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명의로 되어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그 대출금이 생판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의 통장으로 들어가서 또 다른 누군가의 빚을 갚는데 사용됐다면?
그것만으로도 황당하고 억울할텐데 한 번 만져보지 못한 대출금을 안 갚는다고 은행에서 가압류를 걸어온다면?
대출금을 입금 받아 다른 사람의 통장에 이체한 통장의 예금주는 은행에서 시키는대로 했다 하고, 은행측은 대출 서류에 적힌 그대로 했다 그러며, 대출서류를 접수·작성한 사람은 자신은 서류를 모집해서 은행에 가져다 줬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에 그런 황당한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냐고? 기자가 오히려 되묻고 싶은 말이다.
무슨무슨 사금융업체가 순진한 대출 희망자에게 선이자로 몇 십퍼센트를 떼어 대출해주고, 나중에는 원금의 수십 수백 배를 뜯어내는 행태를 능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그것도 우리나라 대표 은행을 자처하는 우리은행에서 벌어졌다.
얽히고 설켜서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기조차 힘들게 꼬여버린 '2006년 우리은행 000지점 68억 대출금 횡령 사건'의 전말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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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은행 대출 피해자들은 매일 아침 대검찰청 앞에서 신속한 수사진행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김경탁 기자 |
서울 양천구 00동에 지난해 9월 완공돼 11월 입주를 시작한 h아파트에는 현재 각종 담보와 근저당설정, 가압류 등이 얽히고 설켜 있으며 여러 건의 민·형사상 소송이 이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다.
<사건의내막>에 이 사건을 제보한 j건설 박 아무개 사장도 이 아파트와 관련해 몇 건의 소송을 제기하고, 또 걸려 있는 사람으로, j건설은 h아파트가 지어질 때 토공사 및 가시설 공사를 진행했던 하도급업체이기도 하다.
사건의 시작은 2004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소규모 전문건설업체 j건설을 운영하고 있는 박 아무개 사장은 지난 2004년 12월 16일 서울 양천구에 있는 m종합건설과 하도급계약을 체결한다.
계약 내용은 총 계약금 11억원에 'k연립 재건축 정비사업 신축공사'의 토공사 및 가시설 공사를 시공하는 것이었으며, 공사대금은 신축되는 h아파트의 32평형 4개 세대(각 2억5천여만원 상당)를 현물로, 나머지 금액은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
j건설은 2005년 4월에 현장을 인도했으며, 2개월 뒤인 2005년 6월 16일 m종합건설 고 아무개 대표이사와 j건설 박 사장 두 사람이 만나 하도급계약서와 별도로 구체적인 공사대금 지급방식에 대한 약정서를 작성한다.
약정서에서 양측은 현물 지급하기로 한 아파트 4세대(각 32.35평)의 호수를 지정, 평당 8백만원씩 총 10억여원을 현물로 받은 것으로 인정하고, 앞의 4세대를 포함한 아파트 6개 세대에 대해 중도금 대출을 받아 j건설이 사용하기로 한다.
양측은 또한 중도금 대출시 m종합건설이 j건설에게 발행했던 어음을 반납하는 대신에 대출 받은 금액은 j건설에 입금하기로 했으며, 이밖에 나머지 공사대금 잔금은 아파트 준공후 30일 이내에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j건설은 약정서에 따라 2005년 6월 신한은행에서 중도금 대출을 받아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 박 사장에 따르면 이 중도금 대출은 m종합건설이 알선해준 것으로, j건설은 직원 3인과 박 사장 명의로 총 4억6천2백의 신용·담보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2006년 8월 j건설은 현물로 받은 아파트 4세대를 직원 앞으로 매매한다. 중도금 대출을 받아서 쓴 돈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박 사장의 설명.
시공사 부도, 대표이사 잠적
그런데 2006년 8월말경 m종합건설이 부도가 나고 대표이사가 잠적하는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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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불영수증 |
당시 김 차장은 완불영수증을 써주면서 "걱정하지 마라. 집은 다 됐으니까 좀만 손보면 준공을 볼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회사 부도 및 대표이사 잠적 소식을 듣고 몰려온 12개 하도급 업체·업자들을 안심시켰다 한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김 차장은 하도급 업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아파트 준공이 다 됐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우리은행에서 한 세대당 1억5천만원씩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아서 뽑아줄 테니 모두들 신청하라"고 말한다.
