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자기 보다 더 날 사랑한다는 예쁜 말에 포로?

"이런 지독한 사랑을 친구에게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

문일석 시인 | 기사입력 2008/10/22 [10:32]
최근에 쓴 시입니다.
 

▲ 이정래  원장

***대금


내가 아는 치과의사 이정래 원장은
한 생을 건 구도자처럼
대금과 함께 산다.

무슨 한 맺혀 있길레
불고 또 불고
가락이 애닯다.

입가에 대금 비스듬히 가다듬고
있는 힘 다해
혼을 만들어 내는

전생의 무슨 인연
이 세상에 토해낼까?

들으면 혼이 오고
생각하면 처절한

농가의 처마 밑에서
새어나왔던 아련한 소리
그날 새벽 대금소리는
내 인생을
무명의 잠에서 깨웠다.

후후후
후우후우
후우 후후후

삶에서 깨달음은
없음에서 있음을 만들어내는
대금 소리 같은 것

이 나이 들어서야
의사 양반이 대금 곁을 못 떠난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

후우후 후후후
 

 **면도
 
잠에서 깨어난 이른 아침
면도를 한다.

길어난 턱수염을
쓱쓱, 질레트면도기로 밀어 낸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는가
환한 얼굴로 누구를 기쁘게 하려는가
남이 아닌 나만이
즐겁고 보람되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저 세상으로 떠날 때까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루에 한 번씩 대형 거울 앞에 서서
매일 자라나는 털을 제거하면서
나는 나와의 깊은 대화를 나눈다.

쉬지 않고 길어나는 수염이 고맙다.

**지독한 사랑

지독한 감기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고
며칠을 드러누운 적이 있는데

친구야, 난 지금
지독한 사랑에 빠져
영혼이 사로잡힌 채
안전부절 상태라네

감기와 사랑은 닮았나 봐
뜨거움이
온 몸을 사로잡고 있어
눈을 감고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른거려

친구, 자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 것은
나 혼자 이 감동을
주체할 수 없어서야.

꽃길을 걷다
예쁜 꽃잎의 미소에 반하듯
난 그 사람의 인품에 반해
그 이의 그 넓은 마음속에
뽕당 빠졌어.

무게와 크기를 알 수 없는
미소, 그 미소…
미소가 날 꼼짝 못하게 하고 있어.

자기만큼
아니 자기 보다 더
날 사랑하고 있다는
예쁜 말에 포로가 됐다네.

인생의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일지는 알지 못하나
이런 사랑, 이런 지독한 사랑을
친구에게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

친구, 자네에게
지금의 솔직한 내 심정을
말한다면

그의 가슴에 하늘의 별을 몽땅 따다
안겨주고 싶어

그리하여 그 별들이
혹연 그이 마음이 어두울 때
반짝 거리며
새벽이 올 때까지
그이 곁에만 있도록
해주고 싶어

하지만 사랑에 취한 나는
하늘을 다 가진 양 우쭐대지만

한줌 밖에 안되는
나의 능력에

어두운 허공 속에서
가슴만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네.

그래도 그이를 사랑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일거야.

친구야, 그래서
삶에 있어
사랑이 이처럼 귀한 것 같아.  moonilsuk@korea.com

*필자/문일석 시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119@breaknews.com
ⓒ 한국언론의 세대교체 브레이크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