중 어느 당이 집권했을 때를 막론하고 북한에 대한 핵 위협은 지속되어왔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고급일간지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이하 더 모니터)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결국 이번 북한의 핵실험은 지난 50년간 미국이 견지해온 북한에 대한 핵위협 정책의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관련 보도 등을 종합하면, 한국전쟁 기간이던 1950년 당시 한 기자가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황이 악화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 묻자, 대통령은 "그것도 우리가 가진 무기에 포함된다"고 대답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북한에 간접적인 위협을 가하는데, "만일 북한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종식하기 위한 협상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을 경우, 무기 사용에 대한 모든 제한을 풀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1957년 핵 탑재 지대지 미사일을 남한에 배치했으며, 이는 공화당 행정부와 민주당 행정부가 번갈아 집권하는 기간 내내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대부분의 핵무기들은 휴전선 가까이 전진 배치되어 있었다.
이것들은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남한내 배치되었던 수백개의 핵무기를 철수하도록 명령하기 전까지 미군은 휴전선 인근의 핵무기 전진배치는 그대로였고, 남한내 핵무기 철수는 1991년 부시행정부가 되어서야 완료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 개발의 배경 반대편에 깔려있다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지적했다.
북한은 자체 우라늄광산을 갖고 있으며, 1965년에는 소련에서 소형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해 영변에 배치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북한 기술자들은 원자로의 용량을 늘리는 개발을 추진해왔고, 마침내 두 번째 원자로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정권은 1977년 첫 번째 원자로에 대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했다.
재처리연료를 무기급 물질에 투입하는 설비를 비밀리에 개발하기 시작하는 등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였다. 1985년 전후로 미국의 첩보기관은 세 번째 원자로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북한은 npt(핵학산금지조약)에 가입한다.
그로부터 5년 뒤 미국의 첩보기관은 위성사진을 통해 원자력 발전소 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위한 설비를 지었던 것으로 보이는 구조물을 발견했다. 압박 속에서 북한은 1992년 iaea의 세이프가드 협정에 서명했고, 설비의 영향이 시작된다.
하지만 1993년 1월 iaea 사찰단은 과거의 미보고 설비에 대한 접근을 거부당했다. 위기의 결과로 북한은 npt 탈퇴를 시도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그에 대한 답변을 보내는데, 북한이 만일 플루토늄 추출을 시도한 다면, 이는 레드라인을 넘는 행위로, 미사일 공격의 방아쇠를 당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바로 94년 핵 위기이다.
<더 모니터>는 "부시행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추가핵실험 위협에 대해 처벌하기 위한 연합체(입장에 따라 의지의 차이는 있지만)를 만들려 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받는데 마침내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더 모니터>는 "그러나 중국과 한국은 이러한 처벌을 전면적으로 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보인다"며, "그들은 해상에서 북한선박의 운송화물을 검색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마음내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제재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로 갔지만, 한국이나 중국입장에서는 김정일 왕국의 붕괴될 경우 최소 수천에서 어쩌면 수만명에 이르는 난민이 국경을 넘어 들어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제재동맹을 구축하는데 있어 미 행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들은 어쩌면 50년전 우리가 했던 핵 위협의 댓가일 수도 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 내막]
김경탁 기자
kt@breaknews.com
2001년 9월 해운업계 전문지인 <한국해운신문>에서 조선업계 출입 및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으며,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브레이크뉴스+사건의내막 경제부에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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