하도급업체들은 우리은행에서 나왔다는 이 아무개 대리의 안내에 따라 관련 대출신청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고, j건설의 경우 한 사람 앞으로 1억2천5백, 나머지 세 사람 앞으로 1억5천을 더해서 5억7천5백만원이 대출금으로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렇게 당시 아파트를 공사대금에 대한 현물로 받았던 12개 하도급 업체들이 이 아무개 대리를 통해 신청한 우리은행 대출금은 모두 합쳐 총 68억6천2백만원이었다.
그런데 박 사장을 비롯해 대출금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12개 하도급 업체들은 2006년 10월 12일 대출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통장정리를 하지만 통장에는 돈이 한 푼도 안 찍혀있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68억여원의 대출금이 우리은행에서 지정한 이 아무개 법무사의 개인계좌로 입금되었고, 그 돈을 법무사가 모두 처리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대출금이 안 들어오는 대출통장
'도대체 무슨 돈을 어떻게 처리했다는 소리냐'하고 이들이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며 확인해 본 결과, 아파트 시행사인 'k연립재건축조합'(이하 조합)이 그 돈을 기존 대출금 상환에 쓰겠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은행에 보냈고 우리은행은 이 요청대로 집행할 것을 법무사에게 지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공사인 m종합건설의 부도 후 조합은 나머지 공사를 진행하면서 조합원 등의 명의로 신한은행 신용대출 2억6천. 신한은행 조합원 신용대출 12억, 신한은행 토지 근저당 설정 16억, 대원상호신용저축 13억 등 총 45억여원의 빚을 졌는데, 이 빚을 갚았다는 말이다.
일련의 입출금 업무를 처리한 사람은 이 아무개라는 법무사로, 그는 우리은행이 대출모집위탁전문회사인 g사와 인력파견 계약을 체결하면서 모 법무법인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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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인우리은행 직원 명함과 문제의 대출모집위탁대행회사 직원 명함 |
대출신청서류를 받던 당시 이 대리는 중간에 '위임장' 양식을 하나 끼워 넣었는데, 그 위임장은 '대출금액을 위임장에 적힌 계좌로 입금해달라'는 것이며, '이에 따르는 법적 책임이 발생하는 경우 위임자가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의 직원들이 각종 신청서류를 받을 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대리는 "신청서류 뭉치의 각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동그라미를 쳐 놓은 부분의 내용을 채워 넣으면 된다"고 말했고, 박 사장을 비롯한 30여명의 대출신청자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위임장을 포함한 대출신청 서류의 빈칸을 채워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대리에게서 이들의 대출신청 서류를 넘겨받아 위임장에서 비어있던 입금은행과 예금주명, 계좌번호 란에 이 아무개 법무사의 이름 등을 적어 넣은 사람은 우리은행 000지점의 오 아무개 부지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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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대출신청서류뭉치에 끼우져 있었던 위임장. 더욱 황당한 부분은 이 위임장에 적시된 대출의 담보대상 물건에 대해 개괄적인 주소만이 적혀있고, 구체적인 호수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
"단 한 건이라도 통화내역
나오면 통보사실 인정한다!"
검찰 대질심문에서 오 부지점장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대출신청인들 모두에게 관련 사실을 유선으로 통지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박 사장이 그 기간의 통화내역을 조회해서 단 한 건이라도 우리은행 측과 통화사실이 나오면 인정하겠다고 강하게 나가자 "박 사장님에게는 통지를 못한 것 같다"고 한발 물러섰다고 한다.
황당한 상황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총 대출금 68억원에서 조합이 '빚잔치'를 한 45억원을 제외하고 남은 23억원이 이후 20여일 사이에 대출신청자들의 눈앞에서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빠져나가듯이 야금야금 사라진 것이다.
대출금이 확정·입금되기 하루 전인 10월 11일자로 우리은행측에 신한은행 등의 대출금 45억여원을 직접 상환해줄 것과 함께 나머지 직접대출후 잔금 23억원을 조합 계좌로 넣어줄 것을 요청하는 확인서가 윤 아무개 조합장 명의로 작성·제출된다.
