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에는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와 노다 쓰요시(野田毅)라는 두 명의 일본군 소위가 누가 먼저 일본도로 100명의 목을 자르는지를 놓고 겨루었다는 기사(사진)가 실렸다. ©브레이크뉴스 |
일본은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그해 11월 상하이를 점령했다. 이어 장제스(蔣介石)가 수반인 국민정부의 수도 난징을 12월10일 공격, 3일 만인 12월 13일 난징을 완전 점령했다. 그해 12월10일부터 1938년 1월20일경까지 6주간에 걸쳐, 20만명이 넘는 난징인들이 일본군에 의해 무자비하게 대학살 됐다.
올해는 난징 대학살(大虐殺) 82주년의 되는 해. 그럼에도 대학살의 주체국인 일본은 아직까지도 중국에 대한 사과를 표현(表現)하지 않고 있다.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중국 난징대학살의 참혹함이 전해져 으스스하다.
대학살 내용이 국제사회에 알려진 것은 미국의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과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 등의 매체가 상세하게 보도, 알려지게 됐다. 이 사건의 상세한 보도는 난징에서 탈출한 언론인들의 보고(報告)에 따른 것이었다.
두산백과는 난징대학살에 대해 “1937년 12월 13일 일본군이 국민정부(國民政府)의 수도였던 난징(南京)을 점령한 뒤 이듬해 2월까지 대량학살과 강간, 방화 등을 저지른 사건을 가리키며, 중국에서는 ‘난징대도살(南京大屠殺)’, 일본에서는 ‘난징사건(南京事件)’이라고 한다. 정확한 피해자 숫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약 6주 동안 일본군에게 20~30만 명의 중국인이 잔인하게 학살되었으며, 강간 피해를 입은 여성의 수도 2~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일본군의 방화와 약탈로 난징시 안의 건축물 약 23.8%가 불에 타고, 88.5%가 파괴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밖에 일본군은 상하이(上海)·항저우(杭州)·쑤저우(蘇州)·우시(無錫)·우후(芜湖)·양저우(楊州) 등 중국 장쑤성(江蘇省)과 저장성(浙江省) 일대의 주요도시들에서도 학살과 약탈을 자행해 적어도 3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고, 수많은 강간 피해자들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난징대학살사건의 전문가인 한 학자는 “일본군 소위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츠요시는 누가 먼저 100명의 목을 베는가 경쟁을 벌였다. 이들의 '점수'는 마치 운동 경기의 그것과 꼭 같은 형태로 본국의 신문에 보도되었다.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의 특파원이 쓴 신문 기사의 제목은 "백 사람 목베기 경쟁, 신기록 수립" "106 대 105, 연장전 돌입" 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전쟁을 빙자한 학살이었다. 나라 전체가 피 냄새에 미쳐 있는 형국이었다”고 분석하면서 “일본군의 만행은 남경을 점령하면서 그 잔인함이 극에 달했다.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잡힌 중국군 포로는 물론, 무고한 시민까지 칼로 목이 베이고 검도 연습 제물이 되었다. 산 채로 매장되거나, 구덩이에 던져진 뒤 디젤유를 뒤집어쓰고 집단으로 불타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일본군은 탄환을 아끼기 위해 서너 명을 겹쳐 놓고 총을 쏘아 사살했으며, 그보다는 칼을 썼다. 수많은 시신이 양자강에 던져졌다”고 기록했다. 그 학자는 “일본군에 의해 강간당한 중국 여성은 8만 명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일본군들의 난징인 학살로 인해, 난징 일대는 온통 피 빛이 흥건한 살륙의 현장이었다.
![]() ▲시민단체 활빈단은 일본이 중일전쟁중 1937년 중국인 20여만명을 참혹하게 죽인 난징 대학살 82주년일인 지난 12월 13일 오전,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색소폰연주자 홍순철 전 서울시의원, 난징대학살곡을 제작중인 작사 겸 작곡가 유재철씨 등과 함께 일본군 만행을 강력 규탄하며 난징 희생자를 추모하고 아시아 평화와 역내 안정과 친선 화합을 기원했다. 이날 활빈단 홍정식 대표(오른쪽)의 피켓 추도시위와 홍순철 전 의원(중앙)의 구슬픈 진혼 추도곡 연주에 이어 유재철 작곡가(왼쪽)가 2020 중국 추도위 에 증정할 자신이 작사한 '난징대학살'곡(사진 아래서 두번째)을 낭송했다. ©브레이크뉴스 |
두산백과는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군 포로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학살을 저질렀다. 성 외곽이나 강가로 끌고 가서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였고, 총알을 아끼겠다며 산 채로 땅에 묻거나 휘발유를 뿌려서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병사들의 총검술 훈련을 하기도 했다”면서 “1937년 12월 13일 오늘날 일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의 전신인 ‘도쿄니치니치신문(東京日日新聞)’에는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와 노다 쓰요시(野田毅)라는 두 명의 일본군 소위가 누가 먼저 일본도로 100명의 목을 자르는지를 놓고 겨루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는데, 이는 난징에서 일본군이 벌인 학살과 만행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전했다.
오늘날 중국은 세계 G2국-강대국이 됐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국력(國力)은 날로 강대해지고 있다. 만약, 중일 간 미래전쟁이 발생한다면 어찌될까? 중국은 과거, 82년 전 난징대학살 사건의 참혹함을 잊고만 있겠는가? 중국 정부가 과거 일본의 만행인 난징대학살을 과연 잊고만 있겠는가? 상상에 맡긴다.
시민단체 활빈단은 일본이 중일전쟁 중 1937년 중국인 20여만명을 참혹하게 죽인 난징 대학살 82주년일인 지난 12월 13일 오전,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색소폰연주자 홍순철 전 서울시의원, 난징대학살곡을 제작 중인 작사 겸 작곡가 유재철씨 등과 함께 일본군 만행을 강력 규탄하며 난징 희생자를 추모하고 아시아 평화와 역내 안정과 친선 화합을 기원했다. 이날 활빈단 홍정식 대표의 피켓 추도시위와 홍순철 전 의원의 구슬픈 진혼 추도곡 연주에 이어 유재철 작곡가(왼쪽)가 2020 중국 추도위 에 증정할 자신이 작사한 '난징대학살'곡(사진 아래서 두번째)을 낭송했다.
일본은 평화로운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중국-한국에서 벌였던 참혹한 학살에 대해 사과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할 의무감이 있는 국가이다. 82년 전, 인본군의 중국인 난징대학살로 희생된 2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들, 무고한 그들 영혼의 극락왕생을 빈다. moonilsuk@naver.com
*필자/문일석. 시인.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