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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에이즈 첫 환자가 미국 의학계에 보고된 데 이어 과학자들은 에이즈 바이러스의 규명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드디어 1984년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뤽 몽타니에 박사에 의해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가 발견되는 극적 순간을 이루었다.
당시 몽타니에는 무명의 연구진이었기에 그 분야 최고 권위자인 미국의 로버트 갈로에게 샘플과 사진을 보낸다. 그런데 얼마 후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로버트 갈로는 hiv에 대한 논문과 사진을 버젓이 자기 것으로 하고 발표해버린 것이었다.
이는 데이터 조작이나 표절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몽타니에의 연구 성과를 가로챈 갈로는 곧바로 특허 신청을 하여 이를 신속하게 등록시켰다. 뤽 몽타니에는 극력 반발했고 곧바로 소송으로 이어졌다.
뤽 몽타니에는 진위논쟁으로 무려 10여년을 소모하고, 천신만고 끝에 최초 발견자로 공인받을 수 있었다. 94년 미 국립보건원이 파스퇴르 연구소의 에이즈 바이러스 최초 발견을 가까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쌍방은 특허권 분배로 일단 분쟁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소송 기간 동안 미국 회사들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계속하여 실용화에 성공하였으며 aids 치료제 시장의 주도권을 독차지하여 버렸다. 또한 장기간 송사에 시달리면서 연구에 심대한 차질을 빚게 되자 몽타니에는 아예 미국으로 건너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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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미국에서 '볼티모어 사건(baltimore case)'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실례가 있다.
데이비드 볼티모어 미 mit 교수는 젊은 나이에 노벨상을 수상한 세계 과학계 기린아였다. 그는 1986년 브라질 출신 일본계 이마미시 카리(imamish-kari) 박사와 함께 면역체에 대한 혁신적 논문을 발표했다.
책임연구원은 이마미시 박사였고, 볼티모어는 연구소장으로서 단지 공저자로 올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볼티모어 실험실의 한 연구원이 논문에 등재된 실험결과의 이의 제기 의혹에 언론이 적극 가세하면서 미 의회까지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마치 전방위 초토화 군사작전 형세를 띤 형세에서 mit에서 록펠러대학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볼티모어 교수는 부득불 총장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논문의 공저자도 무수한 고초를 겪었다.
결국, 갑론을박 논란은 1986년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모두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실험 재연을 스탠퍼드 대학의 한 과학자가 극적으로 성취해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뉴스 전주전북 소정현 기자 oilga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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