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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산건설, 1백억원대 비자금 조성 발각

공사장 인건비 빼돌려 은행권 로비 의혹

김경탁 기자 | 기사입력 2006/01/28 [04:53]
아파트 브랜드 ‘벽산 블루밍’으로 알려진 벽산건설이 건설현장 인건비 등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1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해, 금융권 로비에 사용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파장이 일고 있다.

54년 역사의 벽산건설은 1998년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후 4년 만인 2002년 경영정상화를 이뤄냈으며 2004년 4월에는 채권금융기관이 출자전환했던 지분 51%를 인수 해 독자경영체제를 회복했다. 
 
워크아웃 기간 금융권 로비 의혹
 
대검찰청 공적자금비리합동단속반(반장 이명재)은 1월 22일 벽산건설 한백민(64) 고문과 이강혁(51) 전 이사를 특가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한데 이어, 24일 동법 수재 혐의로 우리은행 김 아무개(50) 지점장과 김아무개(41) 차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고문과 이 이사는 건설현장에서 인건비를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이 지점장과 김 차장은 2003년 3월 한백민 고문에게서 사례비 명목으로 각각 5천3백만원과 3천만원을 챙긴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한 고문과 이 전 이사는 벽산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1998년 12월부터 2002년 10월 사이 1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당시 벽산건설 대표이사가 현 목포시장인 정종득이어서 정 시장에 대한 조사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 지점장과 김 차장이 몸담고 있는 우리은행은 벽산건설의 주거래은행인 동시에 워크아웃과정 주채권은행으로, 이들은 벽산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출금리를 결정하고 상환유예 업무를 총괄하는 심사역이었다.

이들이 금품을 수수한 2003년 3월은 벽산건설이 워크아웃을 조기에 졸업한 직후로, 검찰은  우리은행 담당자였던 이 지점장 등에게 전달된 것으로 확인된 8천3백만원 외에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권을 상대로 시도된 추가 로비는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대주주 동의 없이 이사진이 비자금을 조성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 조만간 김희철 회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비자금 조성 경위와 사용처 등에 대해 집중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한편 비자금 조성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던 1998년부터 2002년 당시 벽산건설 대표이사 사장은 2005년 4.30 재보선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시장에 당선된 정종득 현 목포시장으로, 정 시장에 대해서도 검찰의 조사가 이루어질지 주목된다.
 
1998~2002년 워크아웃 받아
 
벽산건설은 1958년 1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에서 시작되는데, 이 회사는 1962년 김희철 회장의 아버지인 고 김인득 회장에게 인수되어, 1975년 사내 건설사업 부문을 한국건업주식회사로 상호변경 했으며, 1991년 3월 지금의 벽산건설(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8년 8월 워크아웃을 신청한 벽산건설은 그해 11월 워크아웃 과정에 들어간 이후 벽산그룹은 98년 당시 재계서열 32위로, 27개 계열사(국내 16, 해외 11)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중 18개사를 합병, 매각 청산한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벽산건설은 워크아웃 시작부터 좋은 경영실적을 내면서 ‘조기 졸업’에 대한 기대가 주변에서 흘러 나왔으나 계속 지연되다가, 워크아웃 3년만인 2002년 10월 공식적으로 워크아웃을 졸업하는데 성공한다.

현재 벽산그룹은 벽산건설 외에 부동산임대회사인 (주)인희와 종합건축자재회사인 (주)벽산, 벽산페인트, 농기자재회사인 동양물산기업(주) 등 건설 및 농기계 업종으로 중심으로 전문화된 상태이다.

98년에 워크아웃에 들어간 벽산 계열사는 벽산건설과 (주)벽산, 동양물산 등 3개사로, 이중 동양물산은 2000년 8월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했으며, (주)벽산은 벽산건설과 비슷한 시기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벽산이란 그룹명은 1997년 작고한 창업주 고 김인득 회장의 아호에서 따온 것으로, 김 회장은 1951년 무역과 영화수입업을 하는 동양물산을 설립한 이후 전국 주요 17개 도시에 여러 극장을 소유하며 ‘극장왕’으로 불리웠었다.
 
60년대 극장 팔아서 제조업 진출
 
김 회장은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한 1962년 서울 종로의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시네마)을 매각한 돈으로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 벽산건설)을 인수, 제조업으로 뛰어들었으며, 1972년 자신의 아호를 딴 ‘벽산’으로 사명을 바꾸면서 그룹 회장에 취임한다.

현재 벽산건설의 최대주주는 43.6%를 보유한 (주)인희로, 극장경영 및 부동산임대 등의 사업을 영위하는 업체로, 2004년 4월 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출자전환했던 벽산건설 지분 51%를 인수하면서 6년만에 경영권을 되찾아왔다.

(주)인희는 1952년 동양영화(주)로 설립되어 극장경영 및 부동산임대 등의 사업을 영위하다가 1994년 9월 8일에 인희산업(주)를 흡수합병하면서, 건자재유통사업과 부동산관리용역 및 주택건축업을 추가했고, 합병 후 상호를 현재의 ‘주식회사 인희’로 변경했다. 

(주)인희는 1998년 7월 7일 벽산산업개발(주)를 흡수 합병해 그룹 지배회사로 올라선 후 수차의 증자를 거쳐 2005년 4월 현재 자본금을 14억9천5백만원으로 늘렸다. (주)인희 지분은 김희철 회장 및 특수관계인이 75.7%를 갖고 있다.

한편 김인득 회장의 장남인 김희철 회장은 국내 최초의 공학박사 출신 재벌총수로, 미국 퍼듀대학에서 기계학(학사)과 경영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원자력공학 석사, 퍼듀대학에서 원자력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김 회장은 학업을 마친 뒤 3년간 미주리-롤라대학에서 조교수로 일하다가, 정부의 해외 우수두뇌 유치에 의해 과학기술처 1급 연구조정관으로 초빙되어 국내에 들어와 여기서 2년간 근무하다 1971년 10월 벽산그룹에 합류, 20년간 부친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김희철 회장은 (주)벽산을 비롯해, 한국몰티션, 벽산니또보, 대한아이소플라소트 등 건자재 관련 계열사를 주로 경영했으며, 부친이 작고한 이듬해인 1998년 벽산건설 회장, 1999년 동양물산 회장, 2004년 (주)인희 회장에 각각 등극한다.

김 회장은 아내 허영자씨와의 사이에서 2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 김성식(38)은 벽산건설에서 2000년부터 전략총괄 전무로 근무하다 2005년 5월 (주)벽산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으며, 차남 김찬식(36)은 현재 벽산건설 외주자재담당 상무로 근무하고 있다.
 
김경탁 기자
kt@breaknews.com
2001년 9월 해운업계 전문지인 <한국해운신문>에서 조선업계 출입 및 외신부 기자로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으며, 2005년 11월부터 2009년 3월까지 브레이크뉴스+사건의내막 경제부에 근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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