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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세계 접근 목적은 법력(法力)과 권력(權力)의 쟁취

우주내의 <법력(法力)은 신기(神氣)원리>속에 있고 사회내의 <권력(權力)은 인간 최고의 욕망>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0/31 [08:18]

 

▲ 노병한 자연사상칼럼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운세와 운발코칭] 인간의 삶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찾아 자신의 욕망(慾望)을 쟁취해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인간의 욕망 중에서 최고의 욕망은 자신이 지배하고자하는 대상에 대해 지배할 수 있는 권력(權力)이다.

 

한마디로 권력은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말한다. 그런데 그런 <정치권력·행정권력·사법권력·경제권력>을 쟁취함에 있어서 비겁한 방법을 써가며 가로채는 권력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다. 권력을 쟁취했더라도 그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허우적대는 경우도 많다.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도 권력을 사용하는 과정도 모든 권력에는 품질이 있기 마련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기업에서 단체에서 공공기관에서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에서 그 외의 다양한 조직에서 사용되는 권력에도 명품과 불량품이 있기 마련이다. 명품권력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의 70~80%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 권한을 아래에 위임하는 아름다운 권력도 있다. 반면에 하위계층에 아랫사람에게 위임된 권한까지 빼앗아 누리려는 상급자나 상급기관은 불량권력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에는 <꼭 맞는 정답>이 있을 수는 없고 <정답에 가까운 모범답안>이 있을 뿐이다. 인생은 단지 명답(明答)을 성실히 노력하며 궁구(窮究)하며 찾아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는 명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비움()과 채움()의 지혜를 하나씩 하나씩 터득해가며 누에가 4() 이후에 익어가듯이 사람도 천천히 익어간다.

 

채움()에 있어도 배()의 채움, 머리()의 채움, 가슴()의 채움, 마음()의 채움, ()의 채움 등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비움()에도 배()의 비움, 머리()의 비움, 가슴()의 비움, 마음()의 비움, ()의 비움 등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의 채움 과정에서도 우리는 <수저=시저(匙箸)>라는 금석목(金石木) 등의 다양한 숟가락 젓가락을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유형의 숟가락과 젓가락이든 맨손으로 음식을 먹어 채움을 하던지 간에 반드시 필요한 중간자인 <도구·수단·매체(媒體)>들이 필요한 법이다.

 

언론과 방송에 기사를 쓰고 보도하는 기자는 사실(Fact)을 밝히는 게 사명이라면,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는 사실 속에 숨겨진 진실을 규명하는 게 사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학문 속에서도 과학()은 증명이 관건이고 철학()은 설득이 관건이다.

 

그런데 우주를 관장하며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아닌 비()물질의 세계 속에는 <보이지 않는 힘(Power)>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러한 세계를 우리는 영계(靈界)라고 표현을 한다. 이러한 영계(靈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작용력을 갖고 있으며 이에 접근해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영력(靈力)의 주체인 영혼(靈魂)이든 신령(神靈)이든, 지위나 계급이 높든 낮든 불문하고 영()에도 <음령(陰靈양령(陽靈목령(木靈화령(火靈토령(土靈금령(金靈수령(水靈)> 등 다양한 영()들이 뒤섞이어 존재함을 알고나 있을까?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는 초()과학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변화에는 우리가 못 느끼는 <보이지 않는 힘인 어떤 필연적인 원리>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필연적인 힘>에 접근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한다. 이러한 노력을 영()적인 능력계발이라고 해도 무방하고 괜찮을 듯싶다.

 

그러므로 이런 <보이지 않는 우주내의 힘>이 바로 모든 영력(靈力)계발의 근본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우주내의 힘>은 뭘까? 여러분들도 일반적으로 <체력(體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 등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력(體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보이지 않는 우주내의 힘>의 최종 종착지이자 목적지는 못 된다는 사실이다. <체력(體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이라는 4가지의 힘이 하나로 통합되어 일어나게 해주는 근원적인 힘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게 바로 법력(法力)이다. 결론적으로 그 <보이지 않는 우주내의 힘의 원리>에 해당하는 최종 목적지가 바로 법력(法力)인 셈이다. <체력(體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을 노력과 수련 등을 통해서 제아무리 향상시킨다고 해도 이들은 법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하수인에 불과함이다.

 

그렇다면 영()에 세계로 신()의 세계로 향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련방식은 뭘까? 또 영혼의 수련방법은 뭘까? 무작정 요가나 참선을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 약간의 집중력이 생기고 신체가 강건해지는 정도일 뿐이다. <요가와 같은 운동은 몸() 공부>의 일환이고 <참선과 같은 수행은 마음()공부>의 일환일 뿐이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영력(靈力)을 타고나는 경우도 있다. 또 신()내림을 통한 노력으로 일정기간 동안 영력(靈力)이 생기고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한편 특별한 만다라(曼陀羅)의 수련법을 통해서 영계(靈界)를 내다보고 관찰할 수 있는 영력(靈力)을 키울 수도 있다.

 

그렇다면 법력(法力)이란 뭔가? 우주만상은 정해진 질서이자 약속인 우주법()에 의하여 움직인다. 우주법은 우주의 질서이고 우주의 이치인 셈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분야는 과학의 세계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과학으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초()과학의 세계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초()과학의 세계를 심령(心靈)차원에서 다루려하는 사람도 있고, ()차원에서 다루려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종교(宗敎)차원에서 다루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초()과학의 세계를 이해하려함에 있어서, 이런 한정적인 개념의 틀과 정립은 눈먼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느끼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라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과학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우주변화의 원리를 단순하게 영()적인 차원에서 만 해석하려함도 크나큰 어리석음의 한 단면이라고 할 것이다. 더구나 <보이지 않는 우주내의 힘>을 어디의 무엇에 근거하여 해석을 해야 바른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니 말이다.