하지만 정작 23억원중 10억원 만이 확인서에 적힌 조합 계좌로 입금이 되는데, m종합건설 대표이사의 직무를 대행했던 김 아무개 차장은 검찰조사에서 23억원 전액이 윤 아무개에게 입금되는 것을 막은 것은 바로 자신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김 차장은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우리은행 대출모집인 이 아무개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법무사가 23억여원 전액을 입금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한은행에서 대출을 담당했던 아무개 지점장이 조합 관련 대출 리스트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왔는데, 그 내용을 보니 윤 조합장이 대출금을 받아서 개인 빚을 갚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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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장 명의로 우리은행에 보내진 확인서 |
그런데 j건설 박 사장에 따르면 검찰 수사 대질심문 과정에서 윤 조합장이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10억원중 3억원을 김 차장 계좌로 다시 이체한 사실도 밝혀졌다고 한다.
윤 조합장은 검찰 조사에서 3억원을 제외한 7억원으로 공사 잔금 일부와 대출금 등을 갚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박 사장은 '법무사로부터 10억원을 계좌이체 받아 현장소장 김 아무개 차장에게 3억원을 송금하고 나머지 7억원으로 공사대금과 대출금 일부를 갚는데 사용했다'는 윤 아무개 조합장의 증언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제기한다.
"이 아파트는 저희 토목뿐 아니라 골조, 전기, 설비, 가구 등 모든 과정을 12개 업체가 대물 받고 그대로 지어준 거예요. 그러니 현금 들어갈 것이 없죠. 마지막에 잔손질하는 거 진짜 몇 천 만원이나. 1∼2억 들어갔겠지…" 공사대금에 대해 박 사장이 제기하는 의문이다.
손아귀에 쥔 모래알처럼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돈
다시 나머지 돈의 행방으로 돌아와 보자. 통장에 남은 13억원중 4억원이 아파트 등기 관련 비용으로 지출되고, 9억2천5백72만3천5백원이 남는다.
박 사장 등 j건설 측 대출신청인들은 10월 24일자로 담당 법무사에게 대출금 지급 요청에 대한 내용증명을 발송한다. 애초에 대출신청을 했던 본인들의 계좌로 대출금을 입금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시끄러워지고 박 사장 등이 내용증명을 보낸 이날 우리은행 000지점의 박 아무개 지점장과 대출업무를 처리한 오 아무개 부지점장 그리고 g사의 백 아무개 이사와 이 아무개 대리 등은 대출금을 떼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건무마를 시도한다.
"그 날 은행에서 우리 사무실을 3번을 찾아왔어요. 지점장하고 부지점장하고 g사 직원하고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다 해주겠다' 그러면서 시간을 벌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그래 잘못 했으니까 지네가 다 해주려는가 보다'했지요" 그 날에 대한 박 사장의 기억이다.
그러나 이튿날인 10월 25일 법무사는 다시 6억5천7백여만원을 이 사건 분쟁 당사자 중 일부인 8명에게, 그리고 10월 30일 또 다른 분쟁 당사자 1명에게 1억원을 지급했다. 이렇게 돈을 받은 사람들은 각각 3천만원에서 1억9천8백만원까지 합의금에 '문제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주었다고 한다.
박 사장은 "은행 대출인이 서류를 받으면서 '대출 받으려면 위임장이 필요하다. 여기에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 적고 도장만 찍어달라' 그래서 써준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들이 위임장에다가 마음대로 법무사 이름 쓰고 금액 쓰고 계좌 쓰고 해서 돈을 다른 데로 다 보내 버린 거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박 사장은 "그쪽에서는 위임장 때문에 돈을 보냈다 말하는데, 가령 우리가 위임한 것이 맞다면, 9억원 남아서 우리가 법무사에게 지불정지 요청을 했을 때 그대로 해 주셔야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 사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그 돈을 가지고 좀 떠들고 시끄럽게 한 사람들은 각서 쓰고 일부를 지불해주고 나머지 1억6천8백은 자기들이 은행에 공탁을 걸어놓았다"며 우리은행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대해 성토했다.
"국민은행이나 다른 여타의 은행직원들하고 이야기해보면 이건 분명히 은행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한 거라고 해요. 어떻게 개인이 대출신청을 했는데, 제3자가 돈 받을 거 있다고 그 사람들 덜렁 줘 버리고, 개인한테는 전화 한 마디 안하고…." 이 사건에 대해 박 사장이 내린 총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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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출피해자들이 법무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낸 다음날 나머지 돈의 대부분이 합의금으로 지출된다. |
사건의내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