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우주와 만물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율법(律法)이 작동하는 곳

<의식을 갖춘 공간(空間)의 생멸(生滅)>을 물질현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어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1/28 [09:26]

 

▲ 노병한 자연사상칼람니스트     © 노병한 사주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의 공간과 풍수코칭] 인간을 포함해 생명체를 품고 생멸(生滅)의 여행을 주관하는 우주와 만물에게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2가지의 중요한 율법(律法)이 작용한다고 할 것이다. 우주와 만물의 현상을 깊숙이 관찰하려면 시간(時間)의 연구도 중요하지만 우선 먼저 공간(空間) 그 자체에 대해 좀 더 깊이 궁구하여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동양역학(易學)에서 공간을 다루는 분야는 풍수(風水). 풍수역학은 지형(地形) 지세(地勢) 지상(地相) 가상(家相) 등을 포함한 풍수(風水)와 지리(地理)를 통해 생명체로써 인간의 길흉화복을 다룸으로써 공간학문의 가장 앞선 논리와 이론을 제시함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의 넓이가 유한인가 무한인가에 대한 결론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한계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단지 우리 인간은 추측하고 추정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범위를 설정하고 개념화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설정하고 가늠해서 추정하고 있는 이러한 공간들도 모두 다 특정한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 이외에 절대적인 무()라고도 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측정 불가능한 공간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예컨대 아무런 속성도 없고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완전히 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또한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설정해 개념화하고 상상으로 느끼고 있는 이런 우주의 공간들은 특정한 공간의 일부로서 매우 유한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설정해 개념화하고 상상으로 느끼고 있는 일정한 속성을 지닌 이런 공간의 주위에는 <절대적인 무()공간이 절대의 무()한대>로 둘러싸여 있다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 일정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이런 공간의 원래 상태는 어떤 모습일까?

 

원시적인 공간의 자체는 평탄(flat space)함이다. 그렇다면 이런 평탄한 공간에는 1차원 2차원 3차원 등 어떠한 차원도 과연 존재하지 않을까?

 

왜 이러한 공간 대에서 양()성적이거나 음()성적인 반응들이 쉬지 않고 끊임없이 생멸(生滅)을 계속하고 있을까?

 

이런 공간이 지닌 그와 같은 속성들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활성화하게 되는 그런 원인은 또 어디에 있을까?

 

아주 평탄한 원래의 공간 자체가 어떤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남은 어쩔 수 없는 상상속의 일이다.

 

공간 대에서 양()성적이거나 음()성적인 반응들이 쉬지 않고 끊임없이 생멸(生滅)을 계속하고 있고, 끊임없이 찰나적으로 반응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는 근본원인은 바로 상호균형(均衡)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닐까? 음양(陰陽)의 쌍방향 상생(相生)작용처럼 말이다.

 

그러나 공간의 균형은 공간 자체의 목적의식이 아니라 단지 공간 자체의 안정유지를 위한 작동에 불과한 것일 수가 있다. 원래 평탄한 공간은 등방(等方)이므로 어느 지역이든 간에 모든 점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관찰하면 공간이 <완전히 동일>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완전(完全)이라고 하는 명제는 일정한 조건이나 일정한 제한 아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평탄한 공간 역시 완전한 균형상태 하에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불완전한 상태에서 공간의 속성은 완전한 균형의 상태를 지향하면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공간 자체는 영원히 완전한 균형의 상태를 성취할 수는 없음이다. 완전한 균형을 향한 불완전한 균형상태가 영속될 뿐이다.

 

이같이 공간의 속성은 상호작용으로 끊임없이 찰나적으로 제자리에서 자기현현(顯現)의 경향성을 되풀이하게 된다. 여기서 현현(顯現: epiphany)이란 본래의 모습을 뚜렷이 나타내거나 드러냄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현현(顯現)이란 스스로 자기 본래의 모습을 뚜렷이 나타내거나 드러냄을 뜻하는 말로 이해하면 바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현(顯現)의 되풀이는 그 반복 자체에서 끝나버리며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광막한 우주의 대()공간 내에서 과연 이와 같은 되풀이가 몇 조 억겁 년이나 되풀이가 되었을까? 그리고 앞으로도 몇 조 억겁 년을 또 되풀이해 가는 것일까?

 

그런데 우주 공간에서 자기현현(顯現)의 방법으로 반응이라는 상호작용이 되풀이되고 있는 과정에서 우연하게도 주위의 반응들이 복합적으로 규합하여 순간적으로 일정한 크기의 ()’을 형성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이 같은 ()’의 생성(生成)과 소멸(消滅) 역시 수억 겁 년 동안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이 동일한 같은 내용의 반응과 상호작용만이 되풀이 되었을 것이니 말이다.

 

공간이 어떤 경우에는 아주 조그마한 여러 개의 ()’을 둘러싸고 있는 보다 더 큰 범위의 ()’들도 함께 생멸(生滅)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역시 아무런 흔적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림이 공간의 특성이다.

 

공간은 무질서한 반응의 반복과 함께 가끔 ()’의 생멸이 있을 뿐이다. 그러던 과정 중에 어느 때에는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특수한 성질을 지닌 ()’들이 형성되는 경우도 생겨난다.