 

체력(體力)과 기력(氣力)은 육체적인 단련의 결과로서, 염력(念力)은 인간의 두뇌집중의 결과로서, 영력(靈力)은 기력과 염력의 2가지를 바탕으로 한 신령(神靈)차원의 차력(借力)과 본인의 영력(靈力)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체력(體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4가지의 힘이 하나로 통합되어 일어나게 해주는 근원적인 힘의 원리는 과연 어디에 어떻게 존재함인 것일까? 예컨대 인연법으로 인간의 영혼이 정화되지 못할 경우 이를 깨뜨려 정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새로운 인연의 동원능력은 과연 뭔가?

 

이러한 힘, 새로운 인연의 동원 능력은 바로 다름 아닌 법력(法力)이라 해야 바를 것이다. 인간이 해낼 수 있는 한계는 영력(靈力)의 계발이지만, 그 근본에 깔려 있는 법력을 무시해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음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아무튼 <체력(體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4가지의 힘을 제아무리 향상시켜 키운다고 하드라도 그 모든 것들이 법력에는 도저히 미칠 수가 없음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인연법을 구성시켜주는 무서운 힘()인 법력을 바르게 알아 터득함이 바로 우주만물과 세상의 작동원리라는 것을 말이다.

 

참선을 통한 상념(想念)의 수련방식, 요가나 행공을 통한 기()의 수련방식, 종교적인 명상(瞑想)을 포함해 그를 훨씬 뛰어넘어 신령(神靈)의 힘까지도 받아들이게 해주는 영력(靈力)의 계발(啓發)에 있어서 참으로 신비한 수련방법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종교는 신()의 세계로 향하는 인간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일종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종교마다 각각의 수행방식과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영혼의 수련방법은 뭘까? 영력(靈力)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신내림(神授)으로 영력(靈力)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영혼의 수련방법을 통해서 영력(靈力)을 키워지는 경우도 있다.

 

영혼의 수련방법들 중에서 특별한 만다라(曼陀羅)수련법을 통한다면 신구의(身口意)의 일체화 상태에서 염력(念力)의 단계와 기력(氣力)의 단계를 점진적으로 완성해 나갈 수도 있음이다. 여기서 <신구의(身口意)의 일체화>라고 함은 바로 <()와 상념(想念)의 통합작업>이라 할 것이다.

 

이런 통합작업의 단계가 이루어지고 나면 자연스럽게 영혼의 세계가 열리어 접근할 수가 있게 됨이다. <((()>으로 구성된 유기적인 마음의 자리인 심성장(心性場)의 통합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통일장(統一場)을 이루어가는 수련방식이 바로 <특별한 만다라(曼陀羅)수련법>이다.

 

이런 수련방식은 화신불(化身佛)의 개념을 가진 수련방식이기에 바로 깨달음의 최종적인 도달처인 성불(成佛)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수련을 희망하거나, 명상(瞑想)을 소망하거나, 요가(Yoga)를 바라거나, 염불(念佛)을 소망하거나, 주력(呪力)을 바라는 모든 수행자들에게 영력(靈力)을 키워 향상시켜가는 하나의 좋은 수련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인간의 체계가 <(身體(((()>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는 곧 <체력(體力뇌력(腦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음이니 말이다. 인간이 영력(靈力)을 갖추어 가는 기본패턴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입산수도(入山修道)형이다. 이는 타령(他靈)에 의존하는 경우이다. 종교적인 차원에서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거나 또 모시고 싶은 신령(자연령/특정종교령)으로부터 영력(靈力)을 동원하거나 전해 받는 경우이다.

 

큰 스님들의 수행형식(기도//단전호흡)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상념(想念)과 기력(氣力)을 훈련하려는 경우에 일반적으로 선방이나 사당에서 하거나 아니면 명산(名山)에 입산(入山)하여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는 초령(超靈)형이다. 이는 영()을 불러들이는 경우이다.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영매(靈媒)의 체질에 해당하는 사람이 신 내림을 통해서 신()을 받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무격(巫覡)으로서 무당(巫堂)과 박수()가 여기에 해당하고 종종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빙의(憑依)가 되는 경우도 역시 이런 유형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셋째는 자기령훈련(自己靈訓練)형이다. 이는 자기령(自己靈)을 연마함에 큰 비중을 두는 경우이다. 자기령(自己靈)을 독자적인 수양과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영()을 맑게 해 자신만의 영체(靈體)의 힘을 강화시키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자기령(自己靈)이라는 영체(靈體)의 강화를 통해서 수호신령과의 교류를 강화함으로써 영력(靈力)을 향상시켜 높이는 방식이라 할 것이다.

 

생명체로서 인간이 갖는 <체력(體力뇌력(腦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을 향상시키고 맑게 키워 가면 어느 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가 한 궤에 끼어진 구슬과 같이 일목요연해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생각(思惟)을 깊게 하면 슬기(知慧)를 갖게 되고, 슬기로워지면 누구나 성현(聖賢)에 이를 수가 있음이다.

 

이러한 부단한 과정을 통해서 <체력(體力뇌력(腦力기력(氣力염력(念力영력(靈力)>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힘의 근원인 법력(法力)을 발견하게 된다면 비로소 육신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이라는 2개의 수레바퀴가 한데 어울려 함께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음이다. 결국 <우주내의 법력(法力)은 신기(神氣)의 원리 속에 있음>을 터득해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사회내의 권력(權力)은 욕망(慾望)을 쟁취해가는 일련의 과정>임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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