 

공간의 이런 ()’들은 자기 주위에서 받은 자극을 수용하여 지속시킬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들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들 역시 오랜 세월의 연륜을 거치는 동안 생멸을 계속 거듭하였으나 그 중에는 상당한 량의 외부자극을 수용하고 받아들여 지속시켜가면서 풍부한 정보를 축적해 소장하기까지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유형의 ()’들이 규합되어 무질서한 반응의 반복에 시종(始終)하였던 것이 이제는 나름대로의 질서와 체계 그리고 조직을 형성하게 된 것이라고 보여 진다. 급기야 이런 ()’의 집단들은 찰나적이었던 반응의 반복에서부터 한걸음 더나가 전진하여 자기 ()’의 지속적인 자기현현(顯現)을 꾀하게 되며 자기보존을 위한 목적의식까지 싹트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들은 모두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중심부에 핵()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특징이다. ‘()’을 구성하고 있는 단위 역시 현대 물리화학적인 실험방법으로는 검출할 수 없는 소립자(素粒子) 이하의 아주 극미(極微)한 단위로 추정된다.

 

그러함의 이유는 현대의 물리화학적인 실험방법으로서 검출이 가능한 대상은 모두 다 그러한 실험에 대하여 물리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을 만큼의 조직을 갖추고 있는 형성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자(電子) 중성자(中性子) 양자(陽子) 등 소립자 군()과 그 상부구조인 원자조직들이 이 계열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들과 함께 조직된 형성물과 또한 그 ()’의 중앙에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 외부로부터 가해져 받아지는 여러 가지 자극에 대해 찰나적 순간적으로 반응만을 일으킬 뿐이지 더 이상 나아가 그가 받은 자극을 보존하고 지속시키며 축적해 소장시킬 능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물질화된 ()’들은 물질적으로 자기의 개성(個性) 타성(惰性) 집착(執着) 등을 별도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가해져오는 자극을 영속시킬 수가 없음이다. 여기서 타성(惰性)이란 오래되어 굳어진 좋지 않은 버릇이나 오랫동안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하게 굳어진 습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반해 <()물질장()인 무핵장(無核場)>에 있어서는 그 조직구조상 물질화된 고단위의 입자형(粒子形)이 없을 뿐만 아니라 중앙에 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때문에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수용한 자극자체가 그 ()’의 내부에서 저항이 없이 그대로 존속하게 마련인 것이다. 여기서 <무핵장(無核場)은 식()의 장()>을 대신하여 부르는 표현이다.

 

<물질장()인 유핵장(有核場)>은 물질화의 과정을 밟게 되고 <비물질장()인 무핵장(無核場)>은 그가 축적해 소장한 풍부한 내용에 의거하여 목적의식까지 형성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도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 중에서 <비물질장()인 무핵장(無核場)>은 오랜 시간을 거듭해감에 따라 더욱 발전을 거듭함으로써 초보적인 사고력과 더 나아가 자아의식까지 갖추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단계에 이르는 <비물질장()인 무핵장(無核場)>의 공간은 다음 단계로 자기보존은 물론 자기 확대를 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공간자체 본래의 속성인 자기현현(顯現)의 방법으로서의 반응형식이 그대로 구체화한 것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자기 확대는 자기 조직체의 진화나 또는 자기 조직체의 계속적인 번식방법과 행태로 나타나기에 이른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비물질장()인 무핵장(無核場)><물질장()인 유핵장(有核場)>인 물질화된 입자(粒子)들을 활용하고 이용할 줄 아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인식하고 주장하는 <유기물로써의 생물의 생성과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조 수억 겁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그런 생물체가 크게는 대우주 자체에서부터 출발해 인간 동식물 세포 등 다양한 모습으로 각기 자기의 정보와 지능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여 온 것이라고 하여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현상인 유핵장(有核場)>은 기계적으로 생멸(生滅)의 현상을 단순히 나타낼 뿐이지, 자기 스스로가 그와 같은 생멸을 의식적으로 의도하고 있음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질현상의 배후에는 반드시 그 물질현상의 생멸을 의식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Thing)’이라는 <새로운 존재(NewBeing)>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핵장(無核場)이라는 <()의 장()>이 바로 물질의 배후에서 유핵장(有核場)이라는 <물질현상>을 조직적 유기적 합목적적인 방향으로 관찰하고 유도하며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 종교에서 이런 <()의 장()을 신()의 자리로 신격화>하고 있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그러나 결론은 ()’의 자리가 창조주로서 인간과 별도로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큰 생명체인 대우주는 필연적으로 <비물질장()인 무핵장(無核場)><물질장()인 유핵장(有核場)>을 지니고 있다. 한편 대우주의 분신으로서 소우주인 우리 인간도 역시 <비물질장()인 소무핵장(小無核場)><물질장()인 소유핵장(小有核場)>을 지니고 있음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 역시도 <()의 한 분신(分身)>이라고 아니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란 인간과 전혀 다른 별도의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신()은 우주공간 상의 인간은 물론 모든 생물체를 포함해 온 우주 삼라만상의 공간에 내포되어 함께 존재하는 신기(神氣)를 이르는 말이다.

 

공간도 유기체의 생명체처럼 자기의식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승주거공간(住宅), 저승거주공간(幽宅=墓地), 활동공간(事務室), 생산공간(工場), 거래공간(商街店鋪) 등 다양한 공간의 활용에 대한 유리함과 불리함 그리고 그 길흉화복을 따지고 바른 길을 안내하는 문지도리이자 이정표가 바로 풍수역학(易學)이라 할 것이다. nbh1010@naver.com

 

/노병한:박사/한국미래예측연구소(소장)/노병한박사철학원(원장)/자연사상칼럼니